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하도 Dec 04. 2021

저온숙성 완듀완듀 팡

자본의 빵, 그 완벽함에 대하여

2021년 11월 26일 오전 8시 53분 세븐일레븐 대치 삼화점에서 산 <저온숙성 완듀완듀 팡> 1,500원     


부드럽고 쫀득한 모닝빵 같은 겉과 아주 밀도 높은 완두 앙금 속으로 이루어져 있는 이 빵은 미쉐린 캐릭터처럼 통통한 부분과 날씬한 허리가 반복되는 모양으로 생겨 쪼개어 먹기 좋다. 보는 것보다 꽤 무게가 나가는 묵직한 빵이고, 비닐을 벗겨낼 때 빼고는 먹는 내내 소리가 나지 않는 조용한 빵이다. 아침을 못 먹고 나와 급하게 회사에서 카누 커피 한 컵과 먹고 있는 동안 2020년의 여름을 생각했다. 그 첫 만남을.     


2020년 6월 나는 남해에 있었다. 친구와 함께 2주간 방을 빌려 지내보기로 했다. 그 친구는 대학원 진학 문제로 머리가 복잡했고, 나는 취업 문제로 고민하고 있는 척을 했으나 무엇으로 고민해야 할지 모르겠는 정도로 절망적인 처지였다. 우리는 어차피 어두운 인생, 공기 좋고 물 좋은 동네에서 조금이라도 싱그럽게 어두운 것이 낫지 않겠냐는 마음으로 의기투합하여 떠났다. 당초의 계획은 잘 먹고, 잘 놀고, 잘 자는 것이었는데, 뒤에 두 가지는 알아서 또 따로 각자 잘 충족이 되었지만 첫 번째 ‘잘 먹자’는 계획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아침마다 간단하게 식빵을 구워 먹고, 점심 겸 저녁은 신선한 야채를 다양하게 이용한 요리를 해 먹자 결심하고 떠났건만, 그곳은 우리의 생각보다 더 시골이었고, 유일한 식자재 판매점인 하나로마트에서는 식빵을 팔지 않았다. 신선한 야채의 종류는 세 가지 정도가 전부였다.     


당황한 우리는 도착한 첫날밤, 늦은 시간까지 쿠팡을 뒤져가며 필요한 것들을 급히 시켜야 했다. 급하게 수급한 물품들과 현지의 아주 생것의 재료들로 우리는 꽤 즐겁게 요리를 하며 살았다. 특히 가장 많은 시간을 들인 것은 베이킹이었는데, “여유로운 아침, 커피와 함께하는 빵” 그것을 포기하지 못하여 저녁마다 반죽을 매우 쳐대고 꼭두새벽에 일어나 굽는 나날을 보냈다.     


하지만 몇 번의 발효 실패와 온도 조절 미스로 인해 축축한 밀가루 반죽과 빵의 형상을 한 까만 무언가를 번갈아 입에 넣어야 했던 어떤 날, 우리는 자본의 빵을 원하게 되었다. 남들이 구워준 보장된 맛을 원했다. 그래서 우리는 다시 하나로마트로 향했다. 마트를 돌고 돌아도 마땅한 것을 찾을 수 없어 절망하던 찰나에 뻥튀기들 아래 깔려있는 자본의 노르스름함이 보였다. 아주 잘 구워진 빵에서만 보이는 그 색, 보장된 색, 그것이 우리와 완듀완듀팡의 첫 만남이었다.     


상기된 얼굴로 옆구리에 하니씩 빵을 끼고 서둘러 집으로 돌아왔다. 비닐을 벗겨 빵을 쥐어보자 지금까지 우리가 만들었던 빵에서는 느낄 수 없었던 ‘적정함’이 느껴졌다. 주욱 잡아 뜯어내자 그리웠던 결이 보였다. 크게 베어 문 입 속에서는 확실한 맛이 가득했다. 이토록 손쉽게 얻을 수 있는 완벽한 행복이라니, 자본은 위대했다.     

매거진의 이전글 je ne veux pas travailer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