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말이 좋아서 밑줄을 그었다
그때 우리는 오징어 모양을 땅바닥에 그려놓고 수레미 놀이라고 불렀다. 일제 강점기 때도 아이들이 했던 놀이여서 왜색 짙은 용어로 불렀으리라 추측된다.
아무튼 지금 내가 그 오징어 게임에 참가한다면 456억 원은 따 놓은 당상이다. 나는 우리 고장이 배출한 놀이의 신이었으니까. 사각형 안으로 공격자들이 들어오면 선 밖으로 밀쳐내 죽여야 하는데 나는 그 아이는 죽일 수가 없었다. 죽이는 게 마음 아파 자꾸 그 애를 살려 보냈다. 그러다 눈치를 챈 같은 편 아이들에게 욕을 바가지로 얻어먹었다. 그래서 나는 전략을 바꿨다. 한 번은 죽이고 한 번은 살리고, 이런 식으로.
그 아이 이름은 민숙이었고, 나는 걔를 슈가(숙아!)라고 불렀다. 부르기만 해도 메밀꽃 흐드러지듯이 희고 달달했다. 나보다 두 살 어렸고 동네에서 제일 예뻤다. 읍사무소 다니는 슈가 아빠도 나에게 다정하게 대했고, 슈가 엄마는 더 할 수 없이 인자하고 고왔다. 내가 장모님이라는 단어를 처음 알게 됐을 때 가장 먼저 떠올렸던 사람이 슈가 엄마였다. 아무튼 우리가 오징어 게임 같은 건 시시해서 더 이상 하지 않을 만큼 자랐을 때, 내 마음 속의 슈가도 그만큼 자라 있었다.
내가 남고에 입학하고 그녀가 여고에 입학하고부터는 골목에서 마주치는 일이 드물었다. 못 보는 날이 길어지면 괜히 입맛이 없고 공부가 안 되고 인생이 괴롭다는 생각이 들곤 했다. 머리도 굵어졌고 엉뚱한 놈이 채갈 수도 있으니 이젠 용기를 내 고백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때는 고백을 주로 편지로 했고, 나는 편지 쓰는 건 누구보다 자신 있었다. 아름답고 감동적인 시도 한 편 썼다.
문제는 그 편지를 누구를 통해 전하느냐였다. 내가 떠올린 매파 역은 슈가의 큰언니였다. 그녀는 나보다 세 살 위였는데 나에게 무척 다정하고 상냥하게 대해줬다. 그녀가 읽는 책들도 내 취향과 맞았다. 내가 읽은 알퐁스 도데의 <별>이나 <데미안>의 아브락삭스에 대해서 그녀와 얘기를 나눌 때, 그녀의 차분한 목소리도 좋았지만 그녀에게서 나는 은은한 향기가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내가 일찍 태어났더라면 그녀의 남자친구가 될 수 있었을 텐데, 이런 생각을 했을 정도였다.
나는 늦은 봄밤에 슈가 언니에게 편지를 건넸다.
“누나, 이것 좀 민숙이 한테 전해주세요.”
“이거 연애편지니?”
“아니에요. 열어보면 안 돼요.”
“열어보지 말라니까 더 궁금한데. 하하하.”
“정말 보면 안 돼요. 그럼 누나 다신 안 볼 거예요.”
“태주 넌 나를 믿니? 정말, 나를 믿어?”
“네?”
나는 그녀가 나를 믿느냐고 묻는 말이 내 마음을 믿느냐는 말인 줄 몰랐다. 그 말의 진의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 아무것도 모른 채 나는 순진하게 슈가의 답장만을 목 빠지게 기다리고 있었다. ‘정말’은 무서운 말이었다.
*나머지 이야기는 새로 나온 에세이에 있어요. 지금 서점에서 절찬리에 판매한다고 하네요. <너의 말이 좋아서 밑줄을 그었다>의 너는 당신에게 누구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