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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도 Sep 28. 2021

버티는 일에 대해서

가만히 그 자리에 버티고 있는 일. 인생은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라고 배우고 생각해온 사람에게 버티고 서 있어야 할 때가 올 줄 누가 알았을까.     


요즘 내 인생은 멈춰있다. 시간은 속절없이 지나가는데 나는 그 시간의 바람을 맞으면서 그 자리에 멈춰 서 있다. 뒤로 나자빠질 일만 없기를 바라며. 나는 더 이상 키가 자라지 않고, 체형이 변하지 않는다. 심지어는 내 머릿속 생각들도 성장을 멈춘듯하다. 나는 멈춰있다.      


멈춰 있다는 생각을 지우기 위해서일까. 요즘따라 부쩍 손톱, 발톱과 눈썹을 자주 다듬는다. 일주일에 한 번 정도 신경 쓰면 될 일인데, 자주 들여다보며 하루에 두세 번씩도 매만진다. 무언가 자라고 있음을 눈으로 확인하고 싶다. 손톱, 발톱을 다듬은 후에는 거실에 심어둔 씨앗을 구경하러 간다. 아주 작은 새싹이라도 올라오기를 바라며 한참을 바라본다.      


첫 출근을 하던 날, 핑크색 키플링 가방을 멘 정장 맨을 보고 웃음을 지었다. 둘째 날에도, 셋째 날에도. 하지만 지금 핑크색 키플링 가방을 볼 때면 커다란 젤리 속에 함께 갇혀있는 것처럼 가슴이 답답하다. 그 젤리 속에 우리 가족도, 강아지도, 회사 동료들도 박혀 있다. 그 속에서 젤리 밖에 있는 친구들과 대화하는 일이란 참 힘든 일이다. 최대한 웃어 보이며, 최대한 쉽게 움직이는 척하며 그들과 어울리는 건 참 힘든 일이다.  

    

멈춘 자리에서 버티고 있는 일이 너무 힘들어 눈물이 하염없이 흐르는 때가 있다. 흘러가는 시간이 칼날같이 날카로워 나를 베고 지나가는 듯할 때가 있다. 가만히 힘을 빼고 있어도 이 자리에 가만히 있을 수 있을까? 생각을 해보지만 역시 무서워 온 몸에 힘을 주고 힘껏 버티고 서 있는다.     


내가 멈춰있지 않았을 때, 달리고 있는 건 나였으면서 가만히 서서 버티고 있는 사람들을 내려다본 기억이 있다. 왜 저들은 뒤처지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거지. 왜 아무 조치도 취하고 있지 않는 거지. 하며 오만한 시선으로 그들을 바라보았고. 지금 나는 그 위치에 서 있다. 그때 그 무신경하고 날카로운 마음들이 그대로 남아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매일매일 버티고만 있는데 매일매일 지쳐간다는 사실이 가장 무섭다. 나는 언젠가 앞으로 나아가야 할 사람인데, 여기서 이렇게 머무를 사람이 아닌데 하는 생각과 소모된 정신이 충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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