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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도 Jan 02. 2022

월급 210만 원과 강아지 병원비 210만 원

혼란하고 혼란한 마음

제대로 되었다고나 할까.. 남들이 보기에 라고 나 할까… 가장 그럴싸하다고나 할까… 아무튼 그런 취업을 처음으로 하게 되고 한 달이 흘렀다. 내 핸드폰 은행 어플 속 숫자의 단위가 달라졌다. 나는 매주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9시에 회사에 가서 6시에 집에 돌아왔을 뿐인데 돈이 생겼다. 그런 느낌이었다. 길을 걷다 하늘에서 똑 떨어진 것 같은.


첫 세 달은 그저 신기했다. 내가 책상에 앉아있다 오는데 돈을 주다니 회사도 참 어지간한 곳이라고 생각했다. 그다음 세 달은 의심스러웠다. 그 돈을 그냥 주는 것은 아닐 텐데… 하고 생각했다. 그다음 세 달 동안은 남들이 얼마나 버는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주변 지인들의 회사 푸념에 귀가 더욱 쫑긋해졌다. 마지막 세 달이 지나자 내가 받는 돈이 내 시간을 팔은 대가라기에는  너무 적다고 생각했다.




커다란 바퀴벌레가 나왔다. 이 집에 산지 20년이 다 되어가는데 바퀴벌레가 나온 건 처음이다. 처음인 것도 충격적인데 과장 없이 손바닥 반만 한 놈이었다. 온 집안이 뒤집어졌다. 결국 강아지를 포함한 딸, 아들 모두 바퀴벌레에서 멀어질 수 있는 가장 먼 대각선 거리에 서서 소리를 질러댔고, 엄마는 하는 수 없이 울고 소리 지르며 파리채로 열심히 때렸다. 바퀴는 죽었고, 차마 불에 지지 지도 못한 채 변기 속으로 흘러들어 갔다. 그의 최후가 있은 뒤 한참 동안 우리는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만 하루가 지나서야 바퀴벌레 약을 사 와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서둘렀다. 또다시 그런 충격을 받기에 우리 가족은 너무 연약했다.


바퀴약을 설치한 그 바로 다음날 연약한 우리의 심장을 다시 더 크게 상처 입힐 일이 일어났다. 바퀴약을 먹은 것이 손바닥 반만 한 바퀴벌레가 아니라 두 손 가득 안아도 버거운 우리 집 강아지였기 때문이다



강아지를 들고 울며 불며 응급실로 달려갔다. 가는 길에 핸드폰으로 검색을 해보니 바퀴벌레약에서는 약간 달달한 냄새가 나서 강아지들이 먹는 일이 종종 생긴 댔다. 보통 내가 유일하게 최악의 경우를 겪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면 무서움과 화남이 사그라들기 마련이나 이번만큼은 달랐다. 더더 무서워졌고 더욱 무서웠다.


강아지는 입원을 했다. 아무래도 독한 성분의 약이기 때문에 간인가 어떤 장기의 수치가 지나치게 높게 올라갔다고 했다. 그 작은 발에 링거 바늘을 꽂았다. 밤에는 혼자 자고 낮에는 면회가 가능했다. 셋째 날 아침 그새 많이 수척해진 모습으로 온몸 가득히 병원 냄새를 품고 달려오다 링거 줄이 빠지는 바람에 온 사방에 피를 뿌렸고, 엄마는 울었고, 간호사는 당황했고, 그는 다시 병실에 분리되었다.


계속 상태가 좋아지면 곧이라도 퇴원을 한다는 말이 반복되었고, 그렇게 닷새가 지났다. 완전히 회복하지는 못했지만 병원에 있는 게 큰 스트레스인 것 같다며 집에서 가족들의 간호를 받는 게 좋을 것 같다는 의사의 판단이 있었다. 우리는 기쁜 마음으로 강아지의 퇴원 준비를 마치고 창구 앞에 섰다. 그리고 또 한 번 우리 가족의 연약한 심장은 내려앉았다. 210만 원. 닷새 입원에 210만 원이었다. 보험이 없기에 어느 정도 각오는 하고 있었다만 생각하고 있던 한계를 훌쩍 뛰어넘은 가격이었다. 그러나 이제와 어찌할 다른 도리가 있겠나. 떨리는 손으로 카드를 내밀고 한 번도 본 적 없는 자릿수의 영수증을 받아 드는 수밖에.




집에 돌아오는  내내 2,100,000이라는 숫자가 머릿속을 뱅뱅 돌아다녔다. 2 다음 1 다음 0 다섯 . 이백십만 . 내가   동안 매주 월요일부터 금요일, 아홉 시부터 여섯 시까지 회사에서 시간을 보내야만  핸드폰  작은 화면으로 확인할  있는 . 어리둥절하기도 하고 고맙기도 하고 억울하기도  그런 . 하늘에서  떨어진  같다가도 파도 파도 끝이  보이는 바닥 같이 답답함 . 그리고 우리 강아지가 아프다면 닷새만에  사라질 그럴 . 가슴이 불규칙한 리듬을 만들어내며 뛰는  같았다. 혼란한 심장. 혼란한 머리. 혼란한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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