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이라도 신나고 행복하게 꾸어보자구!
잠을 잘 때 꿈을 꾸는데 그 꿈이 실제인지 꿈인지를 알고서 꾸는 꿈을 ‘루시드 드림’ 즉, 자각몽이라고 한다. 가위에 눌렸을 때가 자각몽의 한 예가 될 수도 있다. 꿈인 것을 분명히 알고 있으나 몸을 꼼짝할 수가 없어 꿈에서 깨어나고 싶어도 깨어나지질 않는 인지하는 꿈인데 보통 나쁜 꿈일 때가 많다. 작가 바딤 젤란드의 책 ‘리얼리티 트랜서핑’에서는 자각몽을 꾸는 방법에 대해서도 자세히 쓰여 있었다. 나는 오랜 동안 꿈이 꿈이라는 것을 알고 꾸는 자각몽을 꾸고 싶었다. 삶이 힘겨울 때 더욱 그랬다. 눈뜨고 지내는 아침부터 잠들기 전까지 힘겹고 고통스러운데 자면서까지 악몽으로 괴로워해야 하는 것이 억울했다. 일고여덟 시간 자는 동안 꾸어지는 꿈을 자신이 원하는 식으로 꿀 수 있다면 삶의 질은 훨씬 높아질 것이라는 생각에 자는 동안만이라도 행복하고 신나는 꿈을 꾸고 싶다는 욕망이 강했다. 헌데 의식이 없이 무의식상태에서 꾸어지는 꿈을 어떻게 맘대로 할 수가 있단 말인가. ‘리얼리티 트랜서핑 1-3 권’은 그런 방법에 대해서도 자세히 쓰여 있었다. 나쁜 꿈을 꾸고 있을 때 우리의 의식이 그것이 꿈이라는 것을 알아채면 그 상황을 즉시 역전 시킬 수가 있기 때문이다. 그토록 오랫동안 원했던 것을 이 책에서 찾았다 싶어 기쁘고 흥분되기까지 했다. 읽고 난 후 생각날 때마다 나 자신을 훈련해왔으나 여섯 달이 지나도록 자각몽을 꾸지 못했다. 그러던 어느 날 꿈을 꾸었다. 잠자는 동안 여러 편의 꿈을 꾸지만 잠을 깨고 나서 기억이 나는 것은 깨기 전에 꾸었던 꿈인 경우가 많다. 나는 의자에 앉아 있었으며 내 몸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나의 상체와 하체, 그리고 두 팔과 손이 보였다. 두 손으로 바지를 입은 나의 허벅지를 쓸어보았더니 눈부시게 하얀 깃털로 바뀌는 것이었다. 신기하여 두 손으로 셔츠를 입은 상체도 쓸어보았더니 손길이 닿는 곳마다 역시 하얀 깃털로 바뀌었다. 그 순간 ’아, 이건 꿈이로구나!‘ 하고 바로 깨달았다. 그럼 날 수도 있겠다 싶어 두 팔을 양쪽으로 들어 올려 보았다. 그랬더니 내 몸이 공중으로 가볍게 떠오르는 것이었다. 일이층이 뚫려있는 그 집의 천장으로 날아오르는데 이층 거실에 앉아 있던 친지와 친구들이 공중에 떠있는 나를 보며 놀라워하는 표정들을 지었다. 꿈이라는 것을 알기에 맘만 먹으면 바로 되어지는 상황을 지켜보는 그 느낌은 상당히 좋았다. 그 후로는 꿈이 꿈인 줄을 모르고 꾸다가 잠에서 깨어나는 날이 계속되고 있다. 누군가에게 쫓기어 계속 도망을 쳐야하거나 다시 학생이 되어 시험 준비는 하나도 하지 못했는데 어려운 시험을 치르느라 노심초사하면서 끙끙대며 진땀을 흘릴때 이게 꿈이라는 것을 알아차리면 바로 상황을 반전시켜 내가 그 정체를 쫓고 그를 쫓기는 입장으로 만들 수 있으며 시험을 치르는 중에 ’이건 꿈이야!‘라고 나의 의식이 소리쳐 준다면 백점 만점에 백점짜리 답안을 순식간에 써내고 홀가분하게 교실을 빠져 나올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한 번 겪어보았으니 또 다시 될 것을 믿고 생각날 때마다 짬짬이 훈련 중이다. 바딤 젤란드는 또 이렇게 말한다. ‘사소한 일에도 불만을 토하는 습관은 당신이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하게 가로막으나 소소한 일들에 작은 기쁨을 느끼는 습관은 원하는 것을 얻게 해준다. 그러니 부정적인 습관을 긍정적인 습관으로 나가야한다. 모든 불행은 불행을 가장한 축복임을 명심하라. 전화위복이라는 말을 생활의 모토로 삶는다면 많은 노력을 들이지 않고서도 목표에 도달할 수 있다. 리얼리티 트랜서핑을 게임이라 생각하고 그 게임을 즐기다 보면 낡은 습관은 곧 새 것으로 대체될 것이다. 만일 정말로 끔찍한 일이 일어나서 그 어떤 기쁨을 느끼는 것도 부적절하고 부자연스럽게 여겨진다면 솔로몬 왕이 했던 것처럼 안쪽에 ’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문구가 새겨진 반지를 끼고 안 좋은 일이 일어나거나 심각한 문제에 빠질 때마다 반지 안쪽에 새겨진 글을 읽어라. 새로운 습관을 기르면 긍정적인 에너지가 만들어지고 그 에너지는 강력한 급류처럼 긍정적인 인생트랙으로 데려다 줄 것이다. 허나 습관을 바꾸는 방법을 연습해도 머지않아 연습이 점점 불규칙적으로 되어가고 습관을 바꾸기로 했던 각오조차 수시로 까맣게 잊어버리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낡은 습관이 깊이 뿌리박고 있기 때문에 이것은 피할 수 없다. 그러나 각오만 단단히 하면 우리는 원하는 것을 모두 성취할 것이며, 파괴적인 펜듈럼(부정에너지체)도 결국 당신을 더 이상 건드리지 못하고 놔둘 것이니 자신의 각오를 더 자주 상기하기하면 된다. 우리는 모두 이 세상에 손님으로 와 있으니 자신이 창조하지 않은 것에 대해 심판할 권리는 없다는 사실을 이해해야 한다. 마음에 들지 않는 작품이 전시되어 있는 미술 전람회의 예를 들어 보자. 마치 집에 있는 것처럼 편안하게 행동하되 당신은 단지 한 사람의 관람객일 뿐이라는 점을 잊지 말라. 작품을 심판할 권리를 가지고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지만 선택의 자유는 누구나 가지고 있다. 당신이 전시된 작품에 불만을 표하느니 그저 그 전시실을 떠나서 다른 작품을 감상하는 편이 이익이다. 더 갈 곳이 없으면 어쩌란 말이냐고 물을 수도 있다. 그것은 펜듈럼들이 그렇게 믿도록 만든 것일 뿐 사실이 아니다.’ (리얼리티 트랜서핑 1 -바딤 젤란드- 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