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역시 인도는 인도
바라나시에서 리시케시로 가는 데에는 꼬박 하루 가까이가 걸린다. 우선 바라나시 정션에서 하리드와르 역까지 18시간을 기차로 이동한 뒤, 하리드와르에서 다시 로컬 버스로 1시간을 더 가면 비로소 요가의 도시이자 상류 갠지스강이 도시 전체를 가로지르는 리시케시가 나타난다. 북쪽 지방이라 그런지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피부로 느껴지는 공기부터 우리가 왔던 바라나시와는 달리 시원했고, 여느 인도의 도시들과는 달리 도시 전체가 차분하고 조용한 느낌이었다.
또한 놀라운 것은, 갠지스강이 맑았다는 것이다. 사실 리시케시는 갠지스강의 발원지에 지리적으로 가깝기 때문에 물이 깨끗한 게 당연하지만, 어제까지 바라나시에 있었던 우리에게 초록빛이 도는 맑은 갠지스강은 한없이 낯설었다. 리시케시에서 바라나시까지 내려가는 동안 갠지스강에게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우리는 락쉬만 줄라에 있는 한 아쉬람에 짐을 풀었다. 리시케시에는 락쉬만 줄라와 람 줄라라는 이름의 큰 현수교가 2개 있는데, 이 이름들은 다리 이름임과 동시에 그 다리 일대의 지역을 부를 때도 사용되었다. 락쉬만 줄라 쪽은 여행자 숙소나 식당이 많아 우리 같은 배낭여행자들이 많이 묵는 곳이었고, 걸어서 30분 정도가 걸리는 람 줄라는 종교적인 색채가 좀 더 강했다. 아쉬람은 힌두교도 수행자들이 모여 사는 곳을 이르는 말인데, 리시케시에는 요가와 힌두교 수행을 할 수 있으며 여행자들에게는 숙소로 내어주기도 하는 이런 아쉬람들이 곳곳에 있다.
우리가 묵은 숙소에는 방마다 넓은 창과 작은 발코니가 딸려 있고, 발코니에서는 갠지스강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었다. 나는 밤마다 추위를 이겨내고자 담요를 칭칭 두르고 발코니에 나가 어둠이 짙게 깔린 강을 하염없이 바라보곤 했었다.
숙소의 단점이라고는 딱 하나, 온수가 잘 안 나온다는 것뿐이었는데 정확히 말하면 바로 옆 방과 온수통이 연결되어 있어서 한쪽 방에서 한동안 따뜻한 물을 쓰고 나면 다른 쪽 방에서는 한참을 기다려야 다시 따뜻한 물을 쓸 수 있었다. 바라나시에서 함께 넘어온 D와 바로 옆 방에 묵었었는데 이런 사정 탓에 우리는 항상 누가 먼저 씻을지 미리 정해야만 했었다.
그래도 인도의 다른 숙소들에 비하면 이곳은 사정이 좋은 편에 속했다. 다르질링에서는 온수를 숙소 주인에게 30분 전쯤에 미리 말해서 돈을 내고 양동이에 받아서 써야 했고, 바라나시에서는 그냥 안 나왔다. 옆 방 사람과 시간만 잘 조율하면 따뜻한 물에 샤워를 할 수 있다는 것은 인도에서는 나쁘지 않은 일이었다.
리시케시가 다른 도시와 가장 다른 점 중 하나는 채식과 금주의 도시라는 것이다. 평소 술과 고기를 즐기는 나는 리시케시에 오면 고기와 술을 끊고 요가를 배워 몸과 마음을 정화해야겠다는 굳은 결심을 하고 왔지만 사람은 그렇게 쉽게 변하지 않는다.
우선 나는 채식에 대해 굉장한 오해를 하고 있었던 것 같다. ‘채식’하면 조리되지 않은 초록 잎사귀들만 떠올렸었는데 사실은 입맛을 돋우는 맛있는 음식들이 상당히 많았다. 먼저 나는 시즐러에 꽂혔다. 시즐러(Sizzler)란 일종의 철판 볶음 요리인데 물론 리시케시에서는 고기가 들어간 시즐러는 팔지 않고 야채 시즐러를 팔았으며, 나는 그중에도 버섯 시즐러에 꽂혀서 한동안 매일같이 버섯 시즐러를 먹어 대곤 했었다.
술의 경우, 있으면 잘 마시지만 없으면 없는 대로 상관이 없어서 생각지도 않고 있었는데 어느 날, 저녁 시간 전까지 차나 마시면서 시간을 때우러 들어간 한 가게 주인에게서 뜻밖의 제안을 받았다. 우리가 원하면 약간의 수고비만 받고 술도 구해줄 수 있고 닭고기도 구해줄 수 있다는 것이었다. 보아하니 근처 마을까지 직접 오토바이를 타고 가서 사 오는 모양이었다. 게다가 따라와 보라고 해서 들어 간 가게 안마당에서는 이미 가게 직원들 및 그들의 친구들로 보이는 사람들이 모닥불을 피워 놓고 앉아 양주를 마시고 있었다. 나는 그날은 술을 별로 마시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일행들과 함께 그냥 모닥불 앞에 앉아서 몸만 녹였지만, 불 앞에서 흥겹게 술을 마시는 가게 사람들을 보며 리시케시도 인도라는 사실을 잠시 까먹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리시케시도 인도였다. 영원히 되는 것도, 또 영원히 안 되는 것도 없는 그 인도 말이다.
하루는 걸어서 락쉬만 줄라에서 약 6km 떨어진 풀차티(Phoolchatti)라는 마을까지 다녀왔다. 가는 길 곳곳에 있던 긴 꼬리 원숭이들과 떠돌이 개들을 이겨 내고 도착한 풀차티는 꽃의 마을이라고 되어 있던 가이드북의 설명과는 달리 그냥 평범하고 작은 마을이었다. 어쩌면 우리가 간 계절이 겨울이어서 그랬을지도 모른다. 어디가 꽃의 마을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어쨌든 낯선 도시에서 걷는다는 것 자체가 좋았다.
풀차티에서 리시케시 시내로 돌아오는 길에는 셰퍼드 한 마리가 우리를 인도해주었다. 아니, 사실은 인도해 주는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생긴 것과는 달리 허약해서 온 동네 개들에게 한 번씩 치이고 다니는 이 셰퍼드를 우리가 오는 내내 다른 개들에게서 보호해줬다고 말하는 편이 낫겠다. 결국 리시케시까지 우리를 따라온 이 셰퍼드는 저녁을 먹으러 간 레스토랑 앞에서 경비 아저씨에게 쫓겨 어디론가 떠나 버렸다. 겉만 멀쩡한 저 셰퍼드가 풀차티까지 다른 개들의 공격을 받지 않고, 길도 잃지 않고 잘 돌아갈 수는 있을까 밥을 먹는 내내 그게 걱정이었다.
풀차티에 다녀온 다음 날에는 람 줄라에 다녀왔다. 왕복 10km가 넘는 길을 걸어서 다녀왔더니 도보 30분 거리에 위치한 람 줄라는 숙소 앞 슈퍼 가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람 줄라에서 점심을 먹고 강가에 앉아 있는데 한 아주머니가 물고기 밥을 주고 있어서 쳐다보았더니 나에게 그릇을 건네며 한 번 직접 줘보고 싶냐고 물었다. 그래서 알겠다고 하고 물고기 밥을 다 주고 나니 그 아주머니는 나에게 물고기 밥값으로 돈을 달라고 말했다. 집 밖에서 생활한 지 3개월이 다 되어가고 있었지만 여전히 가끔씩은 이렇게 소소하게 당하기도(?) 한다. 그래도 내 손으로 직접 물고기 밥을 주긴 했으니 물고기 밥값으로 돈을 내는 건 이만하면 합리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람 줄라에 다녀와서 이른 저녁으로 메기 라면을 먹으러 가는 길이었다. 길가에 새끼 원숭이 한 마리가 혼자 앉아 있기에 귀여워서 가까이에서 보려고 다가갔다. 물론 어미가 언제 나타날지 모르니 새끼가 혼자 있으면 너무 가까이 가지 말라는 말을 어디에선가 들은 적이 있기 때문에 나름대로의 안전거리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때 새끼 원숭이가 갑자기 어디론가 움직이기에 나도 모르게 고개를 빼서 그쪽을 보려고 하자마자 무언가 내 머리 위로 날아왔다. 일순간에 눈에 불이 번쩍하고 무언가가 내 머리를 쥐어뜯었다. 두피가 뜯겨나가는 듯한 느낌이 들었지만 그게 무엇인지도 몰랐다. 그것이 무엇인지 알기까지는 딱 5초쯤이 걸렸다. 내가 자기 자식을 해치려는 건 줄 알았는지 어미 원숭이가 나에게 달려든 것이었다. 어미 원숭이는 내 볼과 눈가를 할퀴고 머리를 쥐어뜯었다.
주변 사람들이 도와주지 않았더라면 지금쯤 정말로 머리털이 다 뽑히고 없었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다행히 얼굴은 세게 할퀴지 않아서 피도 나지 않고 가볍게 긁힌 자국만 몇 개 난 걸로 그쳤다. 원숭이에 물려도 광견병에 걸릴 수 있다기에 혹시나 해서 며칠 뒤에 병원에 갔지만 피가 나지 않았으면 괜찮다고 말해줘서 안심했다. 내 딴에는 나름 조심한다고 했는데 그게 어미 원숭이 눈에는 자기 자식을 해치려고 하는 걸로 보였을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이 정도에서 그친 게 어디인가. 바라나시에서 원숭이에게 물려 광견병 주사를 맞느라 다른 도시에 가지 못하고 바라나시에서만 머물고 있는 여행자를 본 적이 있다. 참고로 광견병 주사는 돈도 돈이지만 한 번 맞는 걸로 끝나지 않고 최소 5번 정도를 맞아야 하기 때문에 인도에서 개나 원숭이에게 한 번 물리면 사실상 여행 자체가 엄청나게 꼬여 버리게 마련이다. 나는 그저 무사히 여행을 계속할 수 있게 되었음에 감사했다.
두 번째 인도 여행이 신기한 것은 소 도살장 끌려가는 심정으로 한국에 돌아왔던 첫 번째 여행과는 달리 집으로 돌아갈 날이 다가올수록 집에 가고 싶어 진다는 것이었다. 곧 내가 원래 있던 자리로 돌아가 가족들과 친구들을 얼른 만나고 싶었고, 복학해서 공부도 하고 싶었고, 친구들과 맛있는 음식도 먹으며 열심히 살고 싶은 마음이 처음으로 생겼다. 돌아가고 싶지 않은 것과 돌아가고 싶은 곳이 있는 것, 나에게는 이것이 도피 여행과 순수한 여행의 차이였다. 돌이켜 보면 의구심이 드는 날들도 있었지만, 그래도 나는 이번에는 꽤 순수한 여행을 했던 것 같다.
채식이 생각보다 맛있었다고는 하지만 리시케시에 2주 가까이 머물면서 고기를 일절 먹지 않으니 육식 생각이 간절했다. 전의 가게 주인이 구해 준다던 닭고기도 거절했기 때문에 정말로 2주 동안 고기라고는 조금도 입에 대지 않았다. 때마침 D가 디우에서 만났던 일행 중 몇 명이 지금 델리에 있는데 같이 내려가서 삼겹살을 먹지 않겠느냐고 제안하기에, 나는 삼겹살을 먹기 위해 델리로 함께 내려가기로 했다. 2주 내내 버섯 시즐러를 예찬하던 나는 결국 삼겹살에 지고 만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