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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재이 May 17. 2023

생일에 빛깔이 있다면

생일에 축하받고 싶은 마음은 인지상정

생일에 빛깔이 있다면 어릴 적의 것은 무지개떡을 닮은 데 반해 나이든 자의 것은 시루떡을 닮은 것 같다. 어릴 적에는 나의 날을 기념하겠다며 용돈으로 살 수 있는 최고로 좋은 종이에 아끼던 색깔 연필로 초대장을 만들었다. '내 엄마가 차린 밥상' 먹으러 오되 밥값은 그에 합당한 것으로 나에게 지불하라는 요상한 전단지였지만, 마땅히 나를 기념하라-는 위풍당당한 기세와 메시지가 담겼다고 생각한다. 나이가 드니 12시에 쏟아지던 축하 문자는 없고 카카오톡 선물하기 리스트에 담아놓은 물건이 출근 시간대에 맞춰 하나둘씩 툭툭 도착한다. 어이구 고맙네~. 감동카드로 답장을 보낸다.



생일을 하루 앞두고 왠지 울적해졌다. 부모님도 내일이 내 생일이란 걸 몰라서였을 수도 있고 나를 기념할 만한 화려한 이벤트가 없어서일 수도 있고 같이 기념할 사람이 없다는 생각이 들어서였을 수도 있다. 펜을 들고 적었다. 나이든 자의 생일이란 통상 그런 것일 텐데 뭐가 섭섭할까. 나는 어른이 덜 됐나. 그러자 내 손에 잡힌 펜 한자루가 이런 문장을 썼다. 


"이 세상에 존재하게 된 것을 축하하고 기념받는 날이니까 가능한 한 많은 축하를 챙기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번역을 잘하고 못하고, 책이 잘 팔리고 안 팔리고, 일이 많고 적고를 떠나 태어난 것에 기뻐하는 하루인데, 그런 하루가 특별하게 흘러갔으면 좋겠다는 욕심이 나는 것이 뭐가 어때서. 그래서 축하도 최대한 많이 받고 선물도 가능하면 많이 받고 날씨도 최고로 좋고 만나는 사람마다 최고로 기뻤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내게 붙은 모든 꼬리표를 떼고 그저 한 사람으로서 사랑받고 있음을 느낄 수 있으니까. 그래서 언젠가 능력과 나이 앞에 작아지는 기분이 들 때 그때 받았던 축하 인사들을 하나씩 꺼내어 작은 버팀목으로 삼으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은 그 무엇보다 이 세상에 태어난 것 자체가 번역을 잘하는 것과 책이 잘 팔리는 것과 일이 많은 것보다도 위대한 것임을 잘 안다. 생일은 과학적인 것 이상을 넘어 하늘의 무언가가 도와주지 않았다면 일어날 수 없는 일이 일어난 날이리라. 그 덕에 이유 없이 사랑 주는 부모를 만나 오늘 하루를 손수 만드신 잡채 한 그릇으로 시작한다. 저녁에는 강남으로 나를 기념하러 나가야겠다.







번역가 & 작가 정재이

출판사 '언디클레어드' 대표

<2년 만에 비행기 모드 버튼을 눌렀다>, <내가 사랑한 화요일> 저자

https://blog.naver.com/kk646/223060929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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