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도

by 주용현

예배 시에 목사의 축도를 들을 때마다 느끼는 것이 있다. 축도의 내용 중에 설교한 내용의 주제를 삽입하여 "...를 하기로 다짐하는", 혹은 "...의 말씀을 따라 살기로 다짐하는 ㅇㅇㅇ에게 함께 하시기를..."라고 하는데, 이런 조건부 축도에 대해 생각해 본다.


축도는 예배에 참여하여 하나님의 복된 말씀 선포를 들은, 이미 그러한 복을 입은 하나님의 백성들을 향하여, 선포된 말씀에 근거하여 이미 받은 복을 확증하며, 반복하여 축복하는 내용이다. 그러므로 어떤 조건부적인 축복의 선포는 아쉬움이 있는 것이다.


축도를 기도로 보느냐 선포로 보느냐는 그 차이가 크다. 축도는 이미 선포한 말씀에 근거하여 그 말씀이 주는 은혜를 확증하는 선포이기에 말씀을 선포한 설교자가 축도를 하는 것이 좋다. 어떤 예식에서 인사치레로, 소위 나눠먹기 식으로, 어른 대접한다는 명분으로, 여러 목사 중에 한 사람을 택해서 하는 것은 별로 좋게 보이지 않는다.


축도의 말미에 "... 찌어다" 하는 것과 "축원하옵나이다"로 하는 것에 대하여.


"... 찌어다"로 하는 것은 선포적 의미일 뿐이지, 결코 축도자의 권위 문제가 아니다. 이 문제로 어떤 교단에서는 총회에 안건이 상정되어 "축원하옵나이다"로 결의된 바가 있다. 이런 논의의 배경에 교회에서의 헤게모니 싸움이 깔려 있었다는 것은 아주 씁쓸한 뒷맛을 남기는 것이다. 소위 목회(목사) 장로와 치리 장로 사이의 헤게모니 싸움이란 것이다. 목사가 축도 시에 "... 찌어다"라고 한다 해서 그게 목사의 권위를 내세우는 것으로 보는 것도 우스꽝스럽거니와 축도의 신학적 의미의 조명도 부족한 소치라 보여서 별로 기분 좋지만은 않다.


민 6:22-27에서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하여 아론과 그의 아들들에게 주신 말씀이다. 즉 제사장의 직무와 관련해서 이스라엘 백성을 향하여 축복하라고 이르신 말씀이다. 축도의 근간으로 말해지는 성구이다.


신약에 사도들의 서신서들에서의 축도는 대부분 삼위의 이름으로, 즉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주어진다. 성부 하나님의 사랑하심과 성자 예수님의 은혜와 성령 하나님의 교통하심으로 축복한다.


성령님을 언급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이 교통하심이다. 성령께서 교통하게 하시는 것만큼 중요한 것이 없는데, 대체로 축도를 듣다 보면 이 성령의 교통하심은 빼먹고 다른 사항들만 열거하는 경우를 많이 본다. 치유하시고 능력 주시고 등등...


일반적으로 성도가 하는 축복의 기도와 말씀을 수종 드는 직분자로서의 목회자의 축도는 구별된 의미를 갖는다. 특별히 목회자의 축도는 예배 중에 선포된 말씀에 이어지는 순서로 이루어진다. 즉, 선포된 말씀을 받은 회중들을 향하여 이미 선포된 말씀의 은혜를 확증하고 인치는 의미로 축도가 주어진다.


그런 의미에서 축도는 말씀을 선포한 설교자가 하는 것이 합당하다. 여러 목사들이 함께 참여하는 예식을 겸한 예배에서 설교자 따로 축도자 따로, 나눠먹기 식으로 배분하는 것은 그렇게 좋아 보이지 않는다. 이 축도에는 축도를 받는 회중과 함께 그 축도를 담당하는 목회자 자신도 포함되며 손을 들어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들을 향하여 강복해 주시기를 선포한다.


축도의 말미에 기도의 형식으로 "~해 주시기를 간절히 축원하옵나이다"라고 하는 예장 통합 측 교단의 예식 법과, "~있을지어다!"로 선포하는 예장 합동 측의 예식 법이 있다.


앞의 설명대로 이해한다면 "~있을지어다!"로 하는 것이 더 타당하게 여겨진다. 축도는 기도라기보다는 이미 선포된 말씀을 받은 회중들이 받은 은혜에 대하여 하나님께서 확증하시고 복 주심을 선포하는 형태라고 보는 것이다.


세례나 성찬, 즉 성례의 집행을 목회자로 한정 짓는 까닭은 바른 성례의 시행을 위해서이다. 성례는 말씀의 선포인 설교와 별도로 시행하지 않는다. 말씀과 함께 시행되어져야 하기에 말씀선포의 직무자로 세움 받은 목사로 성례를 시행하도록 한정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부가적으로 많은 목사들이 축도 시에 축도의 대상자를 한정적으로 해서 선포하는 것 또한 좋지 않다. 예를 들어서 설교의 내용을 언급하면서, "~그렇게 살기로 다짐하는..."이라든가, 자기 교회의 구성원만을 생각해서 "XX교회의 성도들에게..."라고 한정지어서 한다든가, 그런 경우에 만일 회중 가운데 그렇게 결단하지 못한 사람들은 그 축도에서 제외될 수 있고, 또 다른 교회의 교인이 그 교회에 출석한 경우에는 그 축도에서 제외될 수도 있다. 그러므로 당시 예배에 참여하여 말씀의 선포를 받은 회중 모두에게, "여기 모인 모든 무리들 위에..." 이렇게 하는 것이 무난하다.


Coram De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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