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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skalai Aug 22. 2016

화산재를 맞으며 걷다

인도네시아 자바 섬 동부 브로모 화산 2

브로모 화산 Gunung Bromo은 텡게르 크레이터 Tengger Crater라는 거대한 분화구 안에 든 화산 셋 중 하나로, 분화구 입구에 자리한 마을 쩨모로 라왕에서 걸어서 한 시간 정도 거리에 있다.


앞선 글에서 텡게르 분화구를 반대쪽에서 가로질러 쩨모로 라왕으로 가는 방법에 대해서는 적었고, 이번에는 실제 브로모 화산 올라보기.


족자카르타에서 출발하든, 수라바야나 말랑에서 출발하든, 발리에서 출발하든 모든 투어는 캄캄한 새벽에 브로모 등반을 시킨다고 들었다. 쩨모로 라왕의 숙소에서 훨씬 싼 가격에 낄 수 있는 투어도 마찬가지다. 다들 일출 시간에 맞춰 브로모에 올라간다. 그래서 예전에 다녀온 지인에게 '깜깜한 데다 말똥 밟기 쉬우니 돈 아끼지 말고 그냥 말 타고 올라가라'는 조언까지 들었다. 그래 말을 타야지, 마음에 새겨두면 뭘 하나. 어서 보고 싶은 마음에 동행을 끌고(... 다시 한번 죄송) 오후에 들어갔더니, 말이고 뭐고 없었다. 다들 아침 장사하고 들어가나 보다.


아무튼, 쩨모로 라왕 마을에서 분화구 입구로 올라가면 이런 풍경이 내려다보인다. 연기를 펑펑 뿜어내고 있는 저 산이 바로 브로모. 예전 사진을 보면 좀 더 윗부분이 평평했던 것 같은데, 최근의 큰 분화로 모양이 이지러졌나 보다.



비탈길로 쭉 내려가서 바닥에 이르면 눈높이가 아래 사진처럼 바뀐다. 이제 평원을 가로질러 브로모 산까지 걸어가야지. 투어를 이용했다면 그냥 평원을 차로 달려서 브로모 밑에 딱 내려줬겠지만, 우린 그런 거 없다. 땅이 너무 평평해서 아득히 멀어 보이지만 그래 봐야 3킬로미터. 한 시간이 안 걸린다. 기이하고 광활한 풍경에 (나만) 신이 나서 걸었다.  



지도도 안내도 없이 대충 방향만 보고 걸었더니, 엉뚱하게 용암이 흘러 지나간 강바닥을 건너느라 낑낑거리기도 하고. 걷다 보니 엇, 이 산 아니다! 옆산으로 왔다! 해가며 브로모 아래 도착. 날이 흐리다 싶더니만, 걷다 보니 비까지 온다. 그리고 브로모가 가까워오자 내리는 비에 꺼먼 게 섞인다. 바닥의 까맣고 고운 모래와 같은 물질, 화산재다. 동행은 우산을 들고, 얇은 방수 잠바를 챙겨 나간 나만 얌체같이 뒤집어썼다. 그래도 여기선 옷이며 신발이며 버리기 십상이다. (동행의 시각: 여기)




이 산이 아닌가벼. 브로모 옆산... 수메루 산이려나. 봉우리가 다르게 생겼는데, 바닥에서 걷다 보니 위에 안개가 껴서 헷갈렸다. 덕분에 아차 하며 아래와 같은 강바닥을 건너서 겨우 원래 갔어야 할 길로 복귀.





브로모 아래를 오르기 시작하니 드디어 수많은 말발굽 자국이...! 그러나 물론, 말은 한 마리도 없었다. 그냥 열심히 걸어서 계단 아래까지 갔다. 브로모 자체의 해발고도는 2392미터. 그러나 그건 해수면부터의 높이고, 분화구 바닥에서부터는 딱 동네 뒷산 정도 높이다.


저질 체력 주제에, 동네 뒷산이라고 힘들지 않단 소린 아니다. 고운 화산재에 발이 자꾸 빠지는 오르막길이라 헥헥거리며 계단 아래까지 갔다. 거기까지 가고 나니 겨우 아직 장사를 끝내지 않은 작은 움막이 나온다. 거기서 박카스 비슷한 음료수 하나씩 사 먹고 다시 힘내서.



이 계단을 오르면 드디어 브로모 분화구 입구! 이때쯤엔 이미 상당히 지친 데다가, 비가 오니 발밑이 불안하다. 조심조심 걸어 올라갔다.


여기쯤 오면 유황 냄새가 매캐하고, 끊임없이 천둥소리 같은 굉음이 울린다. 다 올라가고 나면 난간도 변변치 않은 상태로 그냥 뻥 뚫린 분화구가 보인다.


아찔하다.



형용할 수 없다거나 압도적이라거나 하는 형용사는 이런 곳 때문에 생긴 말이지 않을까. 화산이 신이라는 믿음이 생긴 것도 당연하다. 사진으로는 담기지 않는 위용이다. 안전장치고 뭐고 없는데 비까지 오니 다리가 떨리는데...


... 동행의 증언에 따르면 40일 동안 여행하면서 여기서 내가 제일 환하게 웃었다고 한다.


신난 건 좋았지만 다시 걸어 돌아가자니 녹초였다. 그나마 갈 때는 오토바이 몇 대가 따라와서 호객행위라도 하더니, 마을로 돌아가려니 그것도 없다. 나는 왜 늘 고생을 사서 하는가.


아무튼 정말 어처구니없이 가까운 곳에서 화산을 실감하고 싶다면, 브로모가 딱이다. 하와이나 일본의 활화산은 안전 기준이 엄격하다. 게다가 그런 곳에서 분화구를 제대로 내려다보고 싶으면 헬기 관광을 이용해야 한다. 교통은 그쪽이 더 낫지만.


브로모라는 이름은 인도의 창조신 브라흐마에서 왔다고 한다.


- 2016.03.23


*


- 사실 저런 식으로 브로모까지 하이킹을 하지 않아도 쩨모로 라왕에는 뷰포인트가 많다. 분화구 안으로 들어가려면 우리 돈으로 2만원 이상을 내야 하지만, 다음 날 아침에 올라간 구눙 쁘난자깐Gunung Penanjakan 같은 곳만 해도 무료다. 그렇지만 역시, 거기까지 갔다면 한 번은 걸어가 보는 게 좋겠다. 어차피 걸핏하면 분화하는 화산이라 운이 따라주지 않으면 못들어간다.


- 우리가 잡은 숙소는 카페 라바 호스텔. Cafe Lava Hostel. 나쁘지 않은 숙소이긴 한데, 비탈을 따라 지어놓아서 가방을 들고 계단을 오르내려야 한다. 같이 영업하는 식당을 가려 해도 이리저리 걸어 올라가야 한다. 식당 음식 수준은 괜찮음.


- 앞글에서도 대충 적긴 했지만, 브로모에 제일 싸게 가는 방법은 족자카르타에서 발리까지 가다가 브로모와 이젠에 들르는 투어 프로그램이다. 썩 좋지 않은 도로를 미니버스로 10시간 이상씩 달려야 하고, 새벽에 브로모 등반하고 다시 이동, 새벽에 이젠 등반하고 다시 이동하는 식이라서 체력에 자신있는 사람이나 할 법 하다. 투어 없이 자유여행으로 브로모를 보러 갈 경우 좋은 방법은 족자카르타에서 수라바야까지 기차 이동, 수라바야에서 쁘로볼링고까지 버스 이동, 쁘로볼링고에서 미니 버스로 쩨모로라왕까지 이동한 후 숙박하면서 하이킹. 시간이 더 걸릴 뿐 돈이 많이 들 것 같지는 않다. 내가 이용한 세 번째 방법이 아니라도, 쩨모로 라왕에서 며칠 숙박하면서 사륜구동이나 오토바이를 고용하면 분화구 전체를 돌아볼 수 있다.


- 아참. 중요한 걸 하나 빠뜨렸네. 앞서 적은 '브로모 가는 방법'은 일단 자바 섬에 도착한 후의 이야기고, 족자카르타든 수라바야든 한국에서 가는 직항편은 없다. 아예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에서 갈아타거나, 인도네시아로 바로 들어가려면 자카르타 혹은 발리로 가서 갈아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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