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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똥뫼 Feb 12. 2018

궁지에 몰리면 무더위에도 마음이 시린법이다



 ‘어쩌다 보니 나이가 훅 들어 있더라’는 말처럼 세상의 흐름에 발맞춰 살다 어느날 내 자신을 뒤돌아 보니 마흔을 훌쩍 넘어 있었다. 사람은 흔들려야  비로소 자신을 돌아보게 되는 것 같다.

 엊그제 이십대의 청년은 염색을 하지 않고서는 도저히 나이를 감출 수 없는 중년이 되어 겨울철 한파만큼이나 차가운 세상 한복판에서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잘 닦여진 길을 걷다 갑자기 이정표도 없는 여러 갈래 비포장 도로를 만나 어느 쪽으로 가야할지 혼란스러워 하는 심정이랄까. 나이를 먹었다고 흔들림의 강도가 약한 건 아니었다. 어렸을 때와 비교해 맷집이 생겨 덜 흔들렸을 뿐이지 오히려 겁은 더 났다.

 나이가 들면 들수록  세상에 대한 두려움은 늘어나는 것인가. 나이 때문은 아닐 것이다.  삶이 그리 만만치 않다는 경험이 쌓이고  쌓여서 두려움이 커졌을 것이다.


나는 어렸을 때 생각했다. 내가 아버지의 나이쯤 되면 세상에 대한 생각도 주제별로 잘 편철된 사무실 책꽂이의 서류철처럼 정리되어 있고, 새로운 상황에 대한 대처도 능숙해지리라. 하지만 위기에 직면하니 막연했던 생각은 송두리째 흔들렸다.


 중년이 짊어져야 할 삶의 무게는 생각보다 무거웠다. 물론 적게 잡아도 대여섯 명이 넘는 가족을 부양했던 아버지 세대의 중년에 비하면 지금 중년의 삶은 거저일 수도 있다.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한켠에서 밀려드는 두려움을 떨쳐내지는 못했다.  지금까지 무탈하게 잘 살아왔다는 생각이  더 두려움을 키웠을 수도 있다.


마흔다섯 해를 살았는데도 불구하고 나는 세상을 살아가는 노련미가 전혀 없었다. 아니 기성세대에 물들어 가는 걸 두려워했는지도 모른다.

4년간의 직장생활과 14년간의 사업 이후 다시 취업전선에 나온 작년 이맘 때 세상은 지금까지 내가 알던 세상과는 전혀 다른 곳이었다.

새로운 길을 가려는 사람에게 세상은 그리 쉽사리 길을 터주지 않았다.

젊은이에게도 야박한 세상인데 중년에게 야박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취업포털사이트에 이력서를 등록하고 아흔아홉 번 지원을 했는데 면접을 보자는 회사는 단 두 곳 뿐이었다. 그 두 곳도 면접에서 나이를 언급하며 곤란해 했다. 백 번째 지원은 포기했다. 자존심 때문이 아니었다. 현실을 인정했다.


꽤 쓸만했던 영어 점수와 몇몇 자격증도 과거의 빛바랜 명패에 불과했다. 나이 앞에서는 속절없이 스러지는 무용지물이었다.


궁지에 몰리니 한여름에도 마음이 시렸다.


나는 선택에 직면했다. 아이템을 바꿔 사업을 계속할 것인지 아니면 나이를 묻지 않고 채용하는 직업에 도전하는 것이었다. 취업을 알아보는 순간 사업에 대한 생각은 접어야 한다고 판단했다. 공무원학원에 다닐 계획을 세웠다.

하나의 계획을 세우고 나니 또 다른 선택에 직면했다.

어느 직렬의 공무원 시험에 도전하느냐가 문제였다. 마흔여섯의 나이와 공부에 대한 긴 공백기를 생각할 때 시험과목 수가 적은 직렬을 선택하는 것이 현명해 보였지만 채용 인원이 너무 적어서 고민을 했다. 그래도 어쩔수 없었다. 여건상 다섯 과목을 공부하는 것은 무리라고 판단했다. 현실이 녹녹하지 않다는 사실은 미디어를 통해 수도 없이 보고 들었기 때문이다.


인터넷을 검색하니 시험과목이 적은 직렬로 우편계리직, 조리직, 운전직, 시설관리직 등 네 종류가 눈에 띄었다. 나는 운전을 싫어하는 성격이라 일단 운전직은 제외했다. 나머지 세 직렬의 시험 중 빨리 시행하는 시험부터 차례대로 볼 생각이었다. 물론 겹치지 않은 범위내에서 행정직도 염두에 두었다.


 세상 일은 생각처럼 잘 되지도 않지만 생각지도 않았던 일이 일어나기도 한다.


 최종 결정을 하고 세부계획을 세웠지만 매물로 내놓은 가게가 반 년이 넘도록 팔리지 않았다.

마음은 똥 마려운 계집 국거리 썰 듯 조급하기만 했다.

 영업을 계속하며 틈틈이 공부하는 것도 힘들었지만 마음 떠난 가게를 부여잡고 있는 것은 더더욱 힘들었다.

가게와 긴 시간 동고동락했으니 정 때문이라도 좋은 감정을 가져야 할 텐데 그렇지 못했다. 무생물과의 이별이라도 이별은 때가 중요하다는 생각을 했다.


사업이 정리되면 인터넷 강의를 듣든지 아니면 학원을 다닐 생각이었다. 그래서 가게가 정리될 때까지 워밍업 삼아 공부하는 습관을 길러볼 생각이었다. 근처 서점에서 기본서 세 권만 샀다.


공무원 시험에 합격할 때까지 가게는 팔리지 않았고 기본서만 반복해서 봤으니 내게 시험 운은 있다고 해야 할 것 같다.


 그렇게 공무원 시험에 합격했고 연수 일정이 정해지면서 서둘러 구청과 세무서에 폐업신고를 했다. 가게는 팔리지 않아 공실로 비워 두기로 했다. 연수가 끝나고 근무지로 발령을 받고 난 후에야 겨우 정리를 했다.


 사실 공무원 시험에 합격했을 때보다는 가게가 팔렸을 때 기분이 훨씬 더 좋았다. 마음 한구석에 얹혔던 무언가가 뻥 뚫리는 느낌이었다. 그렇게 난 공무원 생활을 시작했다.

 기댈 곳 없이 모든 걸 홀로 판단하여 이끌어 나가는 오너가 힘들지, 아니면 찬바람 막아줄 울타리는 있지만 그 안에서 적응해 나가야 하는 나이배기 신규 직원 생활이 힘들지 지금 알 수는 없다. 그냥 배운다는 자세로 묵묵히 걸어 봐야겠다. 이 길도 새로운 길이니 기본부터 익혀야 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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