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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콜라 Oct 18. 2021

앉아서 천리를 꿰뚫어 봐?

레인 드랍 소나타

계절은 다시 돌아와 가을이 되었다. 그래도 낮엔 덥더니 오후부터는 갑자기 기온이 뚝 떨어져 눈 퍼붓고 겨울왕국으로 변했다. 한데 언제 그랬냐는 듯이 하루이틀 만에 눈이 녹고 증발하여 가을색으로 돌아왔다. 언젠가는 대낮에 갑자기 비와 우박이 쏟아지더니 도로 위에 하얀 구슬들이 떨어져 마구 튀어 올랐다. 빗물을 타고 배수로에는 순식간에 우박 알갱이들이 모여 쌓였고 푸른 잔디도 우박으로 하얗게 뒤덮여 갔는데 쑥에 쌀가루를 섞어 놓은 쑥버무리 같았다. 갑작스런 소동에 놀라서 농장을 탈출한 말이 주행 중인 차들 사이를 뚫고 도로 위를 질주하였다. 궂은 날씨에 말까지 난리를 쳐대는 바람에  길은 더욱 막혔다. 경찰차까지 출동하여 말을 잡으러 따라가니 난리도 그런 난리가 없었다. 오후인데 저녁처럼 컴컴한데다가 하얀 왕 구슬들이 하늘에서 마구 떨어지면서 아스팔트를 맞고 되튕겨 올라와 이리저리 구르다가 쌓이는 드라마틱한 도로 풍경이 펼쳐졌다. 갑자기 뒤집어지는 변화무쌍한 고산지대 날씨덕분에 산골 도시에 살아도 무료할 새가 없다. 머리 위 가까이에 드리워진 구름은 명암과 농도도 다양한 회색빛으로 얼크러져있어 흑백 그림이다. 버라이어티한 그레이구름의 스펙터클하고 그로테스크함이라니.  이곳의 사계절은 각자 완벽하게 좋다. 눈은 많이 와도 비가 오지 않아 어쩌다 비가 내리면 무척 반갑다. 비가 몰고오는 젖은 흙냄새는 정말 좋다. 어렸을 때도 비가 내리면 마루에 앉아서 비를 감상했다. 하늘에서 땅으로 직방으로 내리꽂는 듯한  빗줄기는 시원하면서 소리도 좋았다. 빗물은 튀어 순식간에 마루까지 적셨으며 툇마루가 물바다가 되는 것도 순식간이었다. 한 때는 비틀 컨버터블을 갖고 싶었다. 맑은 날엔 차 천장을 열어 놓고 드라이브를 하고 비 오는 날엔 차의 지붕으로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를 듣고 싶었다. 이제 비틀은 잊어버린지 오래고 갖고 싶은 차종은 콜벳 컨버터블로 바뀌었다. 그러다가 마음은 또 바뀔 것이다. 엄마는 비가 내리면 싸리 빗자루를 집어 들고 시멘트로 포장된 앞마당을 쓸었다. 비 오시는데 하수구로 그냥 쓸려나가는 물이 아까워서 그런다며 비에 존칭을 붙여 말했다. 천둥 번개가 치면 어린 우리들을 죄 다 안방으로 불러들여 모여 앉히고 커다란 솜이불로 푹 덮어 씌워 끌어안고 엄마는 천둥 번개가 잦아들 때까지 기다렸다. 이불속에서 땀을 빨빨 흘리며 있었던 생각이 난다. 너희들은 무슨 걱정이 있느냐, 부모 밑에서 해주는 밥 먹고 학교 다니고 뱃속 편하니 잠도 실컷 잘 수 있으니 니들 때가 제일 좋을 때라는 말을 어렸을 때는 노상 들었다. 어른들은 한결같이 그런 소리를 해서 어른이 되고 싶지 않기도 했었다. 철 없이 용감했고 안개속에 있는 것같아 두려웠던 시절은 지나갔고 이제 좀 알겠다 싶으니 몸이 예전 같지 않다. 안개가 거두어져 전후사방이 잘 보이고 몸은 시들하니 가만히 앉아서 천리를 꿰어 볼 수있는 이 늙음이 외려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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