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은 거짓말을 모른다
내가 처음 시를 쓸 때 이상한 걸 발견했다. 비가 온다고 쓰는 것, 눈이 내린다고 쓰는 것, 햇볕이 쏟아진다고 쓰는 것. 이게 뭐가 이상하냐고? 내가 직접 보지는 못했지만 학교에서 지구는 돈다고 배웠다. 매일마다 도는 게 어김이 없어서 낮이 밤이 되었다가 다시 낮이 된다고 했다. 학교는 거짓말을 안 하니까 틀림없는 사실로 믿었다. 그렇다면 비는 왜 오기만 하고 가는 건 까먹은 것일까. 눈은 내렸으면 올라가야지 왜 올라가지 않는 것일까. 햇볕은 왜 쏟아지기만 하고 있던 곳으로 돌아가지 않는 것일까. 나는 이런 의문으로 며칠 잠을 자지 않았다. 내가 안 보는 사이 한밤중에 비가 자기네 집으로 돌아가고 눈이 하늘로 펄펄 올라가고 태양이 아주 커다란 청소차를 끌고와 햇볕을 몽땅 쓸어담아 가져가는 게 아닐까 싶어서.
내가 처음 쓴 시가 이런 내용이었는데 선생님이 시를 제출하라고 했을 때 나는 엄청 무서웠다. 이런 멍청한 생각을 하는 녀석이 있다고 혼낼까봐, 친구들이 바보 같다고 놀릴까봐. 나는 숙제를 안 했다고 둘러대고 그 멍청한 시를 제출하지 않았다. 차라리 못해서 혼나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 나중에 커서 시를 공부한 뒤에 알게 되었다. 엉터리 같을수록, 아주 멍청할수록 좋은 시가 된다는 사실을. 시의 세계란 참으로 오묘하고 요상하다는 것을 어릴 때는 몰랐다.
내가 아는 시인 중에 신서희라고 있다. 발표한 시는 딱 한 편뿐이다. 단 한 편으로 나를 사로잡은 기이한 시인이다. 신서희 시인은 군산푸른솔 초등학교 2학년이다. 지금은 고학년이 됐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신서희네 담임선생님이 <감꽃을 먹었다>는 제목의 동시집을 보내줘서 거기서 신서희 시인을 처음 알게 되었다. 신서희 시인이 쓴 시는 제목부터 예사롭지 않았다. 제목이 ‘아무거도 안 해다’였다. 마치 ‘13인의아해가도로로질주하오.’로 시작되는 형이상학적이고 난해한 시, <오감도>를 쓴 천재시인 이상이 현현한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였다. 시인은 놀랍게도 ‘아무것도 안 했다’는 문장이 올바름에도 불구하고 시옷받침을 다 빼버린 시적 파격을 가했다. 더 놀라운 건 시 본문도 딱 한 줄뿐이라는 사실이다. 맞다. 예상대로 본문도 제목과 같이 ‘아무거도 안 해다’이다. 시옷받침을 뺀 것도 똑같다.
유추해보건대 시 내용처럼 시인은 만사가 귀찮았던 걸로 보인다. 아무것도 안 하고 싶은데 선생님이 시를 써서 가져오라고 숙제를 냈을 것이다. 정말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던 시인은 시를 쓰는 일이 죽을 맛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있는 그대로 진솔하게 아무것도 안 하고 싶은 마음을 고스란히 함축하고 압축해서 단 한 줄짜리 시를 완성했으리라. 선생님도 시인의 시를 본 순간 나처럼 깜놀했을 것이다.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를 쓴 백석 시인이나 ‘향수’를 쓴 정지용 시인을 떠올렸을지도 모른다. 그녀의 선생님은 백지나 다름없는 극도로 짧은 시를 심드렁하게 내미는 서희에게 조심스럽게 요청했을 것이다.
“서희야, 시가 제목이 없네? 그래도 제목은 달아야 하지 않겠니?”
그러자 시인은 더 생각해 볼 것도 없이 선생님이 들고 있던 볼펜을 빌려 시 전문과 똑같은 제목을 한 줄 더 써넣는 것으로 화룡점정의 마침표를 찍었을 것이다. 아유, 귀찮아죽겠네, 하는 표정을 역력하게 지으며.
이건 어디까지나 시를 좀 써 본 내가 신서희 시인의 시를 읽고 나름의 추리력을 발휘해 본 것이다. 아닐 수도 있겠지만 거의 맞을 것이다. 물론 내 추측과 달리 시인은 시를 길게 여러 줄 썼다가 압축미와 절제미를 보여주려고 다 지우고 단 한 줄을 남기는 각고의 퇴고로 이 시를 완성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내가 아는 한 천재 시인들은 보통 그렇게 억지스럽게 고쳐가며 쓰지 않는다. 벼락처럼 번쩍 하고 단숨에 끝낸다. 아무튼 신서희 시인에게 물개박수를 보낸다. 존경스럽다.
나도 아무것도 안 하고 싶을 때가 너무너무 많지만 그걸 시로 쓸 생각을 하지도 못했고, 생각을 했더라도 그걸 감히 제출할 용기를 내지 못했을 것이다. 세상은 아이라고 그냥 내버려두지 않는다. 만만하거나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걸 누구에게나 보여준다. 학원이, 학교가, 엄마가, 오빠가 계속 간섭하고 괴롭힌다. 끊임없이 무언가를 하라고 시키고 검사하고 감시한다. 죽을 맛이다. 그래서 거의 모든 아이들의 소원이 ‘빨리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어른이 되는 것’이 아니겠는가. 어른들은 시간이 너무 빨리 가서 슬프고 안타까운데, 아이들은 시간이 왜 이리 천천히 가는지 모르겠다고 하소연한다. 시간은 달팽이처럼 느리게 가고, 억지로 해야 하는 일이 몇 탕씩 뛰어야 끝나는 학원처럼 밀려 있는 어린 사람들. 그래서 시인은 폭발할 것 같은 내면의 불꽃을 예술로 승화한다. 제발 나를 그냥 내버려두라는 절규를 담아, 아무것도 안 해도 누구도 탓하지 않는 이상향을 꿈꾸며 일생일대의 작품을 발표하기에 이른다.
나는 예술가로서 신서희 시인도 존경하지만, 인간으로서 신서희 씨도 존경한다. 저 나이에 저런 강직한 줏대를 갖기가 쉽지 않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진심 짱 멋지다. 나도 저렇게 속에 있는 말을 표현하며 살고 싶은데 사람들이 나를 이상하게 생각하고 뒤에서 흉볼까봐 엄두도 못 낸다. 나는 신서희 시인이 어른이 돼서도 할 말은 하고 사는 당당한 시민이 되기를 염원한다. 자유로운 어른이 되기를 희망한다. 부디 귀찮더라도 시는 꼭 쓰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