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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도 Dec 22. 2021

이 길은 아닌가배

건축 실무 수련 1년의 후기

지난 8년 정도의 내 삶을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다.


건축을 전공했다. 졸업을 했다. 건축이 무서웠다. 도망쳤다. 도망친 길도 싫었다. 더 멀리 도망쳤다. 자꾸 생각이 났다. 외면했다. 결국 돌아왔다.


그래서 지금은 28살 설계사무소 1년 차 신입이다. 처음에는 친구들도 믿지 않았다. 다들 내가 당연히 계약직 혹은 아르바이트로 일을 하고 있는 것이라 생각했다. 당연한 일이다. 처음 도망칠 때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것처럼 떠들어댔으니 말이다.


친구를 만났다. 나와 똑같이 건축이 싫어 다른 길을 택한 친구였고, 그의 고민도 아직 끝나지는 않았다고 했다. 그는 내가 설계사무소에 멀쩡히 다니고 있는 걸 보니 자기도 어쩌면 다시 다녀봐도 될지 모르겠다고 했다. 그 말들 들으면서 기분이 아리송해졌다.


 다른 친구를 만났다. 내가 도망친 시기에 설계사무소에 취직해 이미 1년을 보낸 그였다. 그는 너무 힘들다고 했다. 너무 많은 책임이 지어지는 것도 싫고, 디자인도 하기 싫고, 대관업무는 정말 죽고 싶을 정도로 싫다고 했다. 그때의 나는 책임질 것도 없었고, 디자인을 할 일도 없었고, 대관업무가 무엇인지도 몰랐다. 나는 친구에게 나와 잘 맞는 회사에 들어간 것 같아서 다행인 것 같다고 했다. 친구는 아리송한 표정을 지었다.


시간이 흘렀다. 나는 책임을 질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졌다. 디자인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대관업무도 꽤 잘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여전히 나에게 그런 업무는 주어지지 않았다. 또다시 그 친구를 만났고, 여전히 힘들어하고 있는 그에게 나는 네가 부럽다고 말했다. 친구는 나를 이해하지 못하겠다고 했다. 나는 친구가 이해가지 않았다.


시간이 조금 더 흘렀다. 나는 무언가 책임지게 되었고, 작은 공간이지만 디자인 같은 것을 하게 되었다. 무서워졌다. 일 년 전의 내가 왜 도망을 쳤는지 기억이 났다. 그때의 그 기억들이 고스란히 살아나 내 어깨를 눌렀다. 잘 해내야 해. 독창적으로, 멋지게, 뻔하지 않으면서, 현실적으로, 또 조잡하지 않으면서, 너무 단조롭지 않게… 머릿속이 팽팽 돌았다. 화면 속의 마우스도 같은 자리를 팽팽 돌았다.


1년의 실무수련을 마치고 2022년을 맞이하려는 시점의 나는 매일 아침 출근해 오토캐드와 스케치업을 켜면서 생각한다. 이 길은 아닌가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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