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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상명 Jul 03. 2022

아아, 그 사람은 어디에 갔을까

영화 <헤어질 결심>과, 사랑에 빠진 이야기

* 영화 <헤어질 결심>(Decision To Leave , 2021)의 스포일러가 담겨 있습니다.


이 분절된 세상에서 때때로 연결과 확장을 실감한다. 지인과 나눈 담소가 몇 시간 뒤 본 영화에 접속할 때. 이것은 우연일까, 상상일까. 그날 두 가지 이야기가 꼭 그랬더랬다.


1.

“은밀한 사람을 멀리하게 돼. 표정엔 드러나지 않는, 무언가 감추고 있는 구석이 찰나의 낯빛에서 느껴질 때가 있어. 왠지 나에게 언젠가 해를 끼칠 것 같은 그런 사람 있지. 곁에 있으면 육감이 먼저 눈치를 채.”


스물 중반을 넘기고서 적잖은 인간관계를 겪은 내가 요즘 하는 생각이다. 육감이란 그간의 빅데이터로 점차 정교화된다. 그 말은 그간 타인의 의뭉에 대한 경험이 꽤나 쌓였다는 것이겠지. 가만히 커피를 홀짝이던 그가 공감을 표정 삼아 반박했다.


“그치, 왠지 싸한 사람이 있어. 근데 또 반대로 너무 다 드러내는 이는 호기심이 안 생기지 않아? 궁금하지 않아서 관심 가지 않는 사람도 있잖아.”


“그러네.”


곰곰이 생각해보니 난 늘 어딘가 특이한 사람이 궁금했다. 의식은 멀리하고자 해도 무의식을 끌어당겼다.


위험한 것을 멀리하는 것만이 본능은 아니구나. 


2.

“이별은 치즈처럼 주욱 늘어나서 끊길 듯 끊기지 않는 것을 무처럼 단칼에 잘라야 하는 것이야. 맞아. 쉽지 않지. 쉽지 않아. 근데 그렇게 해야 해.”


역시 내가 새로운 말문을 열었다. 그러고 보니 내 입에서 나오는 이론들은, 누구보다 실패해본 뒤 써 내려 간 보고서를 발표하는 듯했다.


“어떻게 그게 가능해? 7개월 만난 치즈가 2년 동안 늘어나던데.”


역시 반문이 들어왔다. 예상 질문이었다. 준비된 답변을 해야지.


“그냥 죽었다고 생각하면 돼. 다신 볼 수 없는 사람이 됐다고 생각하면, 단절이 아니라 봉인됐다 느껴지더라. 죽은 사람이 되살아날 순 없잖아? 불가능한 걸 가능하게 할 수는 없으니까. ‘잘 살까?’ 이런 잡념이 안 들도록 세뇌하는 거지. 죽었다, 죽었다, 죽었다.”


아 잠깐만, ‘죽였다’가 더 맞을지도?


3.

유월의 짧은 휴가를 보내고 남은 나날의 기대감을 <헤어질 결심>에 몰았다. 이 영화 기다리느라 박찬욱 필모그래피를 복습했으니 준비는 끝났고. 이 영화는 내 올해의 영화가 될 것이라는 확신 속 <아가씨>의 숙희가 결연한 표정으로 “사랑하게 되실 거예요”라며 부추겼다.


영화가 좋았냐고? 지금 주저리주저리 수사 붙여 글 쓰고 있잖아요. 이 소중한 주말에.



4.

최면 같은 사랑. 사랑이라는 최면에 빠지는 일. 당신 곁만 맡으면 취한 듯 잠에 들고, 숨결을 맞추면 영원히 깨고 싶지 않은 것. 꿈결 속에 헤엄치며 당신을 흙 파듯이 캐내어 묻고, 하염없이 타이르고 싶은 것.


서래는 무언갈 숨기고 있다. 위험한 사람이다. 궁금할 만큼 단호하고, 특이할 만큼 꼿꼿하다. 육감이 보챈다. 멀리하라고. 가까이하지 말라고. 멀리할수록 가까워질 사람이라고. 엄청난 인력을 가진 사람.

깊고 짙게 내 주위를 감싸는 안개 속으로 저벅저벅 걸어 들어온 것이 나의 과오라면 과오겠지. 안개 속에 잠긴 이상 도망쳐도 쉬이 벗어날 수 없다. 한 치 앞도 안 보이는 몽롱한 시야 속 몇 발짝 앞엔 무엇이 있을지 호기심은 나의 몫이다. 무의식을 끌어당기는 최면에 빠진 순간이다. 그때부턴 걷잡을 수 없이 파도가 밀려 들어온다. 달이 가까워질수록 파도가 높아지고 이내 만조가 되듯, 내가 삼켜지는 건 한순간이다. 이제 남은 수순은 견고히 쌓은 신념의 모래성이 무너지고 깨어지는 것. 나의 자신과 정신, 나의 자부심이 무참히 스러진다. 


사랑에 ‘빠진다’는 건 불가항력적이고 비가역적이다. 의도할 수도, 거스를 수도 없다. 당신한테 잠기는 데엔 결심이 필요하지 않다. 반면 당신한테 ‘빠져나오는’ 데엔 결심이 필요하다. 내가 죽는다거나, 당신이 죽었다고 믿거나, 당신을 죽였다고 생각하거나.


당신은 나에게 미결 사건이 되고 싶다 했지. 그 말이 꼭 죽고 싶단 말처럼 들렸다. 죽어서 영원토록 사랑하고 싶다고. 단절이 아니라 봉인하고 싶다고. 서래는 사랑의 못된 습성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사람이다. 질곡동 사건의 실마리도 사랑이었다. 죽기보다 싫은 걸 감수하는 것이 사랑이란 사실을 당신은 아마 이해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의 단호함과 꼿꼿함은 사랑해본 적 있는 마음에서 나오는구나.


사랑은 최면에 빠진 듯 은밀한 안개 속을 기어코 걸어가 위험한 파도 속에 잠기는 일이다. 그렇게 나와 당신을 죽음에 가장 가까이 몰고 가 충만한 우리 둘 말곤 아무것도 존재하지도 필요치도 않은 상태가 되는 것이다. 내가 이런저런 그럴듯한 표현을 섞고 솎아도, 사랑은 수사修辭가 필요 없는 미결 사건이다.

그래서 사랑은 차라리 붕괴다, 마침내.


사랑의 파괴적이고 치명적인 속성. 박찬욱이 정의 내린 사랑은 결국 그런 것이었다. <박쥐>, <아가씨>에 이어 <헤어질 결심>까지. ‘복수 3부작’ 이후 그가 써 내려 간 이 세 작품을 감히 ‘사랑 3부작’이라 불러도 될까.


"당신이 나를 사랑한다고 말을 했을 때 당신의 사랑은 끝이 나게 되었고,
당신의 사랑이 끝이 나자 나의 사랑은 시작되었다."



나 홀로 걸어가는 안개만이
자욱한 이 거리
그 언젠가 다정했던
그대의 그림자 하나
생각하면 무엇하나
지나간 추억
그래도 애타게 그리는 마음
아 아
그 사람은 어디에 갔을까
안개 속에 외로이 하염없이
나는 간다

돌아서면 가로막는
낮은 목소리
바람이여 안개를 걷어가 다오
아 아
그 사람은 어디에 갔을까
안개 속에 눈을 떠라
눈물을 감추어라

(안개, 정훈희)

#영화 #헤어질결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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