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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트래볼러 Dec 30. 2023

아이들의 캠핑

어린이 말고 'i' 요

I : Introversion
혼자 조용히 있을 때 에너지를 충전하고, 소수와 딥한 인간관계를 형성하며, 말보다는 글로 소통하기를 선호하는 내향형.

ISTJ인 나와 ISFJ인 동생. 이렇게 두 아이들이 함께 캠핑을 떠났다. 아무리 캠핑이 먹고 멍 때리고, 먹고 멍 때리고 하는 거라지만 아이들만 가면 너무 심심하지 않을까? 놉! 걱정했던 것과 달리 지루할 틈조차 없었다. 아, 물론 (E처럼) 왁자지껄 에너제틱하게 무언가를 한 건 아니다. 그저 한 공간에 있으면서 각자의 영역에서 각자의 시간을 보냈을 뿐. 본래 캠핑이란 게 그런 것이긴 하지만 아이들의 캠핑은 더 그랬다.

이번에도 역시 하루 반나절은 족히 걸린 집짓기, 캠린이와 캠린이도 못 되는 생애 첫 캠핑 나온 놈이 함께 하니 쉽지 않았다
해가 머리 위에 있을 때 왔는데 이 만큼 기울어서야 완성ㅠㅜ




동생이나 나나 자취 경력이 없다 보니, 그리고 딱히 요리에 관심도 없다 보니 둘 다 할 줄 아는 게 없었다. 그나마 내가 캠핑 몇 번 다니며 해본 것들이 있어 자연스레 내가 셰프가 됐다. 일단 애피타이저로 새벽같이 수산시장에서 가장 신선한 놈들로 골라 담았다고 믿고 싶은 마트산 회모둠을 올렸다. 우리의 쪼꼬미 플라스틱 아이스박스가 열일을 해준 덕분에 시간이 한참 흘렀는데도 상태가 나쁘지 않았다. 웰컴드링크라고 하기엔 시간이 너무 지났지만 아무튼 첫 드링킹이니까, 모둠회와 페어링 될 웰컴드링크로는 막걸리를 꺼냈다. 첫 잔이니까 짠~! 하고 나니 짠~ 하고 모둠회가 다 사라졌다. 그랬다. I들의 대표적인 특징. 말이 없다. 특히나 우리 형제는 먹을 땐 더 그렇다. 그렇다고 맛을 깊이 음미하는 것도 아니다. 미식가라기보다는 프로 배고픔러에 가깝다.


늦은 첫 식사, 저녁 같은 점심 같은 점심 아닌 점저

본래는 애피타이저 뿌수고 나서 낮잠도 때릴 예정이었으나 애피타이저를 먹고 나니 어느새 어두워졌다. 바로 저녁 준비에 들어갔다. 저녁 메뉴는 내가 유일하게 캠핑 가면 남들에게 먹을 수 있을 정도의 수준으로 내놓을 수 있는 스테이크. 내가 준비하는 동안 동생은 태어나 처음 해보는 불장난이 꽤나 마음에 들었는지 화로 옆을 벗어나지 않았다.

나는 저녁 준비, 동생은 화로 담당

스테이크가 완성되고 다시 먹방을 재개했다. 이번에는 분명 시작과 동시에 끝날 것을 대비해 먹으면서 다음 요리도 이어서 준비했다. 다음은 감바스. 이건 사실 요리라기보다는 조리에 가까웠다. 밀키트라서(^^;;) 예상대로 스테이크도 그리 오래 우리 식탁을 지키지 못했다. 아직 감바스는 미완성. 기다리면서 각자의 핸드폰만 뚫어져라 보다가 간식거리 뭐 없을까 찾다가 안 마시멜로가 눈에 들어왔다.


"야, 이거 네가 원해서 샀는데 한 번 먹어볼까? 지금?"


먹는 것과 텐트 피칭을 제외하고 처음으로 함께 하게 된 것, 마시멜로 굽기. 각자 꼬치 하나씩 들고 그대로 불구덩이로 직행했다. 아주 그냥 푹~ 담갔다 꺼내니 아주 화끈하게 타버렸다. 마시멜로는 나도 처음이다 보니 불이 너무 쌔면 타버리는 걸 몰랐다. 다시 재도전! 이번엔 화로 주변을 맴돌았다. 다행히 타지는 않았으나 이게 된 건지 만 건지 눈으로는 판단이 잘 안 섰다.


"원래 그냥도 먹는데 뭐, 한 번 먹어보지 뭐."


입속으로 마시멜로가 들어가자 입안에 달달한 솜이불을 물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리곤 얼마 안 가 스르륵 녹으며 그대로 목구멍으로 빨려 들어갔다. 당연히 맛있었다. 그런데 먹고 나니 왠지 뱃살이 마시멜로 덩어리만큼 늘어난 기분. 왠지 운동장 열 바퀴를 돌아야 할 것만 같은 찝찝한 여운이 남았다. 그러거나 말거나 취향을 제대로 저격당한 동생은 어느새 하나 더 구웠다. 난 다시 감바스로 신경을 돌렸다. 때마침 감바스 완성. 이제 3차 먹방 개시!

스테이크 ASMR, 소리가 더 맛있다
이번에도 실패하지 않은 스테이크 (MEDIUM WELLDONE)
무르익는 아이들의 캠핑의 밤, 함께한 유일한 무언가, 마시멜로 굽기
이번엔 감바스 ASMR
올리브오일 향 한껏 풍기며 조리되고 있는 감바스, 빵이 좀 탔다;;;

먹방이 끝나고 계획했던 건 불멍을 때리며 영화 한 편 보는 것이었다. 마시멜로 굽기에 이어 또 한 가지 함께한 추억이 생기겠구나 싶었는데 핸드폰에서 패드로 미러링이 계속 실패했다. 내가 폰과 패드를 가지고 씨름하는 사이 동생은 불장난을 했다. 마냥 불만 피우면 심심해할까 싶어 불멍가루를 건넸다. 화아아앙~ 화로에 오로라가 피어났다. 뭔가에 홀린 듯 나도 그대로 불멍에 빠져들었다.


"에이~ 이거 안 되나 보다. 영화는 무슨 영화야, 그냥 불멍 때리면서 맥주나 마셔~"

"그래, 난 좋아."


불멍 때리고 맥주 한 모금하고, 밤하늘 별 한 번 쳐다보고, 맥주가 떨어질 때까지 우린 기계처럼 같은 행동을 반복했다. 동생과 함께 한 또 다른 추억으로 영화 보기가 아닌 불멍이 남았다.

오로라 불멍과 밤하늘의 별

다음날 아침. 아침이라 춥기도 했지만 불장난에 재미가 들린 나머지 동생은 일어나자마자 장작을 태웠다. 그리고 마시멜로를 구웠다. 난 옆에서 아침을 준비했다. 잠깐, 이거 어디서 많이 보던 장면인데...? 어제저녁 우리의 모습. 달라진 것 밤이 아닌 아침이라는 것, 우리들의 상태가 한껏 메롱이라는 것, 그리고 이제는 마시멜로를 태워먹지 않는다는 것. 딱히 흥 넘치는 캠핑도 아니었고, 배 터지게 많이 먹은 것도, 미친 듯이 맛있는 걸 먹은 것도, 잊지 못할 만한 스펙터클한 추억이 남은 것도 아니지만 나는 만족스러운 캠핑이었다. 둘이 왔는데 솔캠을 한 것 같은 기분. 솔캠은 하고 싶지만 혼자이긴 싫을 때 동생과 함께 해야겠다. 물론 동생도 나와 같은 생각인지는 모르겠지만.

기상!
아침부터 마시멜로, 이제는 불을 지배할 줄 아는 동생
아이들의 캠핑 끝!




CAMPING NOTE


포천 리버빌캠핑&카페

2023년 10월 신규오픈하여 시설은 깔끔한 편이다. 각 사이트도 넓은 편이고, 그늘막이 있는 사이트가 따로 있는데 일반 사이트들도 주변 나무들이 울창해 그늘막이 크게 필요 없을 정도. 매점 겸 사무실 옆에 카페가 있는 것이 큰 장점이다. 주변으로 영평천이 흐르지만 철창 울타리에 가려 딱히 리버뷰는 아니다. 천 위쪽으로 지나는 도로도 있어 차소리에 물소리도 묻힌다. 대신 매점 겸 사무실 방향으로 포천의 탁 트인 산세를 감상할 수 있다. 컨츄리&마운틴 뷰 캠핑장.

이용시간 입실 14PM / 퇴실 11AM (매너타임 22PM-8AM)

문의 0507 1306 8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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