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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혜진 Oct 22. 2023

군항제에서 만난 사람

1987년 4월 8일 수요일
주제 : 제25회 군항제
오늘 군항제에 갔다. 아빠, 엄마, 언니, 나, 동생 이렇게 다섯 식구가 갔다. 시내에 도착하니 사람들이 참 많았다. 우리 아빠께서는 다리가 잘린 사람에게 돈 천 원을 놓고 오셨다. 그 옆에 빗과 집게, 껌 등이 있었다. 나는 아빠에게 “아빠, 껌 한 통이라도 들고 오시지요?”하고 말했다. 그러자 아빠께서는 “그 사람들이 얼마나 갑갑하면 그런 고생을 하겠니?” 그러시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그 뜻을 잘 몰랐으나 점점 그 뜻을 알 수 있었다.  

   

*     


매해 4월 1일부터 15일까지는 군항제 기간이다. 한두 번은 꼭 가족 전체가 버스를 타고 시내에 나갔다. 온갖 물건 파는 걸 구경할 수 있고, 평소엔 맛보기 힘든 팝콘과 본젤라또 아이스크림도 사 먹을 수 있었다. 군악대의 공연도 보고 약장수의 너스레를 한참 쳐다보기도 했다. 용돈 주기에 인색하고 길거리에서 뭘 먹는 걸 질색하던 엄마도 이때만큼은 너그러워졌다. 나는 번데기와 고동, 솜사탕 등 ‘불량식품’들을 맘껏 즐겼다.  


아빠와 함께 외출할 때면 일기에 적힌 것과 비슷한 장면을 종종 목격했다. 일기에는 “껌 한 통이라도 들고 오시지요”라고 내가 말한 걸로 나오지만, 사실 저 말은 엄마가 한 것이다. 엄마는 아빠의 적선을 무척 못 마땅해했다. 허세라고 여기는 듯했다. 당시 1천 원이면 새우깡을 열 봉지 살 수 있었으니 적은 돈은 아니었다. 엄마가 한 말을 내가 한 말로 둔갑시킨 이유는 아마도 이런 엄마가 조금 부끄러웠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다. 이 일기는 학교 선생님에게 내는 숙제이기도 했으니 말이다.     


엄마가 가끔 하는 말이 있었다. “내가 불우이웃이야. 남 도와줄 돈 있으면 나한테 줘.” 얼마나 가난히 힘들면 이런 말을 할까, 공감했다. 그렇다고 이 말을 옳다고 느낀 기억은 없다. 나는 속으로 아빠를 응원했고, 아빠가 멋지다고 생각했다.     


나는 동물이나 약자에게 연민이 많은 편이다. 이런 아빠를 보며 자란 덕분이라는 걸, 최근 일기장을 다시 펼쳐 보고서야 깨달았다. 그런데 아빠는 왜 자신의 아내에게는 연민을 품을 수 없었을까. 차차 풀어 가야 할 숙제로 삼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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