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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늘물 Jul 17. 2023

낭만도 돈이지

퇴사 후 현실  - 압박 편


제주 일주일 살기, 한 달 살기...


퇴사 후 가장 먼저 하고 싶었던 일이다. 에어비앤비를 검색해 보기 시작했고 한 달이 아니어도 일주일 살기라 하고 싶었다. 수학여행 이후로 발 디뎌본 적이 없는 제주도는 마치 이상향처럼 느껴졌다.


느긋이 일어나 커피 한 잔을 하고 바다를 거닐고 이리저리 정처 없이 구경하다가 일몰을 바다에서 맞이하고.


이 얼마나 낭만적이란 말인가-.


상상만으로도 나는 이미 제주도에 가 있었다. 그리고 조금씩 에어비앤비를 뒤져보기도 하고 가장 싼 비행기값을 위해 출발일과 종료일을 검색해보고 있었다.


이 낭만적인 꿈을 깨준 사람은 한 때 룸메였던 절친이다.


"그런 건 돈 많은 사람들이나 하는 거야. 꿈 깨고 적당히 아껴 쓰면서 쉬어."


단호한 친구의 말에 '그래. 앞으로 어디로 어떻게 돈이 들어갈지 모르는데' 하면서 마음을 접었다.


이제와 생각해 보면 하다못해 명품백(명품에는 관심도 없지만) 하나라도 사두지 않은 것이 못내 후회된다.

이래서 결정이든 책임이든 내가 져야 원망이 생기지 않는 법이다.


많게만 느껴졌던 잔고는 정성스레 차려먹는 매끼니와 함께 빠르게 줄어들어갔다.






예상보다 빠르게 하루에 만 원 이내로 지내야 하는 나날이 닥쳐왔다.



생각보다 비참(?) 하진 않았는데 그것은 현재 단기로 일하고 있는 곳이 일상에 지장 줄 정도로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 곳이기도 하고 한 달의 호구지책을 하는데 무리가 없는 돈을 주기 때문이기도 했다.


무엇보다 마음가짐이 조금 달라졌다. 스트레스받아서 충동적으로 사대던 버릇이 뚝 고쳐졌다.

스트레스를 받지 않으니 돈이 조금 없어도 조금 불편하더라도 생각보다 잘 참아졌다.






아예 힘들지 않다면 그것은 거짓말이다. 참기 힘든 게 딱 두 가지가 있었는데 첫 번째로는 식비와 두 번째로는 여가생활이었다.


워낙 먹는 걸 좋아하는 나는 하루 세끼 외에도 가끔은 특별한 곳에서 식사를 하는 것을 좋아했다. 그런데 퇴사하고 나니 그런 걸 마음대로 할 수 없다는 점이 힘들다.


또 하나는 여가생활이었는데 뮤지컬, 연극, 전시회를 보러 가기 좋아하는데 그중에서도 뮤지컬을 가장 좋아하나 가장 먼저 하지 못하게 된 것이 뮤지컬 관람이었다.


좋은 레스토랑에서의 식사, 뮤지컬 관람 마음만 먹으면 갈 수야 있지만 쉽사리 마음의 여유가 나지 않았다.





그러던 중 잎새의 생일을 맞아 좋아했던 오마카세를 예약해 다녀왔다. 그리고 SNS에 올렸는데 친구로부터 뜻밖의 비난을 받았다.


없는 형편에 그런 곳을 왜 가는 거냐며 오래도록 질타가 이어졌다.


적절한 충고였을 수 있으나 결국엔 둘 사이의 갈등의 골이 깊어지고 내겐 상처가 되었다.


갑론을박을 벌이는 대신 순순히 알겠다고 했지만 마음 한편에서 왠지 모를 억울함과 반감이 드는 것은 사실이었다.


직업과 직장이 없으면 특별한 날 좋은 곳에서 식사를 하는 것도 용납이 안되고 더더군다나 이게 주변인 눈치까지 봐야 할 일이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완전한 백수는 아니지만(현재 단기 아르바이트 중이다) 남들 눈에 한없이 불안정한 생활이 계속되자 재취업에 대한 압박도 심심치 않게 들어왔다. 가까이는 잎새로부터 친구들, 가족까지.


이십 대부터 삼십 대 중반이 되도록 오롯이 일을 안 하고 쉰 적이 몇 개월도 채 되지 않는 나에게 이 정도 휴식도 인정해주지 않는 그들이 머리로는 이해가 가면서도 한편으로는 미웠다.


꼭 그들처럼 살지 않아서 비난을 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주변의 압박이 계속되자 퇴사 후 느꼈던 불안감이 다시 스멀스멀 올라오기 시작한다. 괜히 이직 동향을 알아보고 글도 책도 현재 하고 있는 일도 손에 잡히지 않는 시간이 늘어간다.  


누가 뭐래도 이 시간은 오롯이 나를 위해 쓰기로 한 결심이 무너지고 있는 것이다.


재취업과 이대로 지내기, 근래의 최대 고민이다.





몇 년을 놀고먹어도 될 돈을 모아놓은 사람이 아니라면(사실은 포함될 거라고 본다) 재취업의 압박에서 자유롭지 않을 것 같다. 다들 어떻게 이겨내는지 문득 궁금하다. 퇴사할 때의 결심을 지속적으로 유지하고 있는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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