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연기군 Dec 09. 2021

Who Cares

누가 근황을 궁금해하였는가

브런치 운영팀에서 안내가 도착했다.

- 작가님 글을 못 본 지 무려.. 120일이 지났어요 (후략)


'어... 음... 벌써 그렇게 됐구나...'


'아무도, 심지어 구독을 눌러주신 분들도 크게 기다리거나 기대하지 않았겠지만 페이지를 비운 시간이 넉 달이나 됐구나...'


급하게 점심시간에 접속해 몇 자 남겨본다.


1. 지난주, 그룹 신년사 초안을 작성해서 보냈다. 벌써 6년째 신년사를 쓰고 있다. 특별히 글재주가 있는 것도 아닌데 (당시) 홍보팀에 남는 인력이 나밖에 없어서 시작한 일이 회사를 옮겨서도 이어지고 있다. 어차피 초안이란 것은 빨간펜을 들고 난도질하기 위한 글이니 시간을 많이 소요할 필요가 없다. 그렇지만 막상 초안이란 것을 쓰는 것은 대단히 귀찮은 일이니 가능하면 다른 직원에게 떠넘기는 것이 편한 일이기도 하다. 그러한 이유로 올해도 신년사 작성을 부탁받았다. 최고경영자가 강조하(셨다고 전해주)는 키워드 몇 개만 들고 후딱 7분짜리 원고를 써서 담당자에게 보냈다. 그렇다. 다른 이를 위한 글은 이렇게 몇 년째 쓰면서, 워드를 열고 나서도 금세 쓰면서. 자신의 에세이는 어찌 이다지도 한 줄 남기기 어려운 것일까. 


2. 다시 위 안내문으로 돌아가 보자. '못 본 지'. 3음절에 2번이나 띄어쓰기가 있다. 분명 나에게 같은 단어를 쓰라고 했다면 '못 본지' 또는 '못본 지'를 두고 한참 고민하다 '못 본지'로 썼을 것이다. 그런데 둘 다 오답이라니. (브런치 운영팀에서 보낸 문장이니 띄어쓰기도 맞겠지?) 인터넷으로 띄어쓰기를 다시 검색할 열정은 없지만 스스로 조금 부끄러워진다. 얼마 전 [끝내주는 맞춤법. 쓰는 사람을 위한 반복의 힘]이라는 책을 사무실에 두고 틈틈이 몇 장씩 풀어보고 있다. 맞춤법은 물론이고 띄어쓰기도 반복 훈련하기 좋은 책이다. 약 삼분의 일 정도 풀었고 덕분에 맞춤법이 살짝 좋아졌다고 생각했으나 '못 본 지'를 보고 현실을 자각하게 됐다. 더 열심히 풀어보겠다.


3. 지난 6월 1일 자로 인사발령을 받았다. 희망하지도 않았고, 전혀 기대하지도 않았던 부서로 발령을 받았다. 인사이동 소식을 듣고 난 며칠 동안은 온갖 걱정 때문에 밥도 넘어가지 않았다.(살은 안 빠지더라) 그 후로 약 반년이 지났다. 새로운 팀으로 책상을 옮겨 생소한 일을 배우고 낯선 일을 처리하고 생경한 내용을 익히고 있다. 이제 겨우 루틴이 조금 보인다. 120일 동안 비워놨던 브런치를 다시 쓸 기력이 생기려나. 업무 때문에 공부할 책은 여전히 쌓여 있고, 겨울이 지나면 대학원 공부도 마저 해야 하고, 졸업시험 공부도 해야 하고... 나름의 세이브 원고를 들고 호기롭게 시작했던 브런치를 이렇게 놓고 있는 상황이 부끄럽다. 알약을 먹고 기운을 차려야지. 아르기닌, 비타민D, 비타민B, etc...


4. 지난 넉 달 사이 인생의 이벤트도 있었고 여타 다른 이벤트도 꽤 있었다. (타의로) 골프를 시작했고, (우여곡절이 많았으나) 처음 새 차를 샀고, 백만 원으로 코인도 시작했다. 골프 스윙은 상상과 꽤 간극이 있으며, 새 차는 예산보다 더 큰 풀 할부를 낳았고, 코인은 역시나 근로소득의 중요성을 알려주고 있다. 골프, 차, 코인 모두 과하게 세속적인 면이 있으나 너끈히 브런치에서 풀어볼 이야기들이다. 여기에 새로운 이벤트도 기다리고 있다. 3월이 되면 첫째는 학교를 가고 둘째는 유치원에 간다. 자식이 언제 이렇게 컸나 싶은데 이제는 레알 학부모가 된다. 이 또한 브런치에서 풀어볼 이야기들이다. 그리고 넉 달 동안 놀기만 한 것은 아니다. 백팩 속 노트에는 끄적인 개요도 몇 개 있고, 제목만 적은 연작 기획 '(가칭) 서울의 맛'도 있다. 스무 살 상경 이후 충격을 받았던 여러 가지 맛에 대해 적겠다는 원대한 포부가 담겨 있다. 언젠가는 브런치에서 쓰지 않을까.


이상 아무도 기대하지 않았을 근황이었다. 당초 일주일에 삼천자 한 편씩 써보려 했으나 빈 손으로 넉 달이 지났다. 그 사이 밝은 이야기도, 어두운 이야기도 있다. 차근차근 풀어보련다.


Who cares? 

I do. 

작가의 이전글 어느 노래로 기억되는 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