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습작

그 닭고기 공장

by 채리

행복했다.


내가 한국에서부터 목표하고 왔던 닭고기 공장에서 일을 할 수 있게 됐다. 길게만 느껴졌던 한 달간의 고생이 끝나고 이제 안정적인 생활을 하며 돈만 모으면 될 거라고 기대했다.


공장은 크게 2가지 Zone으로 나뉘었다.

하얀 옷을 입고 일하는 White zone과 빨간 옷을 입고 일하는 Red zone.

하얀 옷을 입는다는 건 일하는 동안 그 옷을 더럽힐 이유가 없다는 것을 의미하고 빨간 옷은 그 반대이다. White zone에서는 닭에 양념을 바르거나 포장을 하는 등 음식이 되기 바로 직전의 닭을 다루었고 Red zone에서는 내장 분류, 닭털 뽑기 그리고 닭목 자르기 등 살아있거나 죽어도 아직 몸이 따뜻한 닭을 다뤘다. 그렇기 때문에 옷에 닭피가 튀길 일이 많아 빨간 옷을 주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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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정도 사실은 인터넷으로 봐서 미리 알고 있었다. 그냥 Red zone으로 떨어지지 않기를 기도하며 첫 출근을 했다. 그런데 내가 일할 곳은 Red zone이란다. 닭털을 뽑는 기계가 새로 들어와 새로 생긴 부서란다.

나에게 주어진 일은 새로 들어온 기계 옆에 서있다가 혹시 덜 뽑힌 털이 있으면 그 털을 마저 뽑고 뽑힌 털이 기계에 걸리면 그것만 정리하는 게 전부였다. 그리고 조금 지켜보다가 기계가 제대로 작동하는 것 같으면 다른 부서로 보내준단다.

미리 했던 내 기도가 먹히지 않았다. 하지만 다른 부서로 이동할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지고 일을 시작했다.


일은 새벽 4시에 시작됐다. 그 시간에는 대중교통도 없어 공장 근처로 이사를 해 3시부터 일어나 비가 와도 자전거를 타고 출근했다. 공장 근처이다 보니 방값이 비쌌다. 3시에 일어나기 위해서는 남들이 다 깨어있을 8시에 자야 했지만 아직 제대로 된 방을 구할 수 있는 돈이 없었다. 그래서 일단 거실살이를 하기로 결정했다.


육체적으로 일은 그리 어렵지 않았지만 정신적으로 많이 괴로웠다. 갓 목이 갈려 넘어온 닭들이 피를 쏟아내며 천장에 매달려 내가 있는 곳으로 넘어왔다. 그리고 뜨거운 물에 들어가 삶아 진후 새로 도입했다는 기계에 의해 털이 뽑혔다. 일을 빨리하기 위해 킬러들은 목을 완전히 베지 않았고 닭 머리는 몸에 대롱대롱 매달려 넘어와 다른 기계에 제거됐다. 그리고 목이 갈리고도 살아서 발버둥 치는 닭도 심심치 않게 있었다. 나는 그 기계 옆에 서서 하루 종일 닭 꽁지만 쳐다보며 털을 뽑았다. 그리고 바닥에 고인 피가 굳기 전에 가끔씩 청소도 하고 닭머리가 쌓일 때쯤 닭머리를 삽으로 퍼서 분쉐기에 넣어주는 등 내가 무언가를 한다기보다는 기계가 정상적으로 작동할 수 있게 돕는 역할이었다.

끓는 물때 문에 방은 습했고 삶은 닭 냄새와 피 냄새로 진동했다. 기계를 도와 일을 했기 때문에 말동무도 없었다.

비위가 강하지만 역겨웠다.

공장의 근무환경은 좋지 않았지만 그만한 대가를 지불해줬다. 기본급 외에도 더러운 일을 한다고 Dirt수당과 아침 일찍 일을 시작한다고 Morning수당을 따로 챙겨주었다. 주에 1000달러 이상을 번다고 했던 친구의 말이 거짓말이 아니었다. 역겨웠지만 못 할 일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첫 주급이 입금됐을 때 그간 호주에서 고생했던걸 생각하며 호주의 상징이라고 생각했던 캥거루 고기를 사 먹었다.



13292973_1010237559059059_114891397_n.jpg 근육100% 당연히 질기다.



내가 생각해도 나는 이 공간에서 그리 필요한 존재가 아니라고 느낄 때쯤 White zone은 아니지만 Red zone에 다른 부서에서 일을 하게 됐다. 이번에도 쉽지만 더러운 일이었다. 닭이 실려온 닭장을 닦는 일이었다. 일은 간단했다.

수압이 센 워터건으로 닭장에 있는 닭똥을 치우고 닭장 사이에 끼어있는 닭을 꺼내는 게 전부였다. 냄새가 심해 마스크를 쓰고 일해야만 했고 닭장에 숨어있던 바퀴벌래들 내 목까지 타고 올라오기도 했지만 천장에서 떨어지는 닭피를 맞으며 닭 꽁지만 보며 일하는 것보다는 나았다.



DSCN0249.JPG 울타리 뒤로 보이는 초록 상자가 닭장이다.



White존으로 옮겨가진 못했지만 내가 앞으로 일할 곳이 닭똥을 맞아가며 생닭을 거꾸로 매다는 Hanging 파트가 아닌 것에 감사했다.


하지만 닭장을 닦기 시작한 지 얼마 안 되어서 Hanging파트로 다시 부서가 옮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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