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농촌진흥청에서 발간하는 <농업기술> 5,6월호에 기고한 글입니다.
농업의 미래에서 스마트농업은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을 것이 다. 하지만 스마트농업의 미래를 어떻게 만들어 가야 할 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불분명하다. 우리는 지난 10년 동안 스마트농업을 만들기 위한 노력을 기울여왔고 앞으로의 10년도 그럴 것이다. 하지만 요즘 들어 지금처럼 노력한다고 우리가 꿈꾸는 농업의 미래가 현실화될 수 있을까라는 의구심이 들기 시작했다. 이 글에서는 그 고민을 함께 나누면서 대안을 찾아보고자 한다.
농업의 미래는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지 농업연구자들은 대체로 통일된 시각을 가지고 있다. 디지털 기술이 농업 전반에 적용되면서 농업인들이 작물의 생육에 대해 더 깊이 이해하고 농작업을 편리하게 만들어줄 다양한 서비스에 손쉽게 접근하는 것은 물론, 작물 생산성과 안전성을 높일 수 있는 다양한 기술 서비스 역시 일상적으로 활용하고 있을 것이다. 전국적인 병해충 예찰망이 완성되면 더 적은 농약을 사용하고도 더 효과적으로 병해충을 방제하고, 인공지능을 탑재한 농업용 로봇이 손이 많이 가는 반복적인 농작업을 대신하면서 만성적인 노동력 부족 문제도 어느 정도 해결할 것이다. 이런 류의 기술을 우리나라에서는 통칭하여 스마트농업이라 한다. 이게 학술적으로 명확히 정의된 건 아니지만 이미 국민의 인식 속에 자리 잡은 듯하다.
미래 농업 현장의 모습을 상상할 수 있다면 거기에 사용될 요소기술을 개발하는 건 어렵지 않다. 때로는 시간이 오래 걸릴 수도 있고 많은 연구비가 필요할 수도 있지만 필요한 기술은 어떻게든 개발된다. 그리고 요소기술이 개발된다면 통합된 기술 체계로 발전시켜 나가는 것도 순조로울 수 있다. 문제는 이 단계까지 어떻게 갈 수 있을 것인가이다. 우리가 무한한 자원을 가지고 있다면 이런 고민을 할 필요는 없다. 더구나 산업 규모가 작아 투자 대비 효율성이 문제가 되는 농업에서 풍족한 지원은 더더욱 기대하기 어렵다.
스마트농업 기술은 어떤 형태로 서비스될까? 대부분의 연구자는 지금처럼 농업인이 스마트 장비나 서비스를 구매할 것이라고 가정한다. 그렇지만 농가의 규모를 고려할 때 우리나라에서 개별 농가들이 농업용 로봇을 구매한다고 가정하는 건 비현실적이다. 또 정밀농업을 위해서 IoT 센서를 개별 농가의 농경지 별로 설치한다는
가정도 비현실적이다. 구매비용과 유지관리 문제를 해결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가성비’가 나오지 않는다. 그리고 이러한 접근방법은 이미 농작업이 서비스화했다는 사실에 대한 인식의 부재도 한몫한다.
벼농사를 예로 들어보면, 벼농사에 필요한 농작업은 크게 경운, 육묘, 모내기, 방제, 물관리, 수확, 건조 및 판매 등으로 나눌 수 있다. 여기서 농업인이 직접 하는 농작업은 물관리 정도에 머물고 있다. 나머지는 모두 주변의 농가, 농작업 대행단, 농협 등에서 서비스의 형태로 구매한다. 즉 농업인은 농경지를 기반으로 외부의 농작업 서비스를 구매해서 농산물을 생산하는 농업경영자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경향은 농촌의 인구감소와 고령화가 심해질수록 더욱 촉진될 것이다.
농업 스타트업 심사를 하다 보면 기술개발 아이템이나 아이디어에서 차별성은 크지 않다. 그러니 현시점에서 좋은 아이디어는 대체로 값어치가 작다. 그걸 어떻게 구현할 것인가의 문제가 오히려 더 크다. 또 기술적으로 구현하는 건 비교적 쉽다. 스타트업의 사업화 모델은 결국은 시장성이라는 문제에 봉착한다. 시장성이 있으려면 시장이 존재해야 한다.
그러니 ‘스마트농업이 가능할까’라는 질문은 ‘그 시장이 얼마나 큰가?’, ‘언제 그 시장이 형성될까?’라는 질문으로 바꾸어 물어야 한다. 만약 스마트농업 기술이 기업을 통해 서비스의 형태로 제공될 것이라는 데 동의한다면, 기업이 스마트농업 기술 서비스를 통해 수익을 만들 수 있는 모델의 개발이 우선되어야 한다는 데도 동의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다시 우리의 스마트농업 R&D 및 사업화 방법론을 돌아보면 전혀 다른 그림이 보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기술이 있어야 시장이 형성된다고 생각하겠지만 현실은 그 반대에 더 가깝다. 시장이 있으면 기술은 따라온다. 그리고 모든 기술을 우리가 개발할 필요도 없다. 기술시장 전략에서 의미가 있는 기술에 집중하는 게 투자 대비 효율성이 높을 뿐 아니라 기술사업화 성공률을 높이는 관건이다. 이런 식의 접근방법을 산업화 전략이라고 한다.
일본의 농가 구조는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최근 들어 농업경영체의 규모화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2018년부터 시작된 일본의 스마트농업 실증사업은 현재까지 205개 지구에서 실시되었거나 추진 중이다. 여기에는 노동력 절감, 생산성 향상, 자급률 향상, 경쟁력 향상 등 다양한 목적의 사업들이 포함되어 있
다. 이 사업의 특징은 대부분 기업이 주도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일본에서는 벤더기업이라 불리는 지역의 스마트농업 서비스기업들이 중앙의 기술 중심 기업들이 개발한 기술을 지역 내에서 서비스하고 있다. 이 벤더기업들이 지역 농업경영체에 서비스가 가능한 스마트농업 기술이 실증사업에서 대상으로 선정되고 있다. 이러한 접근방법은 실증사업을 통해 스마트농업 서비스를 현장에 적용할 뿐 아니라 지속가능한 산업생태계까지 만들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지자체가 중심이 되어 설립한 사업단이 주도하는 공공 중심의 실증방식과는 비교된다.
현 단계에서 ‘어느 쪽이 더 좋다’라고 평가하는 건 적절하지 않지만 지역기업 중심의 접근방법이 스마트농업 기술의 속성과 산업화 방식이라는 큰 틀에 더 잘 부합한다. 반면에 우리나라의 접근방식은 기존 공공사
업 중심의 사업화 방법론의 연장선에 있다.
산업화 전략의 필요성을 강변해 주는 또 다른 사례로 농업 에너지가 있다. 작년 에너지 가격이 상승하면서 농업계는 농업용 면세유류 부분에서만 7,128억 원의 추가 부담을 해야 했다. 전기 가격도 일부 인상되면서 이미 상당한 부담이 농업계에 부가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농업용 전기의 원가 대비 부담률은 40%에 미치지 못한다는 분석이다. 이 말은 가까운 미래에 농사용 전기 가격도 큰 폭의 상승이 불가피하다는 의미이다. 그렇다면 농가의 소득에 가장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시설원예작물의 수익성은 어떻게 될까? 그렇지만 이와 관련된 산업전략 연구를 찾아보기는 어렵다. 에너지 가격 상승이 우리나라 시설원예와 축산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어떤 대비책이 필요할지 지금부터 대비해야 하지 않을까?
스마트농업을 위해서는 첨단 기술의 구현이 중요하다. 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스마트농업 기술이 마주할 농업 현장의 변화에 대한 이해도 역시 중요하다. 농업이 직면한 많은 문제는 기술개발을 통해 해결할 수 있겠지만, 그보다 더 복잡한 문제(규모의 경제성, 노동력 부족, 첨단기술 서비스 등)는 들녘별경영체를 통해 경영단위를 키우거나, 지역 내에서 수확시기가 다른 품종을 적절하게 배치하거나, 친환경 재배 및 품질 균일화와 같은 고급 농업기술을 서비스해 줄 수 있는 영농전문기업을 통해 해결할 수 있다. 농업의 미래는 스마트농업이 중심을 차지하고 있겠지만, 그 미래는 스마트한 접근방법을 통해서 다다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