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리 케인 기자회견에서 한국인이 느낀 영국과 독일 기자의 차이점
13일 오후 해리 케인 입단 기자회견에 갔다. 케인의 스케줄은 살인적이다. 11일에 뮌헨에 도착해서 계약을 완료하고, 12일 슈퍼컵에 뛰고, 13일에는 기자회견을 소화한다. 다행히 피곤해 보이지는 않는다. 1억 2천만 파운드라는 분데스리가 역대 최고 이적료를 받고 왔다. 토트넘에서보다 우승 가능성도 크다. 내심 기대했을 슈퍼컵은 놓쳤지만 아직 대회 3개가 남아있다. 누구든 그의 입장이었으면 피곤해도 싱글벙글이었을 거다.
그는 지난 3일 동안 뮌헨에서 겪는 모든 순간이 흥미롭단다. 무엇보다 "날씨가 너무 좋아서"라고. 런던 날씨를 검색해 보니 구름과 비 아이콘이 즐비하다. 최고 기온은 겨우 21도 안팎. 30도를 웃도는 해가 쨍쨍한 뮌헨이 사랑스러울 수밖에 없다.
왼편에 앉아있던 영국 기자들은 고개를 연신 끄덕였다. 꽤 많은 기자가 영국에서 건너왔다. 최소 10명은 되어 보였다. 잉글랜드 대표팀 캡틴의 인생 첫 이적(!) 현장을 놓치고 싶지 않았을 테다. 전날 열린 슈퍼컵부터 케인 기자회견 현장까지 영국 영어가 온사방에서 들린다. 내심 '케인 파워'가 얼마나 센 지 느낄 수 있었다.
예정된 기자회견 진행 시간은 30분이었다. 언론 대변인 디터 니클레스는 초반에 독일 기자들에게 먼저 질문 권한을 줬다. 대체로 비슷한 질문이 나왔다. 포커스는 이적료와 독일 축구 적응이었다. 분데스리가에서 본 적 없는 액수의 이적료가 오가며 케인이 느낄 부담감, 혹은 프리미어리그에서는 그리 크지 않은(?) 액수이니 별 느낌이 없는지, 런던에서 나고 자란 그가 느낀 독일 축구 등등 기사가 몇 개씩이나 나올 법한 내용이었다. 토마스 뮐러와의 케미도 확인했다. 바이에른의 아이콘 뮐러가 직접 나서서 오피셜을, 구단보다 먼저 발표했으니 그와의 만남 역시 화젯거리였다.
마이크는 영국 기자들에게 넘어갔다. 질문 방식이 특이했다. 한국과 독일에서 경험해보지 못한 스타일이었다. 한국과 독일은 대체로 비슷하다. 질문을 짧게 한다. 추가 질문이 있더라도 바로 던지지 않고 다른 사람들에게 마이크가 넘어간 후 다시 한번 손을 든다. 추측해 보자면, 소규모 인터뷰가 아닌 한정된 시간에 최대한 많은 기자가 질문을 해야 하는 기자회견이란 점을 감안해서 그런 것 같다. 영국 기자들은 남달랐다. 질문에 서사가 있었다. 이를 테면 "런던에서 오래 살았는데 가족은 뮌헨에서의 삶을 어떻게 생각하며, 앞으로의 계획은 무엇이고, 네가 결정을 내리는데 가족이 어떤 역할을 했나. 가족은 네게 아주 중요한 존재이지 않나. 그렇지? 특히 넷째를 가진 아내도 중요한 역할을 했을 것 같은데"식의. "네게 중요한 존재인 가족이 이적에 어떤 역할을 미쳤고, 여기서 어떻게 적응해 나갈 예정인가"로 줄일 수 있는 질문이지만 마치 대화하듯 천천히 풀어나간다. 질문이 길어질수록 우측에 앉아있던 독일 기자들은 '이게 무슨 일이야' 표정으로 (진짜 웃겼다) 서로를 쳐다봤다.
막판에 마이크를 받은 한 기자는 약 세 개의 질문을 연달아했다. 질문이라기보다는 케인과의 티키타카였다. 역시 가족에 대한 내용이었다. 그리 중요성이 크지 않은 대화(!)여서 모두 타자 두드리기를 멈췄다. 나도 그때는 사실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다. 해당 기자는 두 번째 질문부터는 심지어 마이크도 내렸다. 케인도 카메라를 쳐다보고 말하는 게 아닌 그 사람들 쳐다보고 말했다. 니클레스 대변인은 끊지도 못하고 안절부절. 어느 정도로 영양가가 없었냐면, 바이에른 뮌헨 공식 홈페이지에도 기록되지 않았다. 기자회견 전문을 옮긴 게시물인데 말이다.
신선한 기자회견 현장이었다. 가끔 BBC 등 유튜브에서 프리미어리그 감독과 기자들이 갑론을박을 펼치는 걸 보는데, 괜히 그런 장면이 나오는 게 아니구나 싶었다. 독일에서는 보기 힘든 광경이었다.
첫 회사 <포포투>에 입사한 지 얼마 안 됐을 때 영국에 있었던 선배가 해준 이야기가 문득 생각났다. "영국에서는 애들(기자들)이 말이 엄청 많아. 끝까지 물고 늘어져. 싸우기도 하고." 영국 기자 열댓 명으로도 '와 말 진짜 많네'를 느꼈는데 실제 프리미어리그 현장은 어느 정도인지 대충 짐작 간다.
번외 하이라이트는 사진 세션이었다. 드레센 회장과 케인이 9번 유니폼을 들고 사진을 찍는데 영국에서 온 포토그래퍼들이 앞줄에 진을 치고 카메라를 한껏 올리고 있었다. 뒤쪽에 있는 포토그래퍼들을 위해 약간 낮춰서 찍는 게 이곳의 암묵적인 룰인데, 그 룰이 화끈하게 깨졌다. 독일 포토그래퍼들은 카메라 내리라며 윽박질렀지만 듣지 않았다. 당연하지, 그 말을 독일어로 하면 누가 알아듣겠어. 뒤쪽에 있던 독일 포토그래퍼들은 잔뜩 짜증을 냈다. 분위기를 눈치챈 니클레스 대변인은 케인을 한번 더 단독으로 세워 2차 사진 세션(전례 없는)을 진행했다.
여러모로 재미있는 현장이었다.
사진=정재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