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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트라떼 Nov 30. 2022

브리즈번, 왜 진작 안 와봤지?

낯선 도시를 좋아하기까지 고작 몇 시간 

호주에 돌아오자마자 볼 일이 있어 브리즈번에 왔다. 다들 브리즈번이 그렇게 날씨도 맑고 평화로워서 좋다던데 그동안 내게 브리즈번은 관심 밖의 도시였다. 화창한 날씨를 딱히 좋아하는 것도 아니고 특별히 관심 있는 거라곤 커피밖에 없는데 브리즈번은 커피로 유명한 도시도 아니었으니 말이다. 아마 일이 없었더라면 호주에 아무리 오랫동안 살아도 한 번도 안 와봤을지 모를 이 도시에 오늘 아침, 떨어졌다. 


평소엔 날씨 좋다더니 하필이면 오늘 얄궂게도 쌀쌀하고 바람이 불고 비도 흩뿌린다. 

그런데 흐린 날씨를 좋아하는 나는 어쩐지 이 날씨가 마음에 든다. 

호텔에 도착했더니 무료 룸 업그레이드를 해줘서 예약한 것보다 훨씬 좋은 방에 묵게 되었다. 

거실의 통창으로 강이 훤히 내려다 보인다. 밤이면 이 풍경은 또 얼마나 아름다울까. 

처음 가보는 도시에서는 꼭 보타닉 가든에 들르는 일종의 나만의 의식 같은 게 있다. 

그래서 이번에도 호텔에 짐을 풀고 바로 밖으로 나와 보타닉 가든으로 향했다. 

세상에나, 너무 예쁘다. 비가 추적추적 내려서 우산을 쓰고 걸었더니 앞으로도 이렇게 비가 오는 날이면 브리즈번이 생각날 것 같다. 

커피로 유명하다고 해서 들어간 카페의 커피는 써서 맛이 없었다. 나는 산미가 가득한 커피가 좋은데, 이건 좀 아쉽다. 

호텔에 돌아가기 전에 물과 간식거리를 사러 마트에 들렀는데, 들어서는 순간 내가 좋아하는 Dancing in the moonlight이 배경음악으로 흘러나온다. 운명인가? 


아무래도 나는 쉬운 사람인가 보다. 

8년이나 호주에 살았으면서도 관심 없어했던 이 낯선 도시에 떨어진 지 고작 몇 시간 만에 이 도시가 너무나 좋아졌다. 

첫인상이 이토록 좋았으니 혹시라도 이곳에서 지갑을 도둑맞더라도, 새똥을 맞더라도, 또 기대하고 들어간 카페에서 맛없는 커피를 맞닥뜨리게 되더라도 웬만해서는 나는 이곳을 계속 좋아하겠지. 


사람을 대할 때도 그랬다. 한 번 좋은 인상을 받은 사람은 오랫동안 좋아하게 된다. 

혹여 그 사람에게 실망하거나 상처받는 일이 생기더라도 무슨 이유가 있었겠지 하고 한없이 너그러워진다. 

엄마는 내가 사람을 너무 믿고 좋은 점만 보려고 해서 문제라고 했다. 

물론 그런 점 때문에 상처받은 적도 있고 반대로 상처 준 적도 있지만, 그게 정말 문제라면 나는 그냥 행복한 문제아로 남으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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