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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희수 Oct 03. 2019

연인과 같이 보세요.

넷플릭스 ‘이지(Easy)’를 봤습니다.

당신의 연인과 안녕하신가요?


너도 맞고 나도 맞는 포스트모더니즘 시대에서 다른 사람의 가치관을 점검해 본다는 건 심한 오지랖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그냥 넘어갈 수 없는 존재들이 있으니, 매일을 함께하고 아마도 평생을 그리게 될 파트너, 연인이 그렇다.  


가치관은 가정환경으로 물려받거나, 정규 교육과정 중에 심어졌거나, 심지어 지나가다 본 드라마 대사 하나에서도 영향을 받았을 수 있다. ‘내가 선택했어요’라고 하기 어려울 정도다. 게다가 나에게 가치관이란 것이 있다는 걸 자각하기에 우리는 넘나 바쁘고 빡센 시대를 살고 있다. 그럼에도 모른척하고 살 수 없다. 우리는 그 위에서 하루에도 수천번 많은 것들을 결정하며 살아가기에. 그러니 서로 다른 삶을 살던 두 사람이 만났다면, 그리고 그 사람과 오래오래 같이 살고 싶어 졌다면 이걸 함께 점검해봐야 하는 게 상식이 아닐까.



‘방 안에 코끼리’라는 외국에서 쓰는 관용어가 있다.


 ‘난 못 봤는데’라는 핑계를 대기도 어려운, 큰 코끼리만 한 문제가 있지만 서로 피하고 싶어서 모른척하는 걸 그렇게 표현한다. 이지는 커플, 섹스, 인간 관계 속에 생기는 코끼리에 대한 이야기다. 한 편을 보고 나면 벙쪄지는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현실의 문제들은 동화처럼 상대방이 일방적인 악당이기 때문에 일어나지 않는다. 입장 차이에서 발생하는, 옳다 그르다를 가르기 어려운 문제들이 더 많이 존재한다. 그래서일까. 나는 내 친구들에게 내가 본 재미있는 걸 적극적으로 추천하는 사람이고, 이지는 내가 본 넷플릭스 드라마 중 단연 수작이지만, 쉽게 ‘재밌어 한번 봐봐’라고 말하기 어려웠다.


그렇게 이지를 홀로 조용히 정주행 중, 이지를 남자친구와 함께 보고 싶단 생각이 스쳤다. 내 남자친구는 나에 비해 상대적으로 보수적인 사람이다. 그럼에도 그와 함께 보고 싶다고 생각한 건, 모든 커플이 겪는 문제는 아니겠지만 이지 속 인물들이 겪는 문제에서 너와 나는 어떤 선택을 내릴지 이야기해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완전한 사랑의 힘으로 이겨낼 거란 낙관으로 해결되기에는 연인, 사람 사이에서 일어나는 문제는 복잡하고 또 답이 없기에 그의 생각을 확인해보고 싶었다.



당신도 쉽게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


이지에서 다루고 있는 주제들은 지극히 일상적이다. 동시에 일상적인 대화에서 꺼내긴 어려운 주제들이다. 특히 보수적인 사람이 아니더라도 나의 연인에게 “너와 내가 성생활이 시들해지면 내 친구와 쓰리썸에 도전할 수 있겠니?”라는 질문은 꺼내기도 어려울 것이다. 나는 이지의 한 에피소드를 보며 결혼 후 닥칠 섹스리스 상황을 상상하게 됐다. ‘나라면 어떻게 할까? 우리라면 어떻게 했을까?’하고 말이다. (관련 에피소드는 시즌1 육화입니다. 넷플릭스에서 올랜도 블룸의 적나라한 베드신을 보게 될 줄이야. 우와우:))

여전히 멋지시네요 레골라스


이지는 옴니버스 형태로 한 화에서 이야기가 완결된다. 각 화는 각자 다른 인물, 커플들의 이야기로 진행된다. 동시대를 살고 있는 주인공들의 이야기는 나의 섹스, 파트너, 인간관계에 대해 돌아보게 한다. 페미니즘, 채식주의, 동성애, 오픈 메리지, sns 등 최근 이슈들을 다루고 있어 더 현실감 있다.  

좋아요 1000개 눌러주고 싶은 대사였다



내가 제일 흥미롭게 본 인물들은 시즌1화 1회를 연 앤디와 카일 부부다.


이 에피소드는 한 논문에서 시작한다. 앤디와 카일은 파티에 참석한다. 혼자 술을 마시던 카일에게 지나가던 친구가 최근에 본 흥미로운 논문이라며 이야기를 꺼낸다. 부부의 경제 수준에서 부인의 소득이 남편보다 많을 때 성생활이 줄어든다는 이야기다. 즉 구시대적인 성역할에서 벗어난 커플은 섹스를 덜 한다는 이야기다. 앤디와 카일은 물론 주변 사람들 모두 이 이야기를 꺼낸 남자의 성차별적이고 전근대적 발언에 맹비난을 퍼붓는다.

이때만 해도 같이 극혐하던 둘

이 논문의 여파는 파티가 끝난 이후에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실제로 앤디는 자기 사업을 하고 있는 집의 가장이고 카일은 전업주부다. 그들의 성생활이 실제로 만족스럽지 않던 차였다. 마치 저주처럼 그 논문은 부부를 떠나지 않고 점점 그들의 성생활을 압박하기 시작한다. 말미에 어떻게든 섹스를 즐기기 위해 노력하는 그들의 모습은 조금 처연하다. 결국 섹스를 하지만 누구도 만족스럽지 않다. 권태기일까 아니면 정말 논문대로 성역할의 문제였던 걸까.


권태로움의 상징 ‘각자 스마트폰하기’ 중인 카일과 앤디


살 붙이고 사는 사람도 결국은 남이라고 어른들은 말씀하셨다. 우리가 가진 생각과 감정의 힘은 특정한 상황을 마주쳤을 때 밖으로 드러난다. 알만큼 안다고 여겼던 사람에게도 내가 알지 못하는 영역이 존재한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은 그 무지에서 발생한다. 앤디와 카일은 고등학교 때부터 커플이었다. 20년의 시간을 함께한 사이임에도 탁 터놓고 이야기하며 해결할 수 없는 문제가 존재한다. 커플이라면 한 번씩은 경험한 이 아득한 깊이의 골짜기. 이 에피소드를 보며 오래된 커플 사이에 놓인 골짜기의 깊이를 엿볼 수 있었다.



추가로... 나는 넷플릭스의 제목 작명과 썸네일 선택이 개판이라고 생각한다. 이지의 제목을 차라리 건들지 않은 건 참 고마운 일이지만, 썸네일은 정말 이해 불가다. 섹스에 대해 다루고 있는 드라마는 맞지만, 그렇다고 치켜든 두 다리 사이에 걸려있는 팬티 그림이라니... 난 처음에 썸네일만 보고 저급한 19금 코미디쯤 될 줄 알고 이지를 패스했었다. 어디선가 입소문을 듣지 않았다면 아마 그대로 패스했을 거다. 넷플릭스에선 제목과 썸네일 만으로 평가하지 말아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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