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랜드+이야기
미리 얘기하지만 난 힙스터다.
힙스터라는 단어를 입에 올리는 순간부터 힙해지지 않는다는 것쯤은 잘 알고 있지만, 날 소개하려면 어쩔 수 없다.
난 남들이 좋다는 건 항상 거부해 왔다. 줄서서 기다리는 핫플레이스, 안보면 대화가 안통하는 천만 관객 영화, 길거리에 울려 퍼지는 케이팝, 유행따라 구매한 벌룬 팬츠 등은 내 취향과 거리가 멀다. 멜론보단 스포티파이, 크리스토퍼 놀란보단 라스 폰 트리에, 무신사보단 에임레온도르, 탕후루보단 비건 샐러드, 킥보드보단 픽시 자전거. 격조있는 대화를 위해 남들이 잘 모르는 단어 몇 개는 외우고 다니는게 좋다. 남들이 이상하게 쳐다볼 땐 니들이 뭘 알겠냐는 듯 힙스터의 필수 덕목인 냉소적인 제스처로 응수하며 너희는 절대 알 수 없는 나만의 문화적 소양을 추구한다.
아 참, 물론 실리카겔 노래도 즐겨 듣는다.
유치한 가십이 넘쳐나는 국내 미디어에 질린 나는 힙스터 호소인들이 즐겨 찾는 영어로 된 고품격 콘텐츠를 주로 소비했다.
특히 팟캐스트.
난 미스치프를 그렇게 알게 되었고, 그들의 웹사이트를 처음 방문했을 때 팬티를 갈아입었다.
난 그동안 축적된 경험을 통해 누구보다 본능적으로 쿨함을 재빨리 알아차린다. 미스치프가 그랬다. 마치 80년대 펑크족을 처음 봤을 때의 쾌감이랄까. 난 한국의 대다수가 미스치프의 존재를 모를 때부터(이는 굉장히 중요하다) 그렇게 미스치프의 빠가 되어갔고, 그들이 프로젝트를 하나 둘 선보일 때마다 혼자 낄낄대며 좋아했다.
물론 다른 사람 모르게 나 혼자 좋아했다. 힙스터는 그런 것이다.
그런 미스치프는 이제 꽤나 유명해졌고 한국에서 전시까지 열었다. 국내 거의 모든 홍보 매체들이 그들과 인터뷰를 했다.
쿨하지 않았다.
뭔가 메이저의 냄새가 나기 시작한 걸 진즉 알아챘지만, 믿고 싶지 않은 마음으로 일단 티켓을 예매했다. 설레는 마음(하지만 흥분하지는 않았다)으로 대림미술관을 찾았고 난 서울의 거의 모든 힙쟁이들을 감상할 수 있었다. 그곳엔 화려한 보그 잡지가 있었다.
물질주의를 향한 어퍼컷 따윈 존재하지 않았다. 오히려 한껏 자본주의의 달콤함을 만끽하는 느낌이었다. 전시관 어디에도 서사는 보이지 않고 인스타그래머블한 포토존만 있었다. 나만의 날렵했던 락스타가 이웃집 아저씨의 푸근한 미소를 띠며 예능에 나와 사랑 노래를 부르던 풍경과 비슷했다. 입구 앞 안내문이 있어 정말 다행이었다. 하마터면 국내 패션 브랜드 미스치프의 전시로 착각할 뻔했으니까. 배경지식이 없었다면 수많은 기업들과의 화려한 “콜라보레이션”에 찬사를 보냈을 것이다.
힙스터는 원래 유명해지면 초심을 잃었다고 욕한다. 그렇다. 난 미스치프가 질렸다.
힙스터가 되기 위한 여정은 고되고 험난하다.
힙스터는 자신이 좋아하던 무언가가 갑자기 힙해지면 싫증을 내며 새로운 힙한 무언가를 찾아 떠나야 한다. 미스치프는 사회의 기득권과 현상에 대한 도전과 조소로 유명해졌다. 하지만 지금은 그들이 기득권이 되어 있다. 그들의 칼날은 아무것도 갖지 않았을 때보다 날카롭지 않을 것이다. 힙스터가 숙명처럼 새로운 무언가를 찾아 헤매듯, 미스치프도 언더독이 아닌 상태로 기대에 가득찬 힙스터들을 만족시켜야 한다.
미스치프는 이제 힙하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