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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콜라 Nov 10. 2020

지금의 나를 믿고 씩씩하게

실패도 성공도 없다

세상에서 두 번째로 예뻤던 계모의 꼬임에 속아 독이 든 사과를 먹고 아무도 없는 깊은 숲 속에 쓰러져 죽음과도 같은 깊은 잠에 빠진 세상에서 제일 예뻤던 백설 공주는 숲 속에 사냥을 하러 들어왔는지 산책을 하러 들어왔는지는 모르지만 하여튼 간에 멋진 왕자가 몇 날 며칠 동안 씻지도 먹지도 않고 잠만 자도 여전히 예쁘고 생기가 감도는 백설 공주의 잠자는 얼굴에 반하여 그녀에게 입맞춤을 하자 의식이 돌아와 그렇게나 오래 동안 입안에 물고 있었음에도 녹지도 썩지도 않은 독 묻은 사과 쪼가리를 뱉어냈고 덕분에 죽음과도 같은 깊은 잠에서 깨어날 수 있었다. 사랑에 빠진 왕자와 백설 공주는 웨딩마치를 울리고 영원히 평생을 함께 하면서 행복하기만 했을 리가 없다. 삶은 아침엔 저렇더니 저녁엔 그렇고 어제는 그랬는데 오늘은 이렇다.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이 있고 내리막을 따라가다 보면 오르막이 또 나온다. 저 모퉁이를 돌아가면 무엇을 만날지 어떤 풍경이 펼쳐질지 아무도 모른다. 멀어도 아침이면 나갈 곳이 있어 이것도 감사하다 생각하며 볼더 이발소를 오갔는데 두 달 만에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다시 확산되면서 손님이 더욱 줄어들고 있는 데다가 이 상황이 앞으로도 일 년은 더 걸릴 거라는 전문가들의 예상에 이발만 고집할게 아니라 다른 길을 모색해 봐야 하지 않을까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사회적 거리를 유지할 수 없는 직업이다 보니까 감염에 대한 위험부담도 있었다. 혹시 걸리더라도 나의 면역력은 나를 충분히 지켜 주리라 믿지만 혹시라도 주변사람들에게 피해를 주는 일은 절대 없어야 한다는 생각에 전직을 생각해보았다. 이제부터는 어떤 일을 하면 좋을까. 이만큼 살아보고 깨달은 건 생계를 위해 하는 일은 남에게 피해를 주는 것만 아니면 무슨 일이건 다 귀한 활동이라는 것이다. 국가의 동서남북을 연결하는 지하 고속도로를 설계하는 일이나 그 공사의 노동일이나 백층이 넘는 빌딩을 세우는 일이나 그 건물을 청소하는 일이나 그 가치를 따져보자면 실은 별반 다를 게 없고 마찬가지이다. 정말로 뭐가 뭔지 몰랐던 시절에는 그건 대단하고 저건 하찮은 일이고 구분을 지었었는데 깨닫고 나니 그게 그거다. 부와 명예를 얻으면 남들이 부러워해주고 영향력과 통제력이 생기니 짜릿하겠지만 그래 봤자 다. 친구들과 지인들은 질시하며 속으로는 망하기를 바라고 자식들은 재산이나 빨리 물려받길 원한다는 어느 강사의 말이 정곡을 찌른다 싶어 웃음을 터뜨렸다. 차라리 큰 성공 같은 것 없이 그냥 조금씩 일을 하면서 그럭저럭 먹고사는 편이 더 좋을 수도 있다. 그러면 지인들과 친구들로 하여금 약간 짠한 느낌을 일으키게 하여 뭔가 더 챙겨주고 싶게 만들어 관계 유지도 괜찮을 수 있고 빚도 유산도 자식들에게 남겨줄 게 없으니 조금 미안한 마음은 들어도 나중에 유산 때문에 애들끼리 싸울 일은 없을 것이다. 보기에는 빈손으로 태어나 빈손으로 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곳에서 살아 있던 동안에 했던 나와 남을 위한 좋은 마음가짐과 행한 좋은 일들로 업그레이드된 정신세계랄지 앎의 의식은 다른 세상으로 옮겨 간다고 한다. 죽어본 사람도 없고 죽었다가 다시 태어난 것을 기억하는 사람도 없다. 잠시 죽었다가 몸밖을 빠져나간 의식이 사후세계를 보고 다시 육신으로 돌아오는 바람에 현실의 삶으로 돌아왔다는 사람들에 관한 연구 조사 다큐에 나오는 임사체험 사례자들은 모두 비슷한 이야기를 한다. 육신에서 빠져나가자마자 통증이나 불쾌감이 완전하 사라졌고 중력에서도 벗어나 너무도 가벼웠으며 마음껏 시공간을 들고 날 수 있는 데다가 아름다운 빛과 무한 사랑과 평화와 교감, 그리고 만족함뿐이었다고. 그래서 다시 육체라는 것을 갖고 싶지 않았으나 이곳에서 마쳐야 할 숙제가 남아있어 다시 돌아오게 되었다고들 말한다. 이 직업에 절대로 위기는 없을 것이다 생각하고 지난 수년간 기술을 익히느라 참고 참아 맘고생에 몸고생 다 겪어내고 이제 걱정 없다 싶었는데 생각지도 못한 위기가 왔다. 어쩌랴, 지금 이 자리에서 또 살 방법을 모색하는 수밖에. 할 수 있는 일은 여전히 많이 있고 열려 있는 문도 많으니 다음 걸음을 또 내딛는 것이다. 지금 할 수 있는 것을 할 뿐이다. 과거를 되짚어 그때 그러지 말고 저랬어야 했는데 잘 못 선택했다며 후회할 수도 있지만 사실은 이렇다. 그때에는 저러는 것은 불가능했고 그러는 것밖에는 달리 방법이 없었기 때문에 그랬다는 것을 잊어버리고 지금에 와서 하는 망상일 뿐이다. 그때 저럴 수 있었으면 저랬을 테지만 저럴 수가 없었기에 그런 것이니까 우린 언제나 시의적절하게 잘 해온 것이다. 지금이라는 이 시공간에서는 이러는 것이 맞으니 지금의 나를 믿고 내가 이끄는 데로 씩씩하게 발걸음을 내딛을 뿐이다. 실패도 없고 성공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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