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무사
[다시 가고 싶은 이유]
소설 속 장면을 언급하는 K의 눈이 반짝거렸다. 황정은의 소설 <백의 그림자>는 나도 알고 있었다. 물론 읽어보지는 않아서 잠자코 듣기만 했다. 거기에 오래된 전구 가게 하나가 등장한단다. 전구를 사면 꼭 하나씩 더 챙겨 주는 곳이라나. 매번 구매한 수량보다 하나가 더 들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주인공은 혹여나 연세 지긋한 주인 할아버지가 개수를 잘못 세는 건 아닌지 조심스레 물어본다.
“할아버지가 전구를 세다 말고 나를 빤히 보시더라고요. 뭔가 잘못 물었나보다, 하면서 긴장하고 있는데 가만히 보니 입을 조금씩 움직이고 계세요. 말하려고 애를 쓰는 것처럼. 그러다 한참 만에 말씀하시길, 가지고 가는 길에 깨질 수도 있고, 불량품도 있을 수 있는데, 오무사 위치가 멀어서 손님더러 왔다 갔다 하지 말라고 한 개를 더 넣어 준다는 것이었어요. 나는 그것을 듣고 뭐랄까, 순정하게 마음이 흔들렸다고나 할까. (…) 조그맣고 값싼 하나일 뿐이지만, 귀한 덤을 받는 듯해서, 나는 좋았어요.”
<백의 그림자>, 황정은
‘귀한 덤’이 나오는 부분에서 K는 강조하듯 힘을 주어 말했다. 서촌 끝자락에 자리한 바 오무사는 바로 이 전구 가게에서 영감을 받아 만든 공간이라 덧붙이면서. 이름만 따온 게 아니라 중요한 운영 방침의 힌트도 얻을 수 있었다는 이야기는 진즉 이 공간에 매료된 나의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One More Service의 약자이자 오무사의 이니셜이기도 한 ’OMS’는 손님이 기분 좋게 받을 수 있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일종의 사내 문화다. 단순히 사이드 메뉴를 하나 더 내어주는 수준에서 그치는 게 아니다. 추워 보이는 손님이 있으면 먼저 담요를 가져다주고, 두 사람이 각기 다른 주류를 주문하면 서로의 술을 맛볼 수 있도록 여분의 잔을 건네주는 등 사소하지만 사려 깊은 응대로 손님에게 다가가는 모든 행위를 포함한다. 이건 오무사를 비롯한 다양한 식음료 브랜드를 기획하고 운영하는 서비스업 회사 ‘현현'의 모든 매장에 적용되는 공통 사항. 퇴근 전에 각자 오늘 내가 한 OMS를 회사 메신저에 기록해 공유한다고 하니, 부담 없이 자발적으로 실행하는 서비스임에도 서로의 환대와 배려를 자연스럽게 보고 배울 수 있는 방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언젠가 이런 일도 있었다. 한 아버지와 딸이 위스키 바 ‘법원’에 각자의 일행과 방문한 것이다. 거리가 좀 떨어져 있었는지 머무는 내내 서로를 알아보지 못했다. 막 일어서려던 참, 아버지가 먼저 친구들과 함께 술을 마시는 딸을 발견한다. 그리고 계산대에 가서 말한다. “여기서 제일 예쁜 손님 있는 테이블까지 같이 계산해 주세요.” 뒤이어 돌아오는 직원의 답변이 압권이다.
“어느 테이블인지 압니다.”
탁월한 눈썰미를 겸비한 그의 답변에 제일 예쁜 손님을 딸로 둔 아버지는 호탕한 웃음으로 화답하며 가게를 나섰을 것이다. 장난기 많은 분이라면 일부러 아는 체하지 않고 조용히 퇴장했겠지. 아무것도 모르는 딸은 후에 이게 어찌 된 영문인지 묻고, 직원은 또 한 번 능청스럽게 대답했을 테다. “잘생긴 꽃중년 신사분이 계산하고 나가셨어요.”
원 모어 서비스. 우리 엄마가 자주 하는 말로 바꿔 부르면 ‘정 없으니까 하나 더’ 정도 되려나. 그러고 보면 엄마만큼 OMS를 매일 같이 실천하는 사람이 또 없다. ‘하나는 정 없으니까’라는 말을 나는 어릴 때부터 얼마나 많이 들어왔던가. 거실에 둘러앉아 간식을 먹을 때도 그렇다. 각자의 몫을 충분히 나눠 가졌음에도 절제 따위 모르는 욕심쟁이의 접시는 금세 깨끗해지기 마련이다. 거기서 정신을 다잡고 그만 일어서야 하는데 미련을 못 버린 식탐보이는 쓰레기 봉투를 뒤지는 길고양이 마냥 여분의 과자나 과일이 없는지 괜히 여기저기 힐끔거렸다. 이 얄미운 거북목을 한 대 후려칠 법도 하지만 엄마는 또 굳이 자기 접시에 있는 걸 하나 내어준다. 어차피 다 못 먹는다는 믿기 어려운 말과 함께. 그리고 꼭 덧붙이는 거다. 하나는 정 없으니까 두 개는 줘야지. 염치도 눈치도 없는 그지 새끼는 주는 족족 또 좋다고 받아먹었다. “존맛탱!”을 외치며 쉴 새 없이 오물거리던 경박한 주둥이를 떠올리면 정말이지…
그래도 30년 가까운 세월 동안 받아먹다 보니 염치도 눈치도 조금은 자란 것일까? 이제는 ‘한 입만’ 모드로 껄떡대는 일은 많이 줄었다. 되려 다른 사람들을 챙겨 주는 스스로를 종종 발견하기도 한다. 품에서 하나를 꺼내 드는 순간 자동으로 엄마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아휴, 정 없어라~” 매일 매일 기록하며 공유한 건 아니지만, 오랜 세월 직접 경험하다 보니 소리 없이 스며든 김 여사님의 원 모어 서비스.
이 서비스의 아름다움은 받는 사람이 몰라줘도 괜찮다는 점에 있다. 나는 선물은 주는 사람 마음이라고 생각하는 쪽이다. 정 없으니까 굳이 하나 더 얹어주는 행위 역시 마찬가지. 주는 사람이 더 기쁘다. 시켜서 하는 거 아니고, 기꺼이 건네는 마음이니까. 받는 걸 점점 당연시하게 되고 어느 순간 나를 호구 취급까지 한다면 많이 슬프겠지만 그건 그때 가서 생각해도 늦지 않다. 누구나 손해 보며 산다. 기꺼이 손해를 감수하려는 사람과 손톱만큼의 손해도 용납하지 않으려는 사람의 차이만 있을 뿐이다. 괜히 한 번 더 살펴보는 게, 굳이 하나 더 챙겨주는 게 손해와 비효율이 예정된 행동인지는 몰라도 나는 그 순간의 기분이 더 중요한 타입이므로 딱히 상관없다. 지금 들리는 마음의 소리를 애써 무시한 채 찝찝한 상태로 남아 있는 것보다야 낫다.
덤은 결국 나만 아는 사소한 자부심이다. 모 소설가의 표현처럼 [아무도 몰라줘도 좋을 사소한 자부심의 목록]을 늘려가는 일은 별생각 없이 지나치던 하루의 풍경과 찰나의 장면을 또렷하게 남긴다. 하차 전에 기사님께 큰 소리로 감사 인사를 전하면 버스 타고 오는 내내 창밖으로 스쳐간 거리 정경이 오래 기억에 남는 것처럼. 귀한 자리에 초대를 받았을 때 참석 인증샷을 업로드하며 내게 연락해준 담당자의 이름과 아이디를 정확히 표기하면 며칠이 지나도 그 현장의 열기와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이 생생하게 떠오르는 것처럼 말이다. 안 해도 아무도 뭐라고 안 하지만, 다름 아닌 내 기분을 뿌듯하게 만들어 주는 일. 그런 나를 우연히 발견한 누군가에게는 옅은 파문을 남길지도 모르는 ‘굳이’와 ‘괜히’의 마법을 나는 믿는다.
3호선 경복궁역에서 나와 천천히 20분 정도를 걷는다. 북적이는 통인시장 입구와 빵 냄새 가득 풍겨 오는 효자베이커리를 지나쳐 고즈넉한 골목으로 들어선다. 저 멀리 보이는 인왕산 아래, 아담한 단층 건물 한쪽에는 정갈한 글씨로 오무사라고 적혀 있다. 짙은 색의 목재와 어둠 가운데 은은한 빛을 뿜어내는 조명이 겨울 산장을 연상시키는 공간. 구석에 자리를 잡고 앉으면 메뉴판을 펼치기도 전부터 기대가 부풀어 오른다. 오늘은 또 어떤 귀한 덤을 받게 될까? 그리고 고민하기 시작한다. 내가 줄 수 있는 선물은 무엇일까. 받기만 하지 말아야지. 절대 밀리지 말아야지. 순정하게 마음을 흔들 수 있는 소소한 서비스를, 서로를 위한 그 ‘귀한 덤’을 상상하고 기뻐하는 시간이 이 작은 바에 흐른다.
오무사
서울 종로구 필운대로9길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