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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플로우 Mar 15. 2021

세속에서 나를 지키는 것은 나다.

내가 느끼는 것이 내 삶이 된다.

내가 싫어하는 것들에 대한 생각, 나아가 화가 나고마는 날이면 어김없이 내 마음이 혼란스럽다. 내가 싫어한다는 이들도, 그리고 그들을 싫어하는 내 마음에서도 불행이 가득하다. 그러나 세상에서, 세속에서 이러한 마음으로부터 자신을 지키는 것은 나 자신이다.


세상의 이상형과 부합하지 않아서 마음이 괴로운 경우가  많다. 예뻐야, 부자여야, 능력이 있어야, 혹은 성숙하기까지 해야할  같다. 저들을 싫어하는 마음도, 또한 내가 싫어한다는 이들도, 자기 마음  이상형에 뭔가를 끼워맞추다 마음이 불행해진다.


하지만 세상에는 사람이 참 다양하다. 우리가 알지 못하는 사람들의 삶이 너무나 많다.


언젠가 집에 누워 농어촌 어르신들의 삶을 보면서 아 우리네 삶이 이렇게나 다양하구나 생각한 적이 있다. 도시에서 나고 자란 나는 자연스레 공부를 하게 되고, 공부를 하다가 연구에 대한 애정을 발견하고 키워나갔다. 하지만 어느 삶은 바닷가 옆에서 나 물고기를 잡는 일에 평생을 다 바친다.


어떤 사람들은 세상 사람들이 모두 이쁘고 멋진 사람들만 좋아하는 것 같아서 성형을 하고, 건강을 챙기는 것 이상으로 다이어트를 하기도 한다. 그렇지만 세상엔 외모와 상관없이 마음씨가 참 이쁘고 착한 사람들이 있고, 그런 사람들을 그 어떤 다른 종류의 사람보다 사랑하는 사람들이 또한 너무나 많이 있다.


나 또한 자꾸 잊곤 한다. 어떤 기준에 충족하지 못하면 내 삶은 가치가 없는 것인가, 자꾸만 부족해보이는 것 같다. 뭔가 부족해보이는 다른 사람을 왜 마음이 아름답고 굳쎄지 못하냐며 미워하곤 한다. 사실 마음이 아름답고 굳쎄고 싶은 것은 나 자신인데 말이다.




타인에게 사랑을 받는 것은 우리에게 필요하다. 그래서 자꾸만 그런 비교와 평가를 하게 된다. 그러나 사랑을 받는 대상도 방식도 꼭 하나만은 아니다.


마음씨가 이쁘고 착한 사람들과 함께 하면 내 삶의 매 순간이 행복으로 가득하다. 비록 타인의 눈에 - 다른 사람들이 다 좋아한다는 딱 하나의 형태의 아름다움을 쫒는 이에게, 혹은 어떤 대단한 능력적인 과시를 원하는 이에게 부족해보일진 모른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더 그렇다. 자본주의 사회는 결핍을 만들어내고, 그 결핍을 채울 수 있다는 이상을 팔기 때문이다.


하지만 진정으로 배려받는 그 순간 내 삶은 행복하고, 주변 사람을 배려하고 감사받는 그 순간 내 삶은 또한 기쁘다. 그런 순간으로 채워진 삶이 진정으로 행복으로 충만한 삶이다.


그래서 언제나 경계해야 한다. 내가 어느새 나를 어떤 하나의 기준만으로 평가하고 있지 않은지. 조건적인 사랑을 들이밀고 있지는 않은지. 나를 미워하는 마음으로 타인을 미워하고 있진 않은 것인지. 내가 원하는 것을 받지 못해 미워하는 것이 아닌지..


그리고 항상 기억해야한다. 내 삶은 내가 느끼는 것이다. 내가 느낀 그 감정, 내가 한 그 행위로 채워지는 것이 나의 시간이고 삶인 것이다. 그 시간을 과연 나는 비교와 평가, 실망과 미움으로 가득채울 것인가 아니면 따뜻하고 애틋한 눈길로 다양한 삶에 대한 사랑으로 채울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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