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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도 Sep 24. 2021

우울증과 우울증 약에대하여

나는 우울증을 제대로 공부한 의사도 아니고 우울증 약을 제대로 공부한 약사도 아니지만, 우울증을 앓고 있고 우울증 약을 복용하고 있는 환자다. 오늘은 우울증과 우울증 약에 대해 내가 알게 된 사실을 조금 적어보려고 한다. 이는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이며, 사람마다 다를 수 있음을 사전에 말해두고 싶다. 기록을 위한 기록일 뿐이다. 새롭게 약을 복용한 지 반년이 지나가고 있고,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스스로 정리해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1. 극심한 우울증은 기억을 삭제하기도 한다.

내가 가장 심하게 우울증을 겪고 있을 당시의 기억이 거의 나지 않는다. 그 당시의 기억이 괴로워서 일부러 기억하지 않으려 했던 시간이 쌓여 결과적으로 그렇게 된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꽤 오랜 시간, 약 반년에서 일 년 가까이 되는 시간의 기억이 매우 희미하다.     


2. 상황이 바뀌어도 크게 달라지지 않는 우울은 병이다.

나는 내 우울이 내 비참한 현실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강한 믿음을 가지고 있었고, 그 때문에 복약을 거부한 기간이 길다. 그래서 떠나보았다. 그 현실을. 우울의 강도와 빈도가 줄어들기느하였으나 기저에 깔려있는 우울은 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행복한 현실과 괴로운 자아 사이에서 괴로워하기도 했고, 감정 기복이 심해지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3. 상담은 도움이 되지만 복약을 하면 더욱 도움이 된다.

복약을 거부하는 동안 상담을 약 8회 정도 받았다. 한 시간의 상담 중 매번 반 이상의 시간을 거의 울기만 하다 나오는 일이 잦았다. 상담을 받고 펑펑 울고 나오면 약 한 시간 정도 정말 머리가 개운했다. 24시간 내 말을 저렇게 들어주는 사람이 있다면 정말 복약은 필요 없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상담 선생님은 상담이 끝나갈 무렵 항상 복약을 하는 게 어떻겠냐고 권하셨고, 그때 좀 더 일찍 그 말을 들었어야 했는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4. 나의 단점 중 일부는 우울증의 현상일 수도 있다.

내가 싫어하는 나의 모습, 습관 행동, 생각, 여전히 많기는 하지만 약을 먹고 있는 지금과 과거를 비교하면 많이 줄어들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너무 오랜 시간 우울증을 방치해왔기 때문에 우울증에서 비롯된 현상들을 나의 단점으로 생각하고 또 그것이 자기혐오와 깊은 좌절을 일으키는 악순환에 빠져있었다. 그런데 복약을 시작한 뒤 잘 살펴보니 나는 생각보다 부지런했고, 똑똑했고, 열정이 있었다.      


4. 우울증 약은 꽤 바로 효과가 나타난다.

꼬박꼬박, 매일매일 잘 챙겨 먹는다는 조건을 잘 지킨다면 우울증 약의 효과는 매우 크고 빠른다. 자신에게 맞는 약을 찾기 위해 이런저런 약들을 바꿔가며 복약하는 경우도 있다고는 하지만 나의 경우 처음 처방받은 약이 잘 들어 복약 전 한 주와 복약 후 첫 주의 인격이 완전히 바뀌었다고 느껴질 정도였다. 복약 전에는 쓸데없이 희망찬 말들이 어이없게 느껴졌지만 복약 후에는 밑도 끝도 없는 불행의 말들이 더 어이없게 느껴진다는 게 내가 느낀 가장 크고 빠른 변화였다.      


5. 우울증 약은 살을 찌게 만들기도 한다.

우울증 약을 복용한 지 반년 약 10킬로 정도 체중의 증가가 있었다. 우울증 약이 체중 증가에 직접적인 영향이 있는지 없는지에 대해서는 아직 많은 논의가 있는 것 같지만 인터넷에 검색을 해보면 약 5킬로에서 30킬로 범위 내에 체중 증가가 발생한 환자들이 많이 있는 것으로 보아, 전혀 관계가 없다고 볼 수는 없을 것 같다. 실제로 내가 다니고 있는 병원에서도 체중 증가에 대한 부분을 고려하여 처방중인 약의 성분 또는 용량을 조절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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