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이 이대로 진리
가방 무거운 것과 삶이 심각한 것은 딱 질색이다. 지난 시절을 돌이켜보면 모든 것을 다 짊어지고 사는 바람에 괴로웠다. 과거에 대한 회한과 미래에 대한 두려움, 자식 걱정 등등 안 해도 되는 생각들때문에 피곤하고 힘들었다. 떨쳐내려고 해도 어떻게 하면 떨쳐낼 수 있는지 알 수가 없었고 내려놓고 싶어도 내려놓는 방법을 몰랐다. 교회에 가서 기도하고 나면 나의 간절한 기도가 이루어 질 것 같은 느낌도 들어 잠시 잠깐 위안이 되기도 했었다. 헌데 뭔가를 이루어 주십사 기도를 하는 것도 마음에 오랜 평화를 주지 못했으며 허구 헌 날 뭔가를 이루어 달라고 매달리는 것도 힘든 노릇이었다. 기도를 해서 다 이루어 질 것 같으면 애써 몸을 움직여 일을 할 필요도 없을 것이었다. 기도했다고 다 이루어지는 것이 아님을 알기에 끝으로 한마디 끼워 넣는 것이 '다만 내 뜻대로 마옵시고 주님의 뜻대로 이루어지게 하옵소서' 이다. 아무리 기도해도 벌어질 일은 벌어지고 안 이루어 질 일은 안 이루어진다. 기복적인 기도를 접고 마음공부를 시작하니 뭔가를 간절히 바라지 않게 되었으며 당연하고 사소한 것에 감사하게 되었다. 그동안 애면글면 하면서 키워왔던 우리 아들들 역시 시절 인연을 따라 겪을 거 겪고 배울 거 배우면서 언젠가는 깨닫는 날이 오겠지 싶어 자식걱정도 줄었다. 집착이 아니라 당연한 의무라고 생각했던 그것 역시 집착이었다. 마음관찰 레이더에 탐욕, 성냄, 어리석음이라고 감지되면 그 생각이 즉시로 사라지니 참으로 신기했다. 뭔가를 열심히 하는 것은 좋은 것이나 그것이 집착인지 아닌지 분별하는 간단한 방법이 있다. 과정 그 자체가 좋아서 하고 있는가 혹은 이렇게 시간과 노력과 돈을 쏟으니 결과가 좋아야 된다고 생각하고 있는가를 따져보면 된다. 결과에 연연해하지 않으면 욕심이 없어져 에너지가 넘치고 창의력이 샘솟아 결과까지 좋을 확률이 높다. 그리고 결과가 좋다고 기뻐 날뛰어 봤자 그 기쁨도 한 순간일 뿐이다. 어차피 세상 모든 일들은 왔다가 가고 또 왔다가 가는 것일 뿐인데 왔다고 기뻐 날 뛰면 갔을 땐 슬퍼서 엎어질 수 밖에 없다. 그럼 기쁠 때 날뛰지 말고 언제 날뛰란 말인가 싶기도 하다. 기뻐 날 뛰되 갈 걸 알고서 날뛰어 보는 정도면 오케이다. 오면 오는 대로 가면 가는 대로 좋아하면 언제나 좋을 수 있다. 좋다고 들러붙는 것도 싫다고 밀어내는 것도 욕심이고 집착이다. 덥건 춥건 비가 오건 눈이 오건 해가 나건 구름 끼건 바람이 불건 그 나름대로 좋다고 생각하면 우리가 어쩌지 못하는 날씨 때문에 괜히 기분 상해 할 일이 없어진다. 좋고 싫다는 구분도, 이건 내 것이라는 착각도 하지 않으면 삶은 훨씬 가볍고 즐거울 수 있다. 자신의 마음을 수시로 들여다보면 그 마음이 알아채어 지는데 그러다보면 다른 사람의 마음도 알아채어 진다. 본시 우리는 하나이기 때문이다. 눈앞의 파도를 알아채고 다른 파도들도 알아채고 바다도 알아채보자. 파도 역시 바다이다. 그걸 깨닫고나면 평화로움과 즐거움의 시간이 점점 많아진다. 이발소 전면의 유리창을 통해 산이 그대로 보인다. 무대배경으로 세워놓은 것같아 보이나 진짜 산이다. 의자에 앉아 유리문 밖의 거리 풍경과 오고가는 사람들을 멍하니 보면서 오늘도 주문처럼 외운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