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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ednesdayblue Jul 21. 2016

비밀은 없다

세상은 조금도 나아지지 않고 있다

'20년 후에도 그럽니까? 거기는?'

며칠 전 뉴스룸에 나온 조진웅은 이 대사 한 줄만 보고 드라마(시그널) 출연을 결심했다고 한다.


앵커는 더 이상 부연설명을 요구하지 않았지만 퇴행을 거듭하고 있는 작금의 현실에 대한 배우의 본능적 분노가 전달되기에는 충분했다.


'비밀은 없다'는 '미쓰 홍당무'로 데뷔했던 이경미 감독의 두 번째 작품이다. 8년전 그녀는 '미쓰 홍당무'를 통해 우리사회에 뿌리깊게 자리잡은 남성본위와 그 속에서 점차 대상화 되어가는 여성들의 위태로움과 절망을  웃픈 이야기로 그려냈다.

'미쓰 홍당무' 이후 8년이 지난 지금 그녀에게 세상은 어떤 풍경일까?


'비밀은 없다'에서 보여지는 2016년은 온갖 종류의 편견과 부조리, 탐욕의 결정판이다.


지역차별, 왕따, 동성애, 선거꾼, 빈부격차, 불륜, 청부살인...


영화는 장르적으로 스릴러의 외피를 하고 있지만 손예진의 모노드라마에 가깝다. 어느 날 딸이 실종되고 그녀를 찾기 위해, 그 이유를 찾기 위해 전력 질주한다.


하지만 그녀를 둘러싼 현실은 녹록치 않다. 딸의 실종이 선거에 좋지 않은 영향을 줄 것을 은근히 걱정하는 남편(김주혁), 전라도 출신이라는 이유로 그녀를 힐난하는 선거운동원들, 경쟁 후보와 내통하는 사무국장, 뭔가 미심쩍은 경찰들, 딸의 행적을 숨기는 선생과 친구들..


오직 믿을 수 있는 건 자기 자신 뿐이다. 그녀는 되뇌인다 '생각하자 생각하자!'


결국 실종된 딸은 싸늘한 시체로 돌아오고 잠시 절망한다. 하지만 그녀는 멈추지 않는다. 딸이 남긴 흔적들을 싹싹히 뒤지며 끝까지 집요하게 추적한다.


손예진이 보여준 연홍은 그 동안 우리에게 강요되어 왔던 엄마의 모습을 전복시킨다. 울부짖고 쓰러지고 그리워하고 자책하는... 어쩌면.. 마음만 애쓰는 무기력한 엄마가 아니다.


미쓰 홍당무의 소심한 복수가 아니라 날  선 눈으로 진실을 찾아내고 주저없이 응징을 한다.


감독은 8년전에 비해 더 추악해진 현실을 민낯으로 보여주되 그것을 압도하는 새로운 여성 캐릭터를 등장시킴으로써 이 땅의 여자들에게 강요되는 마이너리티로서의 자세를 거부한다.

조진웅은 어떤 마음으로 이 영화를 봤을까? 역사는 진보한다는 믿음이 순진한 이상주의자의 자위쯤으로 취급되는 요즘, 연홍을 통해 희망을 볼 수 있었을까? 아님 또 다시 20년 후를 되뇌였을까?


단톡방에서 동기 여자들을 성노리개 취급을 하고 김치녀 된장녀 따위의 폭력적인 말들이 난무하는 시대에, 연홍처럼 살아내라고 하는게 과연 합당한 요구인지는 모를 일이다.


자칫 개인의 자세전환만 요구한다면 8년후에도 우린 또 다시 그녀들의 날 선 눈을 마주할 수 밖에 없다. 이건 여자들의 숙제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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