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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정현 Oct 07. 2024

미세한 차이라도 차이는 차이

브와 닷챠이 by 메종 크리벨리



올해만큼 가을이 반가운 적이 있었던가… 더위가 주춤할 때마다 조심스럽게 불어오는 바람을 맞으며 나는 생각했다. 옷장에서 셔츠와 재킷을 꺼내는 날, 그때 함께 입을 가을 향수를 사야겠어.



지난 봄 여자친구는 새로 구입한 향수에 딸려 온 샘플을 내게 넘겼다. 프랑스 브랜드 메종 크리벨리야. 이건 브와 닷챠이라는 제품이고. 한창 향수에 빠져 있던 그녀는 [미지의세계 MIJI]라는 향수 전문 유튜브를 즐겨 봤는데, 미지는 메종 크리벨리를 이른바 ‘이과형 향수’ 내지는 ’T형 향수’로 칭했다. 물질에 대한 특성을 직관적이고 논리적으로 표현하며 조향사의 의도와 결과가 잘 맞아떨어지기 때문이란다. 기억과 정서를 바탕으로 있는 힘껏 낭만과 감성을 끌어올리는 여타 브랜드와 다른 노선을 택했다는 점이 문과이자 F형인 내게도 흥미롭게 다가왔다.(나도 미지의세계 구독자다. 그녀만큼 향수를 유려하게 설명하는 이를 본 적이 없다.)



“숲속에서 맛본 스파이시한 홍차와 달콤한 산딸기에서 영감을 받은 우디 프루티 향수.” 브와 닷챠이의 공식 카피다. 이보다 잘 정리할 수 있을까 싶은 것이, 이 향수는 울창한 숲이 지닌 싱그러우면서도 따뜻한 기운과 시나몬과 패츌리가 지닌 스파이스, 은은하게 풍기는 베리류 과일의 달큰함을 절묘하게 배합했다. 우디/얼씨 계열 향조를 베이스로 차와 과일의 뉘앙스가 부드럽게 올라온다. 진하고 씁쓸하기만 하면 거북하지만 상큼하고 달콤하기만 하면 유치하다. 브와 닷챠이는 스모키한 우디 향과 산뜻한 베리 향이 성공적으로 대비를 이룬 결과다.



잘 만들어진 향수를 통해 배운 게 있다면 ‘카테고리는 카테고리일 뿐’이라는 사실이다. 우디, 플로럴, 머스크, 프루티... 단어 하나로 묶고 나누는 건 쉽고 빠르지만 우리의 감각이 받아들이는 건 그 이상으로 복잡하고 입체적이다. 다같은 OO향이 아니다. 브와 닷챠이를 만나지 않았다면 나는 상탈 33과 탐다오만 분위기 있는 우디 향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며, 홍차라고 적힌 노트를 발견하는 즉시 그 향수에서 관심을 거뒀을 것이다.


미세한 차이라도 차이는 차이. 동일한 범주 하에서도 모든 향수는 개별성을 지닌다. 세계의 조향사들이 밤낮으로 블렌딩에 매달리는 건 그 ‘나름’의 매력을 놓치지 않기 위해서다. 자연의 재료를 섞어 새로운 공감각적 경험을 창출하는 이들이야말로 현대의 연금술사가 아닐까? 덕분에 둔하디둔한 후각과 편견에 찌든 취향을 가진 한국의 털보는 오늘도 기분 좋게 어제의 나를 배신한다. 나 향수 좋아했네.




Bois Datchaï

by Maison Crivell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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