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아침이다. 아이들은 11시 넘어서 일어난다. 코로나로 어린이집에 가지 못하고 가택연금이 이어지면서 놀고먹고 자는 시간이 불규칙해졌고 잠드는 시간이 점점 늦어지더니 기상시간도 덩달아 늦어지고 말았다. 나도 토요일이라 늦게까지 자고 싶었지만 9시쯤 일어나 머그잔에 캡슐커피를 두 개 내려 책상에 앉았다. 학교 숙제가 남았다. 다닐까 말까 수백 번이나 고민하다 등록한 대학원은 오프라인 수업을 한 번도 하지 못하고 있다. 코로나가 뭔지... 수업은 줌미팅으로, 시험은 레포트 과제로 대신하고 있다. 12월. 수업은 끝났고 숙제만 남았다. 오늘은 최소 6페이지를 써서 메일로 제출까지 해야 하는 데드라인이다. 왜 대학원에 입학했는지 스스로에게 한 번 더 투덜거리며 노트북을 펼쳤다.
10시쯤 됐을까. 안방 문이 열리더니 큰아이가 나와 숙제를 하고 있는 작은방으로 들어왔다. 아침인사로 나를 꼭 안아주더니 “아빠, 오늘 회사 안 가?”하며 묻는다. 오늘은 토요일이라 회사에 가지 않아, 걱정하지 말고 가서 더 자. 했더니 다 잤다며 아빠와 할 일이 있다고 한다. 놀이터에 가서 미끄럼틀을 타야 한다고 했다. 아빠는 공부해야 한다고, 엄마랑 동생이랑 같이 가자고 하니 엄마랑 동생은 자고 있어서 안된다고 했다. 슬픈 표정으로 어제도 놀이터에 못 갔다고 했다. 나는 한 번 더 말했다. 오늘은 너무 추워서 놀이터에 갈 수 없어. (휴대폰 날씨 위젯을 보여주며) 이것 봐 ‘빼기 5’라고 쓰여있지? 이건 ‘영하 5도’라고 말하는 건데, 빼기가 표시돼 있으면 날씨가 엄청 추운 거야. 빼기가 쓰여있는 날에는 놀이터에서 놀 수가 없어.
막무가내다. 안강최라고 했던가. 고집이 유전자에 저장돼 있나 보다. 이번에는 얼마나 추운지 직접 나가서 확인하겠다고 했다.
숙제를 해야 했다. 아무리 인용을 많이 한다고 하더라도 여섯 페이지를 쓰려면 시간이 필요했다. 팔에 매달려 통사정을 하는 아이를 떨어뜨리기 위해 새로운 전략이 필요했다.
“아빠랑 놀이터에 가서 물컵을 놓고 올까? 날씨가 추워서 영하일 때는 밖에서 물이 얼음으로 변해. 종이컵에 물을 담아서 밖에 놓고 올까? 그러고 저녁에 아빠랑 물이 얼었는지 확인하러 가보자. 재미있겠지?”
먹혔다. 아이의 눈빛이 반짝였다. 냉장고도 아닌데 물이 얼음으로 변한다니. 만 5년 인생에 그렇게 신기한 일이 있던가. 적잖이 감격한 눈치였다. 매달린 팔을 풀고 직접 잠바를 꺼내 입는다. 나는 종이컵 두 개를 꺼내 건강검진센터의 소변 기준선만큼 물을 담았다. 후딱 신발을 신겨 놀이터로 나갔다. 영하 5도라고 했는데 생각보다 춥지 않았다. 물이 얼지 않으면 어쩌지. 아이 손을 붙잡고 그늘진 화단 구석으로 가 다른 사람들이 보기 어려운 자리에 물이 담긴 종이컵을 두었다.
“아빠, 정말 물이 얼음이 돼?”
그럼, 이제 기다리면 얼음으로 변할 거야. 이따 아빠랑 확인해보자.
다시 후딱 집으로 돌아왔다.
12시가 가까워져 둘째가 일어났다. 상을 차리고 점심을 먹는데 큰애가 티비로 유튜브를 틀었다. 요즘은 허팝연구소라는 채널에 빠져 있는 듯했다. 알고 보니 허팝은 300만 명이 넘는 구독자를 보유한 유명한 유튜버라고 하는데 예전 호기심천국 프로그램처럼 신기한 실험을 메인 콘텐츠로 만들고 있었다. 아이가 클릭한 영상에서는 허팝이 공교롭게도 얼음을 얼리는 실험을 하고 있었다. 새벽에 밖에 나가 차량에 호스로 골고루 물을 뿌린 후 아침에 다시 카메라를 들고 차를 확인했다. 추운 날씨 덕분인지 지붕과 유리에 얼음이 기름막처럼 덮여 있었다. 허팝은 시동을 걸더니 창문을 내렸다. 창밖으로 얼음이 꽁꽁 언 창문은 한 번에 내려가지 않았다. 실내에 히터를 틀고 조금씩 창문을 내리니 ‘얼음으로 된 창문’만 남았다. 이런 내용의 콘텐츠였다. 깊은 감명을 받은 큰아이는 엄마에게 아침에 아빠와 벌인 어떤 일을 신이 나서 설명했다. 얼음을 보여주겠다고 했다.
저녁이 가까워졌다. 겨우 겨우 계획한 시간 안에 과제를 마치고 메일로 제출까지 마쳤다. 동지가 멀지 않은 겨울의 햇살은 아파트 빌딩 사이로 벌써 사라지고 있었다. 큰아이를 데리고 다시 놀이터로 나갔다. 다행히 종이컵은 사라지지 않고 처음 그 자리에 잘 있었다. 더욱 다행히 컵 안의 물이 꽝꽝 얼어있었다. 컵을 아래로 뒤집어 흔들며 아이에게 보여줬다. 이것 봐, 날씨가 추워서 얼음이 얼었어. 가만히 얼음을 손으로 찔러본 큰아이는 예상보다 더 신기해했다. 잔뜩 흥분한 목소리로 얼른 엄마랑 동생한테 보여줘야 한다고 했다. 아이는 종이컵 두 개를 품에 꼭 안고 집으로 돌아와 엄마와 동생에게 하나씩 보여주며 자기가 만들었다고 열심히 자랑했다.
아내와 나는 촌놈 출신이다. 앞마당에 던져 놓은 콩에서 싹이 트고, 장독 뒤로 꿩이 돌아다니고, 아궁이에 솔잎 태우며 요즘 말로 ‘불멍’을 하고, 겨울이면 땅을 파 김칫독을 묻고, 마을 잔치가 있는 날이면 정말로 돼지를 직접 잡는 곳이었다. 뒷산에서 얼굴만 한 영지버섯을 따고 놀던 곳에서는 겨울에 얼음이 어는 것은 놀랄 일도 아니었다. 그런데 아이들은 서울에서 태어났다. 아이들의 본적은 서교동이다. 뒷산 대신 키즈카페에서 놀고, 여행을 가도 호텔에서 자고, 꿩이나 토끼도 동물원에 가서 돈을 내고 나서야 볼 수 있다.
이렇게 나와 아이들은 ‘노는 물’이 달라졌다. 나와 아내에게는 당연한 것이 아이들에게는 신기한 일이 됐다. 어떤 모습이 더 좋고 나쁜지 가치판단을 할 문제는 아니지만 아이로서 겪어야 할 체험이 부쩍 줄었다는 생각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그나마 어린이집에서 체험활동이라는 이름으로 블루베리 농장도 가고, 빵도 만들고, 상추도 따 보고 했는데 코로나로 그것조차 사치가 됐다. 매일매일 확진자 수에 귀 기울이며 어린이집에 갈 수 있는지 없는지 신경 쓴지도 1년이 됐다.
종이컵에 얼린 얼음처럼 어떤 기억을 내가 만들어줄 수 있을까. 물이 담긴 컵에 종이를 덮고 뒤집어 보여줄까. 할머니 댁에 가서 불멍을 시켜줄까. 그보다 먼저 꽃집에 다녀와야겠다. 아이와 함께 키울 화분과 씨앗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