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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슴 Jan 18. 2023

사랑을 믿어요

설레고 귀찮은 그런 여행, 코펜하겐 도착

무려 28시간 만에 호텔에 체크인을 했다. 

뜨거운 물로 샤워를 하고, 

아주 천천히 바디 로션을 발랐다. 정성스레 머리를 말리고 

좋아하는 파자마로 갈아입고 향수를 조금 뿌렸다.


사각사각 소리가 날 것 같은 하얀 침구 사이로 들어갔다. 

가만히 누웠다. 적막한 공기가 흐른다. 


밤마다 나를 파고드는 아이가 없다는 사실이 이상했다. 

자다가 앵 – 하고 울까 봐 귀를 세우고 자지 않아도 된다는 게 실감이 안 났다.


지금 한국은 오전 7시가 넘었는데, 애들은 등원준비를 하고 있을까?

남편에게 메시지를 보내고 이윽고 영상통화를 했다. 


“잘 도착했어. 지금은 깜깜한 밤이라 이제 자려고.”

하고는 깜깜한 창문을 보여주었다. 

“엄마!! 여긴 아침이야. 정말 지구 반대편에 있구나. 우와! “

MBTI의 T가 분명하다고 생각하고 있는 첫째가 시차와 덴마크에 대한 궁금증을 쏟아내는 사이, 

둘째가 말한다. 

“엄마가 너무 보고 시프 꺼야.”

제대로 발음도 되지 않고, 현재형과 과거형, 미래형의 구분도 정확하지 않지만,

카메라 가까이 더 가까이 다가와 나를 만지려는 둘째는 F 가 분명하다. 


“응 – 엄마도 후가 너무 보고 싶어!”


눈물이 그렁그렁 해지려는 나와 달리, 

아이 둘은 할 말을 다하고 엄마의 생사를 확인한 것으로 

바로 통화 종료를 눌러 버렸다.


“엄마, 건강해. 바이바이. 안 ~ 녕”


급하게 종료된 핸드폰을 바라보며 생각한다.

질척거리는 건 언제나 내 쪽이다. 

감정에 휘말리는 것도, 생각이 많은 것도, 쓸데없는 고민을 가지는 것도.


워킹맘의 죄책감에, 괴로움 같은 것을 토로하는 것은 

결국 내 마음의 문제일 경우가 많았다. 


우리 아이들처럼 사랑을 믿고 

단순하게 조금 더 행복한 쪽으로 마음을 바꾸자. 

그리고 일단 자자.


오늘은 무척 피곤한 여정이었고, 

밤에 누군가 나를 찾을까 긴장하지 않아도 되니, 


아주 아주 깊은 잠을 자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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