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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기억하는 순간부터 우리 집에는 늘 개가 있었다
집을 지키는 용도로 기르기 시작한 개였지만 늘 있었다
많게는 네 마리까지 길렀던 기억이 있다
어느 해 개가 새끼를 낳을 때면 아빠가 뒷바라지를 다 하셨고
꼬물거리며 눈도 못 뜬 강아지가 우리집 안방 아랫목을 차지하기도 했다
그러나 나는 손을 대지 못했다
강아지에게 내 손가락이 닿을 때의 물컹거림이 견딜 수가 없었던 때문인 것 같다
아니 어쩌면 개가 혀로 핥는 그 느낌이 싫었기 때문일 수도 있다
서울로 대학진학을 하고 이따금 집엘 가면 대문 저 멀리서부터 우리 집 개가 컹컹 짖는다
내 발자국을 어쩜 그리 정확히 아는지
대문이 열리고 들어서면 달려들듯이 반갑게 꼬리치며 짖었다
그런 개를 단 한번도 손으로 쓰다듬어주질 못했다
대신 발로 쓰다듬어줬다
손을 댈 수 없는데 너무나 반가워하니 나도 그 마음에 뭔가 답례를 하고 싶었고
그래서 했던 세레모니가 고작 발이었다
지금 생각하니 너무 미안했다
싫어하는 감촉 때문에, 그 싫어하는 마음을 넘기지 못하고
그렇게 했던 내 행동을 지금 여기서 참회한다...
충직한 동물로 개를 묘사하곤 한다
여전히 개를 잘 모른다
오늘 김포시에 있는 한 중학교에 강의를 가면서
시간을 착각해서
무려 한 시간이나 일찍 도착했다
이런, 세상에
시간을 착각해서 늦을 것만 같아
집에서 전철역을 자전거로 전속력을 다해 달려서는
전철역 계단을 오르는데 다리가 후들거려..
땀은 또 얼마나 흘렸는지..
그런데 전철을 타고 시간을 보니
한 시간을 착각했던....
이런 일이 처음이 아닌지라 또 병이 도지는구나.. 그래그래 난 정상인 게야
이러고 갑자기 여유로워져서는
일찍 도착한 김에 한 카페에 들어가서
그림을 그렸다
개를 그리고 싶었다, 이미 어제 이 생각을 했었다
어찌보면 요새는 그냥 그림을 그리기 위해 아침에 눈을 뜨는 듯한..
그렇다고 무슨 대작을 그리는 것도 아니지만
삶에 큰 에너지를 준다, 그림을 그린다는 이 취미가!
개 털을 직접 만져보지 못했지만
이제.털을 그려봤다
한발 가까이 간 거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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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 마치고나니 6시가 훌쩍 넘었다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신청해서 하교 시간도 훌쩍 넘겨 강의를 들으러 모였는데
자발성은 얼마나 사람을 진지하게 만드는지
집중해서 너무나 집중해서 잘 들어줬고
질문도 좋았고
싸인하러 온 청소년들은 심져 책 표지에 싸인을 해달라고...ㅎㅎㅎ
발랄한 모습이 참 좋았다
그 학교 출신 고등학교 1학년이 한 명 같이 들었다
끝나고 내게 질문을 했다
교육과정에 기후, 환경 교육이 스며들 수 있을지 궁리하고 정책제안도 하려 한다고
시민들을 동지로 삼으라 조언했다
청소년은 미래 세대가 아닌 현재적 시민의 일원이라고
그리고 더 먼 미래까지 살아야할 주체라고
그러니 그 미래를 날려먹지 못하다록 시민들에게 호소하고
함께 행동하자고
***
집 오면서 페이스북을 열었다가 너무나 슬픈 사진을 한 장 봤다
어느 둠벙 한 가운데 그물이 깔린 위로
오리 한 마리 다리가 그물에 얽히고 설켜
그 그물을 끊으려 몸부림을 치다가 죽어있는 사체였다...
얼마나 살려 발버둥 쳤으면 그 질긴 그물이 절반은 끊어져있었다......ㅜㅜㅜ
모두가 유한한 생명이지만
고통스럽게 갔을 오리를 생각하니 가슴이 미어졌다
집 오는 내내 마음이 참 불편했다...
오리를 위해 기도했다
집에 와서 어둠이 짙게 내린 창밖에 대고
동고비 박새 소쩍새 까치 까마귀 멧비둘기 오목눈이 붉은머리오목눈이 참새
물까치 노랑턱멧새 그리고 내가 미처 이름 불러주지 못한 많은 숲 속 생명들에게
잘 자라고 밤에 활동하는 소쩍새를 비롯한 새들은 밤새 안녕하자고
인사나눴다...
모든 생명이 다 행복할 수 있었으면
2022.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