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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자화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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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용현 Apr 21. 2022

자화상自畵像

소년에게는 뒤를 돌아볼 일보다는

앞을 향해 나아갈 일이 더 많다.

험산준령이 가로 놓였어도

걷고 뛰다 돌부리에 걸려 넘어져도

멈춰 서거나 주저앉는 것보다는 

주저함 없이 앞을 향해 나아간다.

젊음은 좋은 것이다.


백발의 노년에게는 앞으로 나아갈 일보다는

뒤를 돌아볼 일이 더 많다.

뒤돌아보는 눈에 회한의 눈물이 고이고

입술에는 아쉬움의 탄식이 흘러나온다.     


바로잡아야 할 것도 많고

메워야 할 웅덩이도 많으며

계산해야 할 것들도 많다.

어그러진 비탈길에 다시 올라

헝클어진 퍼즐들을 짜깁기하느라

주름진 얼굴에 비지땀을 흘리지만

그를 알아주는 세상은 별로 없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무엇을

바로잡아야 할지 엄두가 나지 않아

망설이고 또 망설이다

어디서 생긴 용기인지 모르나

불끈 쥔 손으로 나선 길

여기저기 헤진 웅덩이

찢긴 상흔 가득하고

음습한 응달에 흩어진 돌멩이들 소리 지른다.     


앞만 보고 달려왔던 긴긴 세월 내내

질렀을 소리들이지만

언제 들어본 적 없었던 

생경한 소리들이

커다란 함성으로

골목마다 울려 퍼진다.

귀를 막아도 

고개를 숙여도

사그라들지 않는 소리들이

가슴을 헤집고 들어온다.     


부끄러움과 자학의 일그러진 얼굴로

자책과 질책을 할 겨를도 없이

상흔들을 보듬느라 여념이 없는데

해는 뉘엿뉘엿 서산을 넘어가고

마음은 하릴없이 바쁘다.    

 

소년은 앞을 향해 발걸음이 바쁜데

백발의 노년은 뒤돌아서서

비뚤어진 길을 다듬느라 여념이 없다.

긴 그림자를 드리운 채

남은 길을 재촉하는 해님의 시선이

부담스럽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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