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우려 하면 할수록
더욱 빈한하여
헐거워진 가슴에
시린 바람만 윙윙거리고
오롯이 나를 세우려 그리도 분주하였지만
도무지 '나'란 것이 있기나 한 것인지
들녘에 부는 바람은 따사롭기만 한데
내 가슴엔 아직 북풍한설이 휘돌아
비워내야 한다고
모다 비워내고 나서야
비로소 당신으로 채워질 것인즉
그제서야 내 빈한함을 알아
부끄러움에 고개 숙일 터
반백의 세월을 지나왔건만
아직 나는 부끄러움을 알지 못해
다 비워내지 못한 빈한함으로
봄날 훈풍에도 가슴을 쓸어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