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 A를 처음 마주한 건, 눈발이 짐승의 발톱처럼 창문을 긁어대던 1월의 어느 오후였다.
그는 창밖의 혹한을 그대로 오려내 실내로 들고 들어온 것 같은 사내였다.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빗어 넘겨 고정한 머리카락, 자를 대고 그은 듯 날카롭게 정리된 눈썹. 깊고 짙은 눈은 형형한 안광을 내뿜으며 맞은편의 나를 밀리미터 단위로 해부하고 있었다. 의사, 법조인, 기업의 임원 그중 무엇인지는 몰라도 실수를 용납하지 않는 자리에 오래 앉아본 사람의 눈빛이었다.
수술실 매스 같은 그의 예리한 눈빛 앞에서, 나는 형사에게 취조받는 용의자가 된 듯한 긴장감에 뒷목이 뻐근해졌다.
상담실에 들어선 그는 건조한 인사와 함께 서류가방을 옆에 내려두고 자리에 앉았다.
그의 몸동작에는 잘 설계된 기계장치가 맞물리는 듯한 정교함이 있었다. 불필요한 움직임을 소수점 단위까지 제거한 듯한 완벽한 절제. 옷매무새 하나 흐트러지지 않는 그 서늘한 강박이 내게는 거대한 벽처럼 느껴졌다.
“의뢰하신 내용은 확인했습니다. 특정 시기의 기억 소거를 원하신다고요.”
나는 그의 시선을 마주하는 것이 불편해 진료실 모니터에서 눈을 떼지 않고서 말을 건넸다.
“네. 군 복무 시절 21개월입니다.”
‘왠지 21개월 하고도 3일, 14시간이라는 디테일로 말할 줄 알았는데 그 정도는 아니군?’ 나는 그의 간결하고 사무적인 말투를 들으면서 내심 안심하려 들던 차에 말이 이어졌다.
“비용이나 절차의 복잡함은 상관없습니다. 제가 원하는 건 단 하나, 잔여 데이터 없는 ‘완벽한 소거’입니다. 가능합니까?”
마치 사람의 기억이 아닌, 컴퓨터의 파일을 삭제하는 것과도 같은 태도. 그야말로 효율과 정확성만을 요구하는 듯한 모습에 살짝 질리는 느낌이 들고 말았다.
“그, 사람의 기억이라는 게… 그렇게 단순하지가 않습니다. 컴퓨터 파일처럼 그런 게 아니라….”
구차한 변명을 하는 나를 그는 아무 말 없이 응시하고 있었다. 다만 그의 눈빛에는 단 1%의 실패도 용납하지 않겠다는, 시퍼런 칼날 같은 압박감이 서려 있었다. 그것은 질문이라기보다는, 자신이 지불한 대가에 걸맞은 완벽한 결과물을 내놓으라는 무언의 협박에 가까웠다.
결국 나는 설명을 중단하고, 긴장하지 않은 척 본론으로 들어갔다.
“우선 정밀 스캔부터 진행해 보죠. 안내하겠습니다.”
A와 나는 상담실을 나와 복도 끝 시술실로 이동했다.
다행히 그는 내 지시에 따라 군말 없이 진료 의자에 누웠다. 이런 사람일수록 절차가 지켜지는 상황에서는 잘 순응하기 마련이다. 그 후의 대응이 무서운 거지.
나는 그의 관자놀이 양쪽에 전극 패드를 부착하고, 짧은 카운트와 함께 수면유도제를 주입했다.
조금 전까지 나를 압도하던 날카로운 눈빛이 스르르 풀려갔다. 리클라이너 위에는 그저 잠든 사람 하나만이 남았다. 나는 내 쪽 리클라이너로 옮겨 앉아 바이저를 내렸다. 시야가 어두워지고, 익숙한 접속음이 고막을 울렸다.
[동기화 중...]
화면이 밝아지며 그의 기억이 펼쳐졌다.
시술 원리는 간단히 설명하면, 그의 뇌파에 내 의식을 동기화해서 기억의 흐름을 따라가는 것이다. 소거할 기억을 찾는 단계이기에, 나는 그가 겪은 것을 관찰자로서 따라가지만, 감정이 극에 달한 순간에는 그 파장에 휩쓸리기도 한다.
A의 기억을 십수 년 간 거슬러 올라가던 중, 역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하수구 악취, 비릿한 피 냄새, 짐승 같은 고함이 뒤섞인 지옥도. 병영 샤워실이었다. 생활복 차림의 군인들이 담배를 피우거나 손에 묻은 피를 씻어내고 있었다.
그 한가운데서, A는 짓밟히고 있었다. 육체적 고통도 상당했지만 더 끔찍한 것은 영혼을 갉아먹는 무력감이었다.
그리고, 그 '무력감'이라는 감정의 주파수가 일치하는 순간, 기억의 결이 갈라지며 전혀 다른 장면이 오버랩되었다.
병원 복도. 휠체어에 앉은 야윈 여인. 그 손잡이를 미는 A의 손. 어머니의 투병 시절이었다. 치료비 고지서가 쌓여가는 식탁, 그 앞에서 고개를 숙인 A의 뒷모습도 함께 흘러갔다. 상황을 타개할 수 없다는 무력감과 세상에 대한 원망의 냄새가 병영 샤워실에서 맡은 그 악취와 소름 끼치도록 비슷했다.
약한 자는 짓밟힌다. 가난하든 계급이 낮든 결국 먹시사슬의 바닥에 있는 이들은 무력하게 당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그는 올라가기로 한 것이다. 다시는 누구에게도 짓밟히지 않는 곳까지.
이어지는 기억의 파편들은 처절한 투쟁의 기록이었다.
그는 시궁창에서 기어 나오기 위해 자신을 난도질했다. 잠을 잘라내고, 감정을 도려냈다. 책장이 닳도록 지식을 쑤셔 넣었고, 나약함이 고개를 들 때마다 제 뺨을 후려쳤다. 그렇게 스스로를 몰아붙였다. 상담실에서 마주했던 저 바위 같은 얼굴은 타고난 기질이 아니었다. 다시는 비참해지지 않으려, 스스로를 극한까지 몰아붙여 주조한 후천적인 갑옷이었다.
[스캔 종료. 분석 결과 출력]
나는 씁쓸한 기분으로 전극을 떼어냈다. 그가 왜 그토록 기억을 지우고 싶어 했는지, 왜 이토록 차가운 기계 같은 인간이 되었는지 알 것 같았다. 그러나 나는 잔인한 말을 그에게 건네야만 했다.
나는 상담실에 돌아와 모니터에 뜬 붉은 경고창을 보여주며 무겁게 입을 열었다.
“검사 결과… 심각한 문제가 발견되었습니다.”
A의 눈빛이 예리하게 빛났다. 약속된 결과가 나오지 않은 것에 대한 불쾌감이 서려 있었다.
“문제라.” 그는 불쾌한 단어를 씹어 뱉듯 짧게 되뇌었다. “제가 지불한 금액에는 해당 시기의 완벽한 기억 삭제, 그리고 그 과정에서 생기는 오류에 대한 처리비용도 포함되어 있을 텐데요.”
약간의 분노가 서린 그의 얼굴은 더욱 날카롭고 차가워 보였다. 그러나 나는 사실을 전해야만 했다.
“이해합니다. 하지만 기술적으로 풀 수 없는 매듭이 있습니다.”
그는 나의 변명이 지루하다는 듯 딱딱한 어조로 말을 잘랐다.
“시도도 해보기 전에 안된다니, 제가 업계 최고의 전문가를 찾아온 겁니까? 아니면, 제 발로 돌팔이를 찾아온 겁니까?”
예상했던 반응이었다. 그의 태도는 순식간에 나를 무능한 고용인 취급하는 고압적인 자세로 바뀌었다. 나는 모욕감을 삼키며 심호흡을 했다.
“안타깝지만, 기억 소거술은 종이에 적힌 글자를 지우개로 지우는 것과는 다릅니다. 사건 당시에 느꼈던 ‘감정의 파장’을 추적해 지우는 원리죠. 때문에 파장이 같은 기억들은 한 덩어리로 묶여 함께 소거됩니다.”
나는 마른침을 삼키며, 그에게 선고를 내렸다.
“군 복무 시절, 무력감 속에서 느끼셨던 사무친 ‘원망’. 그 감정을 지우려면 대가를 치르셔야 합니다. 공교롭게도… 환자분이 어머니의 투병 생활을 지키며 느끼셨던 ‘세상에 대한 원망’이 군 시절의 감정과 완전히 같은 파장으로 묶여 있습니다.”
A의 미간이 좁혀졌다. 나는 주저하고 또 주저하다가, 결국 잔인한 결론을 뱉어냈다.
“군 시절의 기억을 지우면, 어머니를 간호하셨던 마지막 3년의 기억도 함께 사라집니다.”
‘그렇게 하시면 원하시는 대로 완벽한 소거가 가능합니다.’ 목구멍까지 차오른 뒷말을 간신히 삼켰다. 그것은 의사가 환자에게 할 말이 아니었다.
‘스으으으’
상담실 구석에 놓인 가습기가 하얀 수증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투명한 물통 안에는 이미 습기가 가득 차올라, 벽면을 타고 흘러내리는 물방울들이 위태롭게 매달려 있었다. 방 안에 무거운 침묵이 내려앉자, 평소에는 들리지도 않던 그 기계적인 소음이 신경을 긁어댔다.
나는 마른침을 삼켰다. 그는 자신의 인생을 통제하기 위해 뼈를 깎아온 사람이다.
어쩌면 ‘그깟 어머니와의 기억 따위, 앞날을 위해 당연히 도려내야 하는 것 아니냐’며 내 무능함을 질타할지도 모른다. 혹은, 완벽한 소거가 불가능하다는 사실에 모욕감을 느끼고 자리를 박차고 나갈지도 모른다. 숨 막히는 적막 속에서, 나의 불안한 상상들이 수증기처럼 뭉게뭉게 피어올랐다.
하지만 나의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침묵하던 그의 얼굴에 미세한 균열이 일기 시작했다. 마치 아주 단단하게 굳은 석고상에 실금이 가는 것 같았다.
항상 냉철함을 유지하려 굳게 다물려 있던 입매가 통제력을 잃고 씰룩였다. 억지로 붙잡으려는 이성과 터져 나오려는 감정이 그의 입술을 가지고 위태로운 줄다리기를 시작했다. 나를 꿰뚫어 보던 눈은 여전히 정면을 향해 있었지만, 초점은 이미 현실을 떠나 있었다. 그의 눈은 아마도 자신의 기억 속 그 순간들을 헤집고 있을 것이다. 군 시절의 끔찍한 부조리와, 휴가를 나와서 마주해야 했던 어머니의 야윈 등. 세상에서 가장 쓸모없고 무력했던 그 시절의 자신이, 가장 사랑했던 사람 곁에 있었다는 그 모순된 비극을.
“저는 아직도 약을 먹습니다.”
그가 입을 열었다. 밀도 있고 단단했던 그의 건조한 목소리는, 물에 젖은 종이처럼 힘없이 풀어져 있었다.
“아직도 그때의 기억 때문에 밤마다 몸서리를 치며 잠에서 깰 때가 많아요. 그때 저는 어머니에 대한 책임감 때문에 죽을 수 없었죠.”
그리고는 울먹이는 목소리로 설명을 이어나갔다.
“사실 이번이 열 번째 병원입니다. 어머니와의 마지막 기억만큼은 포기할 수가 없었어요.”
그의 내면은 이미 슬픔으로 과포화 상태였다. 그리고 내가 던진 ‘불가능’이라는 차가운 진실을 마주하자, 가습기 속 물방울처럼 응결되었다. 슬픔은 눈물이 되어 그의 찡그린 얼굴 위를 내달리기 시작했다.
‘톡.’
가습기 물통 벽면에 맺혀 있던 물방울이 바닥으로 떨어지며 파열음을 냈다. 고요한 방 안에 울린 그 작은 소리가, 기어이 A가 붙들고 있던 마지막 이성의 끈을 끊어버렸다.
“으으윽…!”
그의 목에서 쇳소리 섞인 신음이 닫힌 성대를 비집고 터져 나왔다. 녹슨 철문을 억지로 열어젖힐 때 나는 소음처럼, 거칠고 고통스러운 저항감이었다. 그는 짐승처럼 울부짖으며 무너져 내렸다. 날카롭게 빗어 넘긴 머리카락이 헝클어지고, 오차 없이 매여 있던 넥타이가 눈물로 얼룩졌다.
나는 그 어떤 위로의 말도 건넬 수 없었다. 그저 책상 모서리를 꽉 움켜쥔 채, 가습기가 뿜어내는 뿌연 수증기 너머로 한 인간이, 아니 한 아들이 쏟아내는 압도적인 슬픔의 격류를 지켜볼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