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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재이 Oct 01. 2023

감수자의 말들

강사로서 번역가 지망생들에게 강의를 할 때 감수자가 주는 피드백을 개인적으로 받아들이지 말라고 말한다. 당연한 말이고, 뜻대로 안 되는 것도 맞지만 그 말들을 사적으로 받아들이면 이 일은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노력과 시간을 들여 일을 해냈더니 돌아오는 말이라고는 '이상하다, 어색하다, 모호하다, 별로다.' 성심껏 한 일에 대해 대놓고 지적을 받는데 누가 기쁘고 즐겁겠나. 게다가 감수자에게도 취향이라는 게 있어서, 굳이 안 고쳐도 될 법한 조사나 단어를 자기가 편하게 느끼는 어감의 것으로 바꾸기도 한다. 그러니 피드백을 내가 못한 것이라거나 나를 공격하는 말이라 여길 필요가 없다. 감수자는 말 그대로 '감수'를 했을 뿐이니 취할 것만 취하고, 묘하게 불편한 감정은 날아가는 새가 물어가도록 뱉어 두어야 한다.


나는 1년 차 때부터 매주 피드백을 받으며 일을 했다. 피드백 이메일은 화요일마다 왔고, 첨부된 워드 파일을 클릭하면 새빨간 글씨에 잠식된 나의 번역문이 모니터 화면을 가득 채웠다. 문서의 맨 위에선 커서가 조용히 깜빡거렸다. 말없이 나타났다 사라지길 반복하는 커서의 모양이 초조해 보이기도 담담해 보이기도 했다. 그 커서를 멍하니 바라보다 새빨간 글씨로 시선을 옮겨 '아프니까 초보다' 같은 비문을 되뇌며 조금 더 매끈해진 번역문을 야속하게 쳐다봤다. 실수는 줄여 가면 된다는 말을 중얼거리면서.


그렇게 6년을 지내며 별의별 피드백을 받아봤기에 나는 다른 번역가들에 비해 '피드백 맷집'이 강한 편이라 자부하지만, 개복치 성정을 버릴 수가 없어 가끔은 나도 피드백을 사적으로 받아들인다. 가령 이런 경우다.


이게 에세이인가요? 오히려 A에서 말한 것 처럼 일기에 가까운 글인 것 같은데요??

(*프로젝트 특성을 가리기 위해 일부 단어를 변형함)


코멘트를 보자마자 한쪽 입꼬리가 올라갔다. 머릿속으로는 온갖 생각이 밀려들었다. 이분은 왜 늘 말을 이렇게 하지? 이래서 친구네 회사에서는 물음표는 1번만 쓰라는 규칙이 있는 걸까? 이 말은 내게 사실을 묻는 것일까 아니면 나를 다그치는 것일까? 그는 1차 감수자인 내가 검토를 하여 넘긴 글을 2차 감수해 최종 승인 대기열에 넘기는 일을 한다(예: A가 글을 작성 --> 내가 검토 --> B가 최종 검토 --> 고객사 C가 승인). 그러면서 내 작업물을 5점 만점으로 평가하는데, 감점을 제시하면서 위 코멘트를 달아둔 것이다.


내가 감수자가 되어 보니 특정인의 특정한 실수를 원하지 않아도 잘 기억하게 된다. 왜냐면 그 사람이 늘 그 실수를 하기 때문이다. A씨는 띄어쓰기 오류가 심한데 이 사실을 여러 번 지적했음에도 늘 같은 실수를 범한다. B씨는 가이드라인을 잘 지키지 않는다. 분명 경어체로 글을 마무리하라고 주의 사항에 쓰여 있는데 늘 종결 어미로 '-이다'를 쓴다. C씨는 매번 마감을 안 지킨다. DM을 보내면 늘 미안하다며 사과한다. 하지만 또다시 마감을 어긴다. 


A,B,C씨는 나의 피드백을 받은 다음부터는 조금 더 노력했을 것이다(나야 알 길이 없지만 그랬을 것이라 믿어 본다). 맞춤법 검사기도 써 보고, 가이드라인도 한 번 더 보고, 마감일도 한 번 더 확인했을 수 있다. 그러나 이 사소한 노력이 결과물에 반영되지 않았으므로 감수자인 나는 피드백을 제대로 받아들이지 않았다는 평가를 하게 된다. 그러면 마음이 일순간 날카로워지기도 한다. '할 마음이 있는 건가?' 라면서. 그러면 '너무'라든가 '제출 전 확인은 하신거냐' 등 어감이 센 표현을 선택하게 된다. 어떤 의미에서 개선되지 않은 작업물은 노력하지 않은 것과 마찬가지이며, 이는 피드백을 무시한 것이라 볼 수도 있다. 슬프게도 말이다.


'그래도 조금만 더 다정하게 얘기하면 어떨까.' 그의 글자들을 보며 생각했다. 나 혼자 그의 말을 차갑게 받아들이고 오해하는 중이라 말할지도 모르겠다. 그럴 수도 있다. 개인적으로 건조하게 말하는 사람은 좋아하지 않는다. 메시지에 '^^'나 'ㅎㅎ'가 들어가야만 친절하다 여기는 사람도 부담스럽다. 그러나 문자로만 소통하는 사이라면 아니, 사람과 함께하는 일을 한다면 형태가 어떻든 다정함이 전제가 되어야 한다고 본다. 그리고 사람은 오감을 활용해 다정함이 있는지 없는지를 기민하게 알아챈다. 말 한마디가 사람을 살리기도 하고 죽이기도 하는 이유다.

문득 내가 그것을 에세이로 분류해 제출한 사유를 읽었을까 궁금해졌다. 나도 무작정 낸 것이 아니라 어떤 근거와 함께 이유를 적어 2차 감수 단계로 넘겼다. 그에게 물어보려다 마우스 커서를 다른 쪽으로 옮겨 미리 작성해 두었던 피드백 코멘트를 조금 더 둥글게 고쳤다. 따져 묻기 전에 나부터 다정해지고 싶었다.


이런 말을 들으면 고맙고 기분이 좋다. 물론 작업물이 좋아야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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