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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정현 Jun 02. 2023

숟가락을 이해하는 또 하나의 방법

도구의 서사를 다루는 매거진 <툴즈 TOOLS>



내 숟가락이라고 부를 만한 게 있던가? 나는 집에서 밥을 해 먹지 않는다. 대부분 밖에서 먹고, 종종 포장해오거나 배달을 시킨다. 식당에 구비된 스테인리스 숟가락이나 배달할 때 딸려 오는 일회용 플라스틱 숟가락을 두 번 사용하는 일은 없다. 그나마 이사 오면서 샀던 두 개의 나무 숟가락은 대개 어두운 주방 구석에 방치돼 있다가 일주일에 한두 번 불려 나올 뿐이다. 함께한 시간도 길지 않고 정도 주지 않았으니 ‘내 숟가락’이라고 부르기에는 다소 민망하다.



매거진 <툴즈 TOOLS>가 두 번째 이슈로 선택한 사물이 숟가락이다. “일상 속 익숙한 혹은 애착의 도구가 지닌 서사를 다양한 방식과 이야기로 탐구”하는 매거진인데, 숟가락과 나는 별다른 애착 관계가 없으므로 그냥 ‘익숙한’에 집중해보기로 한다. 잡지가 잘하는 것 중 하나가 판을 깔아주는 일이니까. 책을 덮는 순간 새로운 관점을 떠올려볼 수 있도록, 고유한 관점의 텍스트와 감도 높은 비주얼로 익숙한 소재를 재해석하는 일. 툴즈를 읽으면 일상의 도구를 이해하는 방식이 하나 더 늘어난다.




숟가락의 탄생과 역사부터 기본 구조 및 명칭, 동아시아권 숟가락 문화에 관한 음식인문학자와의 인터뷰, 숟가락이 등장하는 영화 장면과 문학 모음, 글로벌 커틀러리 브랜드, 숟가락의 역할과 기능을 활용하는 직업, 동시대 크리에이터들의 일상 속 숟가락 이야기까지. 심지어 숟가락 시점에서 바라본 테이블 위 식사 시간 콘셉트의 위트 넘치는 화보도 있다. ‘다각도로 조명한다’라는 말은 이럴 때나 써야지 싶네. 300쪽에 달하는 책을 말 그대로 꽉 채웠다. 두께에 압도되지 말고 부담 없이, 끌리는 페이지를 하나씩 펼쳐 읽어야지. 정교하게 기획된 ‘숟가락 이해 가이드라인’을 끝까지 따라가다 보면, 비로소 우리 집 숟가락에 정을 붙일 수 있을지 모른다는 기대를 안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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