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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재이 May 29. 2024

언제부터 식탁에 스마트폰을 올리는 게 당연해졌을까?

지인들과 저녁을 먹으러 갔을 때였다. 우리는 메뉴판을 돌려 보며 각자 무엇을 먹을지 골랐고, 종업원은 주문서를 받은 뒤 우리가 들고 있던 메뉴판을 가지고 카운터로 돌아갔다. 그때 내 눈에 새삼스런 광경이 비쳤다. 네 사람 분의 앞접시와 식기 옆에 네 사람 분의 스마트폰이 가지런히 놓여 있는 장면이었다.



언제부터 당연한 듯 식탁에 스마트폰을 올려두게 되었을까? 상대방을 앞에 두고 문자에 답을 하거나 통화를 하는 일은 실례되는 행동에 속한다. 급한 용무인 경우 양해를 구하기는 하지만, 적어도 내 지인들은 나와의 약속 자리에서 대놓고 딴짓을 한다거나 이야기를 시켜 놓곤 인스타그램 릴스를 보는 행동은 안 한다. 어떤 주제에 대해 이야기하다가 세부 내용이 궁금해져서 이야기 중 검색하는 일은 있다. 절친해서 같은 공간에 있지만 자기 스마트폰만 보고 있어도 괜찮은 사이도 있다. 오히려 초면인 경우에 스마트폰을 가방 깊숙이 넣어 두고 진동이 와도 보지 않고 꾹 참는다.



이 장면이 생경하게 다가온 이유는, 주문한 음식이 식탁을 점령하기 시작하면서 우리 모두 약속한 것처럼 스마트폰을 가방에 넣거나 자기 엉덩이 옆에 두었기 때문인데, 그럴 거라면 애초에 올리지 않아도 됐던 것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이 의문은 모든 사람이 책상이나 식탁에 스마트폰을 올려놓는 요즘 풍경으로 이어졌고, 이것을 반드시 내 곁에 두고 말겠다는 색다른 집착이 아닌가 하는 또 다른 의문으로 이어졌다. 10년 만에 비대해진 휴대폰 사이즈와 남달라 진 용도 때문도 있겠지만, 공부도 내가 하는 것이고 밥도 내가 먹는 것인데…



며칠 전 헬스장에서 러닝머신 위를 걷는 내내 고개를 숙이고 스마트폰을 보던 사람이 생각나 그랬을지도 모른다. 저러다 넘어지는 건 아닐지 걱정이 됐다. 그를 의식하고 난 뒤 주변을 둘러보니 의외로 운동 중에도 스마트폰을 내려놓지 못하는 사람이 많았다. 운동 자세나 방법을 참고하는 중일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지만, 내내 쳐다보고 있어야 할 정도로 어려운 동작인가 궁금하기는 했다. 그러고 보니 식사 장면이 이상하게 다가왔던 또 다른 이유는 ‘우리 모두 이곳에 스마트폰을 올려놓음으로써 상대에게 어떤 알림이 오든 그것을 보아도 괜찮고 나도 똑같이 그러하겠다’는 암묵적 합의가 이루어진 것 같아서였기도 하다. 그런데 알림 때문에 스마트폰 홈 화면이 자꾸 켜지면 오히려 뒤집거나 방해 금지 모드를 설정할지언정 그것을 치우지는 않았다는 점이 이상하고, 신선하고, 재밌었다.



며칠 전 도서관에 나간다고 급히 짐을 챙겼다가 스마트폰을 챙겨 나오지 않았단 사실을 도서관 입구에서 깨달았다. 순간 돌아가서 가지고 나와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꼭 그래야 할 이유가 없었다. 어차피 정말 책만 읽고 돌아올 생각이었으므로 스마트폰 없이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때때로 책을 읽다가 ‘아, 맞다. 그거 확인했던가?’ 하는 생각이 떠오르기는 했다. 하지만 스마트폰을 찾았지만 가져오지 않았다는 사실과 함께 급히 확인할 필요 없는 일이란 인식이 솟아났다(이런 경우 실제로 하던 일을 멈춰야 할 만큼 대단하지는 않은 경우가 많다). 스마트폰이 곁에 없으니 자꾸만 시간을 확인하고 싶은 욕구도 없어지고, 도서관 공기청정기가 내는 백색소음 덕분에 책을 더 잘 읽을 수 있었다.



갑자기 스마트폰 없는 순간이 무척 소중하게 느껴졌다. 일상에서 이런 순간들이 더 늘어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내친김에 산책도 하기로 했다.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가지가 예뻐 카메라를 찾으니 당연하게 카메라가 없다. 머릿속으로 생각한다. ‘눈에 담고 가지, 뭐.’ 어릴 땐 이런 장면 등을 기록하지 못하고 사는 게 당연했는데. 누리지 못할 정도로 많은 걸 담고 살고 있진 않을까? 문득 궁금해졌다. 오랜만에 산책하는 내내 고개를 들고 걸었다. 그러다, 그래도 이런 예쁘고 싱그러운 모습들은 역시 담고 살고 싶다는 생각도 했다.


그래도 이런 풍경만큼은 많이 찍고 담아두고 싶다
매거진의 이전글 모닝 페이지를 60일 넘게 썼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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