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고리즘 때문인지 내 글을 새롭게 읽고 구독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 그저 나와 비슷한 상황에서 급하게 검색으로 찾고 있을 누군가를 위해서 쓴 글이 많은 사람들에게 읽힌다는 게 썩 좋지만은 않았다. 인생 최악의 시절을 지속해서 구경당하는 입장이라 이미 나에게는 과거일이지만 이곳에서 새롭게 읽는 이들에 의해 나의 고통은 현재로 존재하게 된다.
순전히 타인의 호기심 충족을 위해 퇴원 이후 이야기들을 하나하나 다 풀어낼 생각도 없다. 아마 이건 조회수로만으로도 수익이라도 낼 수 있는 구조가 아닌 브런치의 한계일 수도 있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일 새로운 알람을 알려주는 브런치 아이콘을 보면서 퇴원 후 해피엔딩을 기대하는 사람들에게 아직은 과정 중에 있지만 분명히 그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알려주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1월은 아기의 첫돌이었다. 처음 아기를 낳고 교수님께서 24시간 72시간 일주일 한 달 그리고 일 년을 기점으로 아기가 살 수 있을지 없을지 알 수 있다고 하셨었는데, 그 일 년이 되었다. 죽음의 그림자에서 벗어난 것 같아 너무 기뻤다.
퇴원 후 새로운 병명이 끊임없이 추가되고 이미 괜찮은 줄 알았던 것들이 나빠질 수 있는 상황에 처해지는 등 여러 가지 일들이 있었고 나는 여전히 일주일에 4일 정도는 병원에 다니고 있다. 아기가 신생아 중환자실에 있을 땐 모든 의사결정을 의사에게 위임하는데 퇴원하고 나니 내가 직접 알아보고 물어보고 지켜봐야 할게 많았다. 다른 유명 의사에게도 찾아갔었는데 이미 한쪽 눈을 잃은 상태에서 다른 눈도 잃게 될 거라는 소리를 듣고 새벽에 수유하면서 울었던 날들도 있었고, 암일 수도 있는 종양을 발견해서 심장이 떨어질 것 같은 순간들도 있었다. 크게는 그렇고 작게는 청력검사를 통과 못해 보청기를 껴야 한다거나 안경을 바로 씌워야 하거나 의사들도 본 적이 없는 당근 알레르기가 있거나 하는 자잘한 일들이 끊임없이 일어났다가 호전되기도 하고 무마되기도 하였다. 남들은 듣기만 해도 숨 막히는 이런 상황들이 내 아이의 현재이자 미래이다.
그런데
아무도 우울하지 않다. 아직 기지는 못하지만 뒤집기와 되집기로 굴러서 내 옆구리에서 자고 싶어 하는 귀여운 아기의 존재만으로 즐겁고 행복하다. 흡사 생명이 위태로운 수술을 하고 나서 맞는 모르핀 같은 존재이다. 함께 있고 쳐다보고 있는 동안은 고통의 개념이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는 우리만의 천국에서 웃고 떠들고 살고 있다. 아기의 특성을 하나하나 발견하는 재미가 있고 그 특성이 시간 지남에 따라 바뀌기 때문에 지루할 틈이 없다. 나의 육아가 남들에 비해 걱정해야 할 사항들이 많아서 그런지 키우는 것 자체는 하나도 힘들지 않고 귀엽기만 하다.
초등학교 4학년 여름방학이었다. 유난히 혓바닥이 검고 우리만 보면 짖어대서 두려움에 벌벌 떨게 했던 이모네 개가 새끼를 낳았는데 그 잡종 강아지를 집으로 데려와서 하루 종일 구경하던 때와 비슷하다. 자는 모습, 부스럭거리는 모습, 우유 먹는 모습, 어설프게 돌아다니는 모습 하나하나 다 귀여웠다. 강아지와 함께 자겠다고 거실에 이불 펴고 자면서 강아지가 보고 싶어서 아침에 눈이 번쩍 떠지던 그날들과 똑같은 시간을 보내고 있다. 결국 그 강아지는 오빠와 내가 너무 집착하는 바람에 김치 다라이 속에 숨어서 우리를 피하게 됐지만.. 아마도 그것마저 아기와 나의 미래일 것 같다.
살아남기가 쉽지 않다.
살아남게 하기가 쉽지 않다.
미숙아를 키워보니 처음에 나에게 아기를 보내주라던 그 의사는 자연임신으로 또 금방 아기를 가질 수 있으니 굳이 고생할 필요 없다는 생각으로 보내주라고 한 것 같다. 그리고 그때 유산했으면 정말 다시 임신해서 다른 아기를 갖게 되긴 했겠지
하지만 살린 것에 대한 후회는 없다.
귀여우니까
아기가 신생아 중환자실에 있는 동안 병원비는 3억이 나왔다. 그리고 나라에서 2억 9천만 원을 내줬다. 아이 하나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고 하는데 우리 아이는 전 국민이 돌봐줬다. 그래서 나의 목표는 아이를 좋은 납세자로 키우는 것이다. 좋은 납세자가 되려면 직장도 필요하고 정직함과 자존감도 필요하다. 세금을 너무 많이 떼 가서 화난 분들께 덕분에 이런 아이가 살아가고 있다고 꼭 말하고 싶었다.
감사합니다. 덕분에 아이도 나도 남편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