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와 닷챠이 by 메종 크리벨리
올해만큼 가을이 반가운 적이 있었던가… 더위가 주춤할 때마다 조심스럽게 불어오는 바람을 맞으며 나는 생각했다. 옷장에서 셔츠와 재킷을 꺼내는 날, 그때 함께 입을 가을 향수를 사야겠어.
지난 봄 여자친구는 새로 구입한 향수에 딸려 온 샘플을 내게 넘겼다. 프랑스 브랜드 메종 크리벨리야. 이건 브와 닷챠이라는 제품이고. 한창 향수에 빠져 있던 그녀는 [미지의세계 MIJI]라는 향수 전문 유튜브를 즐겨 봤는데, 미지는 메종 크리벨리를 이른바 ‘이과형 향수’ 내지는 ’T형 향수’로 칭했다. 물질에 대한 특성을 직관적이고 논리적으로 표현하며 조향사의 의도와 결과가 잘 맞아떨어지기 때문이란다. 기억과 정서를 바탕으로 있는 힘껏 낭만과 감성을 끌어올리는 여타 브랜드와 다른 노선을 택했다는 점이 문과이자 F형인 내게도 흥미롭게 다가왔다.(나도 미지의세계 구독자다. 그녀만큼 향수를 유려하게 설명하는 이를 본 적이 없다.)
“숲속에서 맛본 스파이시한 홍차와 달콤한 산딸기에서 영감을 받은 우디 프루티 향수.” 브와 닷챠이의 공식 카피다. 이보다 잘 정리할 수 있을까 싶은 것이, 이 향수는 울창한 숲이 지닌 싱그러우면서도 따뜻한 기운과 시나몬과 패츌리가 지닌 스파이스, 은은하게 풍기는 베리류 과일의 달큰함을 절묘하게 배합했다. 우디/얼씨 계열 향조를 베이스로 차와 과일의 뉘앙스가 부드럽게 올라온다. 진하고 씁쓸하기만 하면 거북하지만 상큼하고 달콤하기만 하면 유치하다. 브와 닷챠이는 스모키한 우디 향과 산뜻한 베리 향이 성공적으로 대비를 이룬 결과다.
잘 만들어진 향수를 통해 배운 게 있다면 ‘카테고리는 카테고리일 뿐’이라는 사실이다. 우디, 플로럴, 머스크, 프루티... 단어 하나로 묶고 나누는 건 쉽고 빠르지만 우리의 감각이 받아들이는 건 그 이상으로 복잡하고 입체적이다. 다같은 OO향이 아니다. 브와 닷챠이를 만나지 않았다면 나는 상탈 33과 탐다오만 분위기 있는 우디 향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며, 홍차라고 적힌 노트를 발견하는 즉시 그 향수에서 관심을 거뒀을 것이다.
미세한 차이라도 차이는 차이. 동일한 범주 하에서도 모든 향수는 개별성을 지닌다. 세계의 조향사들이 밤낮으로 블렌딩에 매달리는 건 그 ‘나름’의 매력을 놓치지 않기 위해서다. 자연의 재료를 섞어 새로운 공감각적 경험을 창출하는 이들이야말로 현대의 연금술사가 아닐까? 덕분에 둔하디둔한 후각과 편견에 찌든 취향을 가진 한국의 털보는 오늘도 기분 좋게 어제의 나를 배신한다. 나 향수 좋아했네.
Bois Datchaï
by Maison Crivell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