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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혜진 Oct 22. 2023

빙그레 이글스


1986년 10월 18일 토요일     
오늘 아빠께서 이글스 책받침을 가지고 오셨다. 우리는 서로 가지고 가겠다고 싸움을 하였다. 다음부터는 싸우지 않겠다.     


*     


진해에 오기 전, 우리는 경기도 동두천에 살았다. 우리 삼남매가 태어난 곳이다. 그러나 고정된 일자리를 구하기 어려운 탓에 엄마의 두 여동생이 사는 경상도로 이사를 오게 되었다. 마산과 창원에 공장이 많으니 일자리를 구하기 수월할 거라는 이야기를 듣고 내린 결단이다. 


이모들의 조언은 적절했다. 진해로 내려간 첫해인 1981년, 아빠는 ‘한국프라스틱’이라는 회사에 정직원으로 들어갔다. 한국프라스틱은 몇 년 후 ㈜한화가 된 규모가 큰 회사였다. 그 회사에 들어가려면 고등학교 졸업장이 필요했지만, 아빠의 학력은 국졸이었다. 아빠에겐 열두 살 어린 남동생이 있었고, 그는 집안에서 유일하게 고등학교를 나왔다. 아빠는 삼촌의 고등학교 졸업증명서를 발급받아 이름과 생년월일을 고친 후 회사에 제출했다. 배운 것, 가진 것, 기댈 곳 하나 없는 아빠의 어깨에 다섯 식구의 인생이 매달려 있었다. 세상의 윤리에 크게 저항하는 일 없던 아빠에겐 얼마나 가슴 졸이는 일이었을까. 그러나 살기 위해선 별 수 없었을 거다. 다행히 별 탈 없이 입사에 성공했다. 입사 즉시 의료보험증이 나오고 제때 월급과 보너스를 주고 대학까지 자녀 학비가 나오는 귀한 일자리였다고 한다.     


1986년 회사 계열사인 빙그레에서 ‘빙그레 이글스’라는 프로야구팀을 창단했다. 아빠는 주황색과 검은색 야구점퍼와 선수 사인이 담긴 야구공, 모자, 소개 책자 등을 잔뜩 가져왔다. 신기한 새 물건들에 관심이 가긴 했지만, 내 것이라 생각은 안 했다. 운동은 남자아이들 영역이라 여겼던 것 같다. 욕심을 갖기도 전에 남동생에게 샘부터 났다. 욕심낼 가능성조차 이미 동생에게만 주어진 걸 알았기 때문이다. 물론 부모님은 전혀 그런 생각을 안 한 것 같다. 점퍼는 유치원생인 남동생에겐 컸고 5학년인 언니에겐 작았고 오직 내게 딱 맞았다.     


- 혜진이가 입으면 되겠다. 친구들한테도 보여주고.     


나는 입지 않겠다고 했다. 가뜩이나 부모님에게 “너는 성격이 남자애 같다.”는 말을 자주 들었던 터였다. 싹싹하고 눈치 빠른 언니와 달리 난 고집이 세고 애교라고는 한 톨도 없었다. 레이스 달린 치마와 구두보다는, 평범하고 편한 옷을 좋아했다. 펄펄 뛰어놀기를 좋아했고 높은 나무에도 겁 없이 기어 올라갔다. 봄부터 늦가을까지 햇볕에 얼굴이 새카맣게 그을려 반질반질 윤이 날 정도였다. 성격도 대차서 밖에서 당하고 들어오는 일은 절대로 없었다. 여기에 야구점퍼까지 입으면 나는 정말 남자처럼 보이는 건 아닐까. 그게 걱정이었다. 

    

결국 옷과 모자는 남동생에게 돌아갔다. 동생은 지금도 이때의 일을 좋게 기억한다. 책받침 싸움의 승자는 누구였을까. 사뭇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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