환자 A를 처음 본 것은 눈바람이 쌩쌩 날리는 1월 초의 어느 오후였다.
그는 내가 본 사람 중에서도 손에 꼽을 정도로 딱딱한 인상의 소유자였다.
단정하게 빗어 왁스로 단단히 고정한 머리에는 한 가닥의 머리카락도 삐져나오질 않았고, 눈썹도 칼각으로 정리를 했는지 잔털 따위는 보이질 않는다. 잘 생기진 않았지만 그렇다고해서 못난 부분도 없었다. 깊고 짙은 눈에서는 형형할정도로 날카로운 눈빛이 비치고 있었고, 마치 맞은편에 있는 나를 초 단위로 분석하는 것만 같다. 누가 봐도 엘리트라는 느낌. 직업은 의사 아니면, 변호사, 그것도 아니면 대기업에서 일하는 것 이상으로는 생각이 가 닿지 않는다.
“안녕하십니까?”
그는 자리에 앉으면서 내게 인사를 건넨다. 이토록 정갈한 동작으로 앉는 것을 보는 것은 오랜만이다. 마치 제식훈련을 받은사람 처럼 칼 같은 각도를 유지하면서 옷 매무새 하나 흐트러지지 않고 자리를 잡는다. 골치가 아파진다. 내가 이 사람을 상대로 상담을 해야한다고?
“아, 네 반갑습니다. 의뢰하실 내용이 기억 소거술이라고 하셨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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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당시의 기억을 살펴봤지만, 심각한 결함이 있습니다. 기억 소거술은 보통은 감정과 연관이 깊어요. 당시의 감정을 발생시킨 대상들이 시기상 겹친다면, 기억까지 함께 지워지곤 합니다. 예를들어 분노의 감정이 든 대상이 하나는 친구고, 하나는 가족이라면 가까운 시기에 느꼈던 그 기억들은 함께 지워집니다.”
설명을 하면서 침이 마르는 기분이었다. A의 눈빛은 설명을 하는 나를 꿰뚫어버릴 듯 예리했고, 다음에 따라 올 진실을 듣게되면 명료한 말투로 나를 칼로 쑤시듯 날카롭게 질문을 해올 것 같았기 때문이다.
“네…. 그래서 결론적으로 말씀 드릴 수 있는 것은 말이죠. 따돌림을 당할 당시에 느낀 ‘원망’이라는 감정 때문에 그 기억을 지워버리면, 어머니와 관련된 기억도 같이 지워집니다. 이런 말씀 드리기가 참으로 죄송스럽습니다만, 어머니께서 아프실 때 느끼셨던 세상에 대한 원망의 감정과 따돌림의 기억이 묶여버렸습니다.”
젠장, 저 사람 인상을 보니 화난 것 같은데, 내 말을 뭐라고 생각하려나? 나보고 돌팔이라고 생각하려나? 이런 치명적인 기술적 결함을 갖고도 장사한다고 욕할지도 모른다. 저렇게 깐깐한 사람이라면 쉽게 넘어가진 않을 거야.
'과연 내가 A를 납득시킬 방법은 있을까? 검사비용도 만만치 않은데, 환불처리하기엔 너무 손실이 크다고. 제발 이해해줬으면 좋겠는데...'
까지 생각했을 때 쯤, 그의 얼굴에 미묘한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그 단단하게 굳은 얼굴이 천천히 찌그러졌다.
완고했던 무표정은 주름 하나 하나마다 실금이 가며 철저하게 무너져내렸다. 이윽고 그의 목에서 끅끅 거리는 신음소리가 닫힌 성대를 비집고 나왔다. 그의 울음은 어째서인지 내가 보았던 다른 울음들에 비해서 무겁고, 단단한 느낌이 들었다. 마치 절대 열어선 안 될 문을 억지로 열어젖히듯 강렬한 저항감이 느껴졌다.
공을 굴리는 것보다 바위를 움직이는 것이 어렵듯, 그의 마음을 무너뜨리는 데에는 남들보다 몇 배의 감정이 필요했을 지도 모른다. 비록 처음 보는 사람이지만, 그의 완고한 표정과 행동거지는 감정을 한 두 해 참아온 사람이 할 수 있는 매무새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이 사람이 더 이상 감정을 통제하지 못하고 무너져내리는 그 모습은, 내가 보아 온 어떤 좌절보다도 보기 안타까운 종류의 것이었다.
그의 아플정도로 슬픈 울음은 결국 둑이 무너지듯 점점 한 줄기 물살에서 거대한 급류처럼 불어나고 있었다. 어느새 이성을 놓고 꺼이꺼이 울게 된 그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내 마음도 급류에 휩싸이게 되는 것 같았다.
“분명, 나는 이 기억이 싫다고 생각했어요. 세상은 약자의 편이 되질 않아요. 그래서 아득바득 노력해서 남들이 인정하는 엘리트가 되었는데도, 저는 트라우마를 극복할 방법이 없었습니다. 정신과 병원을 내방하고, 심리 상담까지 받아도 해결 될 기미조차 보이지 않았어요….”
흐느끼며 말하는 그는 정신을 잃을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하지만, 제 기억에서 어머니까지 지워버리면, 아니... 엄마까지 지워버리면 어떡하죠? 제 삶의 유일한 기둥이었는데, 내가 여기까지 온 이유가 엄마였는데…. 왜 그 기억까지 같이 소거된다는 겁니까!”
나도 그를 도와주고 싶었지만, 별 다른 도리가 없었다. 어차피 한 번 설명했을때 이미 알아들었으리라, 다만 너무 힘들고 받아들이기 힘든 현실 때문에 그는 부정하는 단계에 와 있을 뿐이다.
그는 숨을 몰아쉬며 말을 이어갔다.
“일찍 돌아가신 바람에 제가 해드릴 수 있는게 많이 없었어요. 그나마 학교에서 받아 온 성적표만이 어린 내게는 할 수 있는 전부였습니다. 그런데 따돌림 당하던 시기… 그 시기와 겹쳐서…. 같이 지워진다니.”
좌절하는 그를 보며, 나는 다시 한 번 선택을 재고해보라고 해야할지, 아니면 그냥 침묵을 유지해야할지 결정할 수 없어서 그저 안절부절할 수 밖에 없었다. 나는 기억 제거 시술을 하는 기술자일 뿐이지, 심리상담사도, 정신과 의사도 아니기 때문에 이런 상황을 어떻게 대응해야할지 감이 안 왔다. 이번 시술 건이 끝나게 되면 상담사 자격증이라도 따 놔야겠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
고민을 하던 중, A가 입을 열었다.
“제 선택은 …입니다.”
23년 말에, 나는 심리상담을 받은 적이 있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정말이지 말 그대로 ‘망한 상담’이었다. 내 심리적 고통은 치유되기는 커녕, 오히려 증폭되고 말았다. 상담사라는 직업은 내담자와의 상성을 많이 탄다고들 하는데, 나와는 도저히 맞지 않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내 인생은 가족이라는 기둥이 없으면 애초에 지금까지 이어져 올 수 없는 종류의 것이다. 세상은 내게 냉소적으로 굴었고, 시스템은 나를 보호대상으로 여기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유일하게 이유 없이 나를 보호해 준 가족이 제일 소중하다. 그렇기 때문에 심리상담사가 주장한 “가장 근본적인 원인을 찾아야 문제를 해결할 수 있어요.”라는 말이 이해가 안 가는 것은 아님에도, 그가 내 가족에게서 원인을 찾는 행동 자체가 굉장히 모욕적으로 느껴졌었다.
만약에 그 때, 심리상담을 중단하지 않고 이어가서 내 고통스러운 마음 속 문제를 해결하는 대신, 가족에 대한 감정이 바뀐다면, 그 때도 내가 나로 남을 수 있었을까?
...글쎄, 잘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