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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도 Sep 27. 2021

할머니 습관

익숙함과 그리움 사이의 슬픔에 대해

서울에 비 예보가 있으면 언제나 전화가 울린다. 비가 오니 물웅덩이는 꼬옥 조심하라는 할머니의 전화다. 언젠가 비 오는 날 물웅덩이에 전깃줄이 빠져 감전사고가 일어났다는 뉴스를 한번 보시고는 언제나 비가 오면 꼬박 전화를 하신다. “내일 비 온다카이 물 웅댕이 피해다니래이.”      


부산역에 내리면 큰 아빠가 기다리고 있다. 지상 주차장에 세워진 큰 아빠의 큰 차를 타고 어색한 안부를 물으며 할머니 집으로 향한다. 골목골목을 돌아 멀리 보이는 빨간 벽돌집. 아마 기차가 서울에서 출발하는 시간부터 꼬박 기다리고 계셨을 할머니는 3층 창문을 열어 큰 웃음을 지으시며 반겨주신다. “우리 똥강아지들 왔나! 어서 올라온나!”     


세상에서 내 끼니 걱정을 제일 많이 하는 사람. 우리 할머니. 051로 시작하는 번호를 누르면서 벌써 그 걱정 가득한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그래, 니는 밥 챙겨 묵었나?” 새벽에 걸어도 밤이 다 되어 걸어도 언제나 내 끼니를 걱정하는 그 정겨운 멜로디.     


나의 노력 없이 만들어진 나의 습관들. 비가 오면 전화를 기다리고, 빨간 벽돌집 앞에 서서 고개를 들고 창문을 바라보고, 051로 시작하는 전화를 받으며 챙기지 않은 끼니도 먹었다고 거짓말하는 습관들. 그것들이 갈 길을 잃은 채 방황하고 있다. 비가 와도 오지 않는 전화에, 열리지 않는 창문에, 들리지 않는 질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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