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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재이 Jun 21. 2023

책 만드는 번역가의 토론토 서점 탐방기


나는 책 만드는 영한 번역가다. 책을 쓰고 파는 사람이 남의 나라 책방에 갈 기회를 놓칠 수 있으랴. 출국 하루 전날에야 비로소 갖게 된 자유 시간을 토론토 서점 투어에 온전히 쏟아붓기로 했다. 주어진 시간은 하루뿐이라는 사실이 서글펐지만 슬퍼할 시간조차 아껴 움직여야 했다. 시간이 더 있었다면 여러 날에 걸쳐 많은 서점을 돌아볼 수 있었겠지만, 나는 한정된 시간만 쓰고 떠나야 하는 여행자이기에 몇 가지 조건을 스스로에게 내걸었다.


첫째, 미국의 반스앤노블 같은 체인 서점은 피하기
둘째, 단순한 중고 서점보다는 희귀본도 취급하는 쪽으로 가기
셋째, 출판에 영감을 줄 수 있는 그래픽 & 아트북 쪽으로 살펴보기
넷째, 동선상 너무 먼 곳은 아쉽지만 포기하기


그렇게 총 3곳이 물망에 올랐고, 이 목록에 공공 도서관인 레퍼런스 라이브러리도 추가하기로 했다. 막판에 추천받은 구 토론토 한인타운 근처의 Monkey's Paw에도 가려고 했는데 시간 문제로 갈까 말까 하다 결국 방문 기회를 놓쳤다. 망설이지 말았어야 했다. 왜 자꾸 이런 실수를 반복하는지.

어찌되었건 두근거리는 마음 안고 숙소 밖을 나섰다. 토론토 지하철 안에서는 아직도 휴대폰이 안 터진다. 많이 걷게 될 하루이기에, 강제로 휴식을 취하게 된 것이라 생각하기로 했다.


[방문 서적 목록]

시커스 북스 Seekers Books, 중고 서적 전문
데이비드 메이슨 북스토어 David Mason Bookstore, 중고&희귀 서적 전문
아카디아 북스토어 Arcadia Bookstore, 아트북 전문
+) 토론토 레퍼런스 라이브러리 Toronto Reference Library 공공 도서관



시커스 북스 Seekers Books


토론토 레퍼런스 라이브러리에서 도보로 20분 거리에 있는 중고 서점이다. 체력을 비축하기 위해 서점까지 대중교통을 이용할까 하다가 오픈 시간까지 마침 20분이 남았기에 그냥 걷기로 했다. 동쪽에서 서쪽으로 갈수록 미묘하게 달라지는 분위기와 거리 풍경이 재밌기도 했다.


도착을 했는데 서점이 보이지 않아 어리둥절했다. 알고 보니 서점 이름 답게 어디 있는지를 잘 찾아(Seek)야 보이는 곳이었다. 계단과 기둥으로 은근하게 가려져 있어서 간판을 발견했을 땐 보물찾기에서 보물을 찾은 듯한 기분도 들었다.




서둘러 걸어온 것도 아닌데, 영업 시간까지 5분이 남아서 바로 앞 벤치에 앉아 기다리다가 문을 여는 주인을 따라 안으로 들어갔다.


사진에서 볼 수 있다시피 이곳도 엄청난 중고 서적 보유량을 자랑한다. 종교, 문학, 여행, 언어, 에세이, 만화 등 종류도 다양하다. 마블 같은 연재 만화 과월호도 다수 보유하고 있는 것 같았다.



나름 관심 있는 섹션으로 가 한참을 들여다 보니 파울로 코엘료의 연금술사가 눈에 띄었다. 페이퍼백이 아닌 특별판으로 제작된 것 같았는데 19세기 문학 책을 보는 듯한 편집과 표지가 마음에 들었다. 심지어 가격도 약 15달러로 매우 저렴하다(책 값은 세금을 떼지 않는다). 오늘 방문한 모든 서점에서 최소 1권의 책을 구매하겠다는 목표로 나오기는 했지만, 막상 보관만 하고 잘 읽지 않게 될 것 같아 아쉽게도 이 책은 제자리에 꽂아두고 나왔다.


'EATALY'라니. 이런 언어유희 기발하고 재밌다.


구글 리뷰를 보니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 사이에선 나름 유명한 책방인 듯했다. 모든 중고 서점이 그렇겠지만, 재미있는 책들을 찾기 위해선 꼼꼼히 하나하나 들여다보고 펼쳐 보아야 하는 수고가 필요하다. 대부분의 리뷰어들도 그런 충고를 하고 있었다.


이곳은 희귀 서적 가게라기보다는 중고 서점에 조금 더 가깝고, 그 안에서 특별판 등을 발견할 수 있는 쪽에 가까워 보여 시간이 부족한 여행자는 길을 나서기로 결심했다. 그대로 지나쳐 나가기엔 왜인지 미안해서 좋은 곳을 보고 가서 기쁘다는 인사를 건넸고, 들러줘서 고맙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신기하게도 이런 스몰 토크는 영어권 지역에서만 나눌 수 있는 기분이다. 서로를 모르지만 미소를 공유하면서 한마디씩 주고받는 그 순간들이 참 좋다. 주인과의 사소하지만 따뜻한 헤어짐이 기억에 남는다.




데이비드 메이슨 북스 David Mason Books



이곳은 오피스텔 같은 사무실 건물 지하에 위치해 있어 처음 방문하는 사람이라면 나처럼 건물 외관을 보고 당황할 수 있다. 서점이 나와야 하는데 사무실 건물이 나오니 잘못 찾아온 건지, 폐업했는데 정보 업데이트가 안 된 건지 혼란스럽기 때문이다. 구글맵에 적힌 주소와 건물의 번지 수(366번지) 가 맞아서 일단 안으로 들어가 층별 안내문을 보니 지하에 서점이 있다고 써 있었다. 정말 다행이었다. 똑같이 당황했다면 일단 건물 안으로 들어가보길.


문틈 사이로 느껴지는 희귀 서적본들의 카리스마. 문을 열고 들어가면 더 대박이다.


현대적인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니 고풍스러운 중세가 펼쳐졌다. 가볍게 인사를 나눈 뒤, 워낙 고가의 희귀 장서가 많기도 해서인지 마스크를 써 달라고 하셔서 착용하고 구경을 했다. 내부는 각종 골동품부터 오래된 광고물과 프린트본, 문학본, 역사본 등 방대한 컬렉션으로 꽉 채워져 있었다. 방금 전까지 토론토 다운타운에 있었는데, 이곳은 로판 웹툰 속 어느 공작님의 세 번째 서재쯤 되는 느낌이다.



맨 위에 적힌 글을 보면 약 1920년대의 책이라고 써 있다. 권당 400달러가 맞을 것이다.


대부분의 책들이 비닐 커버로 씌워져 있어서 펼쳐보기에 부담스럽지 않고 또 잘 보존되어 있었다. 책뿐만 아니라 오래된 스크랩본, 광고물, 친필 편지 등도 판매하고 있었다. 개인적으로는 이것들이 재밌어서 한참을 골라봤다. 이런 종이들도 한 장에 10달러-80달러까지 판매가 되고 있었다. 잘 모아두는 것의 힘이 여기서 발휘되는 게 아닐까 생각하기도 했다.





그리고 정말 재밌는 것은, 캐나다 사람들은 반려동물로 주로 강아지나 큰 개를 기른다고 들었는데 방문하는 모든 책방에는 고양이가 있었다. 이점에서는 사촌도 놀란 듯. 아래 사진에 있는 녀석의 이름은 '헨리'인데 주인이 헨리를 부를 때의 목소리가 무척 다정해서 굉장히 사랑받고 있구나 하고 생각했다. 이 녀석은 내가 책을 구경할 때 뒤에서 계속 나를 부르더니만, 뒤돌아서 관심 보여 주면 고개를 돌리는 진정한 고양이였다. 카메라를 들이대면 얼굴도 돌린다. Book, Cat, Life is good 이란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닐지도.



데이비드 메이슨에서는 자체 발행한 책 2권을 구매해왔다. 우리나라의 독립 서점들도 직접 책을 발행하기도 하고, 나는 한국에서 셀프 퍼블리싱을 하고 있어서 흥미롭게 둘러봤다는 인사를 전했다. 그나저나 책 제목이 '중고서점 활용법'과 '책팔이가 굶어 죽는 이유'라니. 구매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https://goo.gl/maps/73SZrLqqF4keUTC89

David Mason Books · 366 Adelaide St W, Toronto, ON M5V 1R9, Canada              

★★★★★ · Rare book store




이 글은 네이버 블로그에 업로드 중인 캐나다 토론토 여행기의 일부이며 나머지 공공 도서관과 <김씨네 편의점> 옆에 위치한 아카디아 북스토어의 후기는 아래 링크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https://blog.naver.com/kk646/2231350121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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