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플로우 Mar 08. 2021

영국 옥스퍼드에서 박사생으로 살아남기

결과로 이야기 할 것, 그리고 이곳의 의사소통 방식.

[일을 잘하는 것은 결과로 이야기 해야한다.]


세상에 너무나 당연한 것인데 내가 아마추어 마인드로 하던 것이 있다면 나의 감정이나 사정, 혹은 과정같은 걸 앞세우는 것이었다. 요즘도 자주 나만의 힘듦, 문득문득 힘든 감정 같은 것에 심취해버리곤 한다.


물론 자기 자신을 돌봐가면서 공부와 일을 하는 건 아주 중요한 일이다. 감정보다 결과로 말하라는 것이 꼭 조직을 위해 자신을 포기하라는 이야기도 아니다. 그저, 자신의 감정을 결과의 이유로 삼는 것이 전문적인 세계에서 요구도 되지 않을 뿐더러, 자신이 발전하고 주변에 인정을 받는데에 별로 도움이 안된다는 것이다. 다양한 사람이 살고 있는 이 세상에서 어쨋거나저쨋거나 일하는 관계에서 중요한 것은 결과인 것이다. 그게 '일하는 세계'의 질서인 것 같다.



어떻게 생각해보면 우리 세대들은, 혹은 내 다음(?) 세대들은 정신건강에 대해 사회적으로, 개인적으로, 문화적으로 아주 우호적인 환경에서 자랐다. 나의 정신건강과 불행하지 않은 감정이 인생에 제일 중요한 세대들일 수 있다. 때로는 나의 감정이나 개인적인 사정 같은 것이 행동의 중요한 이유가 될 수 있다고 믿기도 한다. 나도 그렇게 은연중에 생각하고 행동했던 것도 사실이다.





[박사생으로서 일을 잘 한다는 것은]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성과를 가지고 이야기하는 것임을 배우고 있는 요즘이다. 감정은 행동과 결과의 부재 앞에서 변명이 되어버린다. 또한 결과물이 있어야만 그것에 토대해서 나의 능력에도, 내가 만들고자 하는 것에도 발전이 이루어진다. 일을 하는 곳에서 과정과 감정에 대한 의사소통은 더 나은 생산을 위해서가 아니라면 잘 이뤄지지가 않는다. 잘 하고 싶고 인정받고 싶다면 프로답게 일을 해내야하는 것이다.


박사생으로서 나의 성과는 내 연구 컨텐츠를 가져가고 발전시키는 것이다. 나의 이득을 위해 일을 하고, 성과를 내는 목표가 나 자신의 이익이기에 조금 헷갈리는 구간은 있다. 그러나 동시에 모든 성과물은 돈을 받기 위해 평가를 받기 위함이 아니라 내 이익이 된다.


그러나 이곳에서도 '일을 하는 곳'의 문화는 만연하다. 연구내용이 모든 대화의 관심사이지, 사람의 성격, 성향, 감정, 사정 그런 것이 이곳의 관심사가 전혀 아니다. 내가 어떤 과정에서 어떤 감정을 가지고 하루를 사는지는 주제가 아닌 것이다.


특히 영국에서 박사생은 지도교수 슬하에서 공부와 전문분야를 '배우는' 입장은 전혀 아니다. 적어도 내가 공부하고 있는 이곳 옥스퍼드에서는 박사생에게 기대되는 바가 그런 것이 전혀 아니다. 아마도 박사생 뿐만 아니라 연구석사, 코스석사, 학부생까지 그럴 것이다. 리소스는 충분히 제공하되 본인이 공부하고 본인이 작성한 것을 토대로해서 배움을 받을 수 있다. 이곳에서 그 배움의 형태란 튜토리얼, 토론, 발표 형식이 제일 많다. 강의는 미리 배포된 리딩리스트를 읽었으을 전제로 이루어진다.


때때로 학생이기 때문에 나 역시 지도교수님의 '가르침' 혹은 '이끌어주기'를 기대하기도 한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 수록 그게 아님을 깨닫는다. 내가 지도교수님과 상의할 수 있는 것은 명확하게 내가 만든 콘텐츠와 그것의 발전방향과 내용에 대한 것 뿐이다.


내 지도교수님은 박사생이 모두 아웃풋이 좋은 분인데도, 또한 내 논문을 아주 주의깊게 읽으셔서 의도를 파악해오신 후 향후 발전 내용에 대한 코멘트를 한시간 반 가량 홀로 렉쳐링을 하실만큼 잘 봐주심에도 불구하고, 논문 내용 외로는 수업을 무엇을 듣는지 물으시는 게 다다. 


내가 공부하는 곳에서 이런 것이 더욱 가능한 이유는, 학생이 마주칠 수 있는 모든 방면에 배정된 전문가가 따로 있다. 예를 들면 학생생활 전반은 학과가 아닌 컬리지가 전담하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수퍼바이저가 아닌 컬리지 어드바이저가, 모든 방면의 어려움을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이 그의 의무로 배정되는 사람이다. 생활 관련 장학금이나 생활 속 어려움 등 모든 게 담당하는 부서가 컬리지에 따로 있다. 도서관 시스템과 사서의 서포트도 아주 훌륭하고 말이다.




[일 잘하는 사람들의 발전적인 의사소통 방식]


이곳에서 윗사람들은 배움과 그 과정에서의 깨달음 및 감정같은 것에 대해 자기가 돌봐야할 의무가 없다고 느끼는 것 같다. 여기에서 '의무'로 명시되어있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에 대한 선은 명확하다. 이곳의 사람들이 꼭 차가워서라기보다는 각자가 주어진 자기 일을 최고로 한다- 이것만이 정해진 룰이다. 그런점에서 학생이지만 일을 하는 곳이라는 느낌을 많이 받곤 한다. 그리고 이런 문화엔 단점도 있겠지만 분명한 장점이 존재한다.


특히 리서치 그룹 같은 곳에서 연구를 이야기할 때는 정말 활발하다. 오히려 일에 기반해서 코멘트를 개인적인 관계로 여기지 않기 때문에 더 활발한 코멘트를 주고 받는다. 또한 코멘트를 주는 것이 오히려 자신의 일이 되기 때문에 더욱 참여가 활발하다. 그리고 이런 활동의 목표는 더 나은 연구를 만드는 것이기 때문에 서로 코멘트를 통해 가치를 더하는 것이 또한 말과 수용의 목표가 된다.


또한 수평적인 관계에서의 의견나눔 역시 약간 다른 성격을 띈다. 친구들과 이런 저런 연구 진행에서의 어려움, 그 과정에서 겪는 감정적 현실적 어려움을 토로하기도 한다. 그리고 그 의사소통 역시 아주 신속하고 활발하게 이루어진다.


또한, 대화의 주 내용이 감정이어도 그것이 생긴 원인과 해결방안 같은 것을 제시해준다. 이곳 대화의 특징은 이렇다. 첫번째로는 응 그런 감정을 너의 ~한 상황에서 충분히 느낄 수 있어(감정 인정과 상황에 대한 이해를 나타내서 관심을 표현). 그후로는 자신의 경험을 나누거나, 자신이 아는 한에서 상대가 시도해봄직한 것들을 추천하거나, 혹은 자신이 아는 정보를 전달한다.


성공과 성취에 대해 아주 높은 기준을 가지고, 효율성에 관심이 큰 사람들이다. 야망도 크고 말이다. 그만큼 더 나은 방식으로 해결하는 것도 항상 염두에 두고 그것이 관심의 표현이 되기도 한다.




[기대 내용 바꾸기, 그리고 잘 하기.]


공부가 힘드니까 무의식적으로 교수님께 공부방식이던, 생활전반이던 뭔가를 해결해달라고 의지하고 싶었다. 그런데 그런 것 없이도 너무나 멋지게 연구를 해나가는 교수님 및 학생들에게 많이 배운 것 같다. 감정을 토로하기보다 오히려 각종 세미나와 수퍼비전의 기회를 잘 살려 내 공부를 진척시키는 게 더 멋지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 역시 찌질하지만 꾸준하게 공부를 해나가고 있다. 이제 내 워드파일을 업뎃해서 보내고 이곳의 집단지성과 아주 촘촘하고 짙게 짜여진 네트워크 교류를 이용해보려고 한다. 내 일상에서는 꾸준히 이런저런 힘듦, 사정, 감정이 올라올 것이고, 그걸 누군가에게 토로함으로써 해소하거나, 혹은 누군가 나를 '가르쳐주기'를 바라는 유혹이 이어질 것이다. 그렇지만, 결국 해결책을 생각하고, 찾고 실행하고, 답을 찾는 것은 나다.


일은 성과를 가져가는 방식으로 잘 해내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