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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플로우 Aug 29. 2020

즐거움을 좇다 내가 원하는 자유를 고민하게 되었다.

'통해' 보단 '함께'

요즘 날이 너무 덥고 습하다. 소화는 안되는데 최근 운동 강도를 높였더니 체력소모도 너무 커서 살이 빠진다. 피부는 짓무르고 가렵다. 가만히 있어도 덥고 습하고 가렵고 힘들어, 잠을 자는 것이나 누워있는 것조차도 몸이 끄응하고 무겁게 버텨낸다. 코로나는 창궐해있어 어디를 가지도 못하는데 드림스쿨에서 합격증을 받고 퇴사를 한 나날들이 왜 이리 심심한지. 


지난 날 억눌린 자유와 개성이 아우성을 친다. 상대를 인간으로 존중하는 것 외에는 자유롭고 싶다. 입는 것, 먹는 것, 나아가 당위없이 또한 위계없이 의견을 가지고 나타내는 것. 


심심한 것인지 마음 통하는 이가 그리운 것인지 즐거운 인연으로 무료함을 달래보려하지만, 이런 상황에서는 결국 즐거움을 내놔달라, 누군가에게 기대하고 만다. 그리고 그러한 요구같은 것은 마침내 풀리지 않는 스스로의 답답함과 상대와의 아슬아슬한 눈치싸움이 되고만다. 





누구나 관계를 '통해' 얻고자 하는 것이 있다. 누군가는 관계에서 관심을 바라고 누군가는 즐거움을, 누군가는 안정감을 원한다. 그래서 사람을 고름에 있어 때때로 상대방이 내가 원하는 그것을 줄 수 있는지 고민하게 된다. 


하나에서 둘이 되는 관계를 통해, 대체로 우리는 외로움이 해소되기를 기대한다. 그리고 몇 번의 연애를 거쳐 또한 우리는 외로움 때문에 타인에게 의존하게 됨을 경계한다. 외로움, 기대, 실망 - 타인과 나의 경계를 지키지 못하는 것은 그 어느 사람도, 순간도 안정적이고 행복하게 하지 못한다. 그리고 그 어떠한 결핍과 기대가 다 그렇다. 탈출구를 남에게서 찾는다면 그것은 사랑보다는 이기적인 대리만족일지 모른다. 


그렇지만 그렇다면 사랑을 왜 하는가? 모든 걸 혼자할 수 있고, 인생이 이미 충분히 가득차있다면 말이다. 


자신이 원하는 방식과 때에 상대와 함께 하고자 하는 소유와, 상대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함께 하고자 하는 사랑은 다르다. 그런 의미에서 상대와 즐겁고자 하는 마음이 때때로 부담되는 일방향적인 기대나 요구가 아닌지 경계할 수는 있다. 


하지만 내가 원하는 것을 타인을 ‘통해’ 찾으려 하기보단 ‘함께’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상대방과 함께할 때 느껴지는 감정이란 것이 사랑의 큰 요소가 될 수 밖에 없지 않겠는가? 그 정도는 바랄 수 있지 않을까.


관계에서 정말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하루 중 상대와 함께이기에 느껴지는 감정이 얼마나 긍정적인지가 나의 행복을 좌우한다. 나는 그것이 관계의 질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신뢰, 일관성, 애틋함, 존중, 배려와 같은 것들이 관계에 있을 때 긍정적인 감정을 더 자주 느낄 수 있다고 본다. 그래서 단순히 대화나 취향의 일치가 내 인생에 주어진 지대한 시간 중 아주 일부에만 영향을 미칠 거라 생각한다. 그리고 내가 만나는 이도 관계가 잘 쌓이기 위해 필요한 몇 가지 중요한 가치를 알고, 그것을 지키고자 행동하고, 대화가 될 만큼 성숙하고 경험이 있으며 사려깊은 생각이 있기를 바란다. 





내가 관계에 바라는 것은 자유였다. 아니, 자유에서 오는 그 무엇에도 얽매임 없는 그 해방감. 내가 사랑하는 사람과 있을 때는 일상의 시름을 잊기를, 무엇도 자유롭고 용기있게 행동할 수 있기를 바랐다.


그런 내게 어떤 사람들은 불필요한 당위가 너무 많고, 또 어떤 사람들은 때로 인생에 중요한 가치를 보는 눈과 행위를 잃은 듯 보였다. 그 간극에서 나는 내가 결국 한 번 더 사랑에 대한 환상을 품은 것이 아닐까 고민하게 되었다.


내가 원하는 자유는 과연 무엇이고, 싫다는 고루함은 무엇일까?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지는 것, 다양성과 간헐적 발칙함이 받아들여지는 것. 내가 나의 생각을 있는대로 펼쳐내고 표현할 수 있는 것. 주변의 대다수와는 조금 달라도 그것이 부정되거나 혐오받지 않고 수용받는 것. 두려움 없는 표현. - 자유. 


그것을 편안하고 안전하게, 함께 나누는 것. - 즐거움. 


결국 내가 바란 것은 이것이었다. 그것은 해방감을 느끼겠다며 시끄러운 노래를 듣는 것이 아니요, 예의와 제도에 반하는 발칙한 개김도 아니었고, 남과 그저 다른 생각도 아니었다. 


이것을 타인이 줄 수 있겠는가?


나는 그저 사유와 표현에 자유롭고 싶었다는 것. 그것이 비난받지 않기를 바라며 답답해하고 있었다는 것.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주고, 너무 특이하거나 모나다 하지 않으면서도 관계의 핵심가치를 지킬 줄 아는 사람을 원하던 것이다.


조금씩 조금씩, 관계란 내가 원하는 것을 완벽히 제공해줄 것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의 부침도 어려움도 변수도 많은 이 세상을 함께 나아가줌을 감사히 여기는 것임을 깨닫는다. 자유나 즐거움을 찾으면서도 어느 부분에서는 내 입맛대로 보수적이길 바랐던 것은 아닐까. 사실 내가 원하던 자유와 즐거움의 핵심은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주는 것이었음을 이제사 조금 더 촘촘히 들여다 보는 것이다.


나의 결핍은 스스로 채울만큼의 독립심과 현실감을 가지면서도, 그러나 옆 사람과 서로를 배려하며 더 값진 시간을 보낼 수 있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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