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없던 중학교시절 가난했던 우리 집. 그리고 그 가난이 부모님의 탓이었던 것만 같아 난 부모님을 자주 원망하곤 했었다. 그러다 그 원망이 극에 달했던 적에 있었는데 고등학교 원서를 쓰던 때였다. 친한 친구들을 인문계에 다 원서를 내는데 나만 실업계로 원서를 냈기 때문이다. 집안 형편이 좋지 않았기에 어쩌면 늘 생각하던 일이었는데 막상 부딪히고 보니 마음이 썩 좋지 않았다. 성적도 중학교 때까진 상위권을 유지했기 때문에 여러모로 탐탁지 않았다.
그렇게 진학한 고등학교시절은 악몽 그 자체였고 설상가상으로 잦은 두통까지 겹쳐 고교 3년 시절은 지우고 싶은 시간으로 기억되었다.
그러다 졸업 후 서점에 취직하게 되면서 부모님을 탓했던 내 자신이 얼마나 철없었는지 알게 되었다.
아빠는 학력은 초등학교 중퇴다. 당신 스스로가 배움의 한이 큰 탓인지 공부에 관한 지원은 아끼지 않으셨다. 한글을 다 떼자 100여 권에 이르는 책을 사주셨는데 그중에는 위인전, 세계명작, 전래동화, 창작동화 등이 있었다. 정말 열심히 책을 읽었다. 책을 읽는다는 것이 이렇게 즐거운 것임을 나는 조금씩 깨닫고 있었다. 하지만 그 책들은 할부를 다 갚지 못해 아쉽게도 반환이 되었다.
아빠의 곁엔 늘 음악이 있었는데 카세트테이프에 녹음을 해서 이웃분들에게 나누어 주곤 하셨다.
아빠를 보면서 마음이 아플 때가 종종 있었는데
아빠도 좋은 부모님을 만났다면 책과 음악을 즐기며 여유 있는 삶을 사실수도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안타까움과 안쓰러움이 느껴질 때였다.
엄마와의 사이가 좋지 못해서였을까. 아빠의 곁엔
그림이나 도자기 등 예술품들이 떠나질 않았다.
그러다 보니 나도 자연스럽게 그것들에 스며들었고 훗날 작품들이 다 정리된 휑한 집을 봤을 땐 황량함만이 가득했다.
아빠는 나에게 한 번도 그림이나 도자기에 대해서 또는 음악에 대해서 어떤 말도 하신 적이 없다.
그저 그런 아빠를 나는 바라봤을 뿐.
고등학교 시절 마음속에 혼란이 일 땐 미술작품을 감상하거나 서점에 들러 한 권의 시집을 사들고 오곤 했다. 가난해서 할 수 없던 많은 것들을 책으로 대신할 수 있었고 떨어져 지내던 친구들과는 편지로 소통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