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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콜라 Dec 13. 2022

꽃은 나무의 깨달음

머쉰 사랑

저희 집 식물들중에 제일 키 큰 식물이 행운목입니다

십여 년 전 집에 들일 때엔 두 자였는데 지금은 그 키가 다섯배나 됩니다

행운목에 꽃이 피면 집안에 경사가 난다고들 하기에 올려다 볼 때 마다 언제 꽃을 보여줄거냐 꽃을 뵈주긴 할거냐 물어봤습니다

그럴 듯한 꿈을 꿀 때마다 로또를 샀으나 언제나 꽝..

이제는 눈에 뵈는 확실한 신호가 올때까지 기다렸다가 로또를 사리라 맘먹었습니다


이 주 전쯤 눈이 오던 아침 출근길에 잠시 방심하는 바람에 남의 차를 들이 받았습니다

네 방향으로 정지 표지판이 있는 저속 운행 도로라  다행히 큰 사고는 아니었습니다

상대방의 차는 왼쪽 궁뎅이가 약간 찌그러 들었을 뿐이었고 제 차는 앞 범퍼와 왼 쪽 헤드라잇이 부서졌습니다

눈탱이는 날아갔으나 눈알만 남아 빨간 불이 켜진채로 돌아다니던  터미네이터처럼 부서진 헤드라잇의 알전구에 멀쩡하게 불이 켜지는게 희안합니다


스물 아홉부터 운전을 시작하여 지난 삼십 년 동안 보험료납부만 해왔기에 보험 덕을 볼 때도 있구나 싶었고 아무것도 걱정되지 않았습니다

헌데 그 날부터 사고 순간이 자꾸 떠오르고 멍해지는 듯도 싶고 두통이 왔습니다

다친 사람없어 다행이고 누구나 사고를 낼 수도 당할 수도 있는 일이라고 쿨하게 맘을 먹어도 잠이 편히 오지 않았고 새벽에 일찍 깨어도 의욕이 나지 않아 식물들도 돌보지 않았습니다


출퇴근 왕복 한시간이 넘는 프리웨이 운전에다가 풀타임 근무하고 집에 돌아오면 에너지가 바닥 나서  카우치에 길게 누워 법문과 강의를 듣다가 잠들었습니다

식물들의 이름을 불러가며 사랑물을 주는 일도 2주를 건너 뛰었나봅니다

헌데 티엠에스 떼라피 덕분에 드라마틱하게 좋아졌습니다

현대 의학은 정말 마법같습니다


차사고 후 지쳐서 쳐다도 안봤던 식물들에 우선 물부터 주면서 중얼거렸습니다

미안합니다 용서하세요 고맙습니다 사랑합니다 ...호노포노포노...

무심히 행운목을 올려다 보는데 꼭대기에 뭔가 삐죽이 나와있는 것이 눈에 띄었습니다

저게 뭘까 싶어 사다리를 놓고 올라가서 자세히 들여다보니 자잘한 알갱이들이 잔뜩 맺혀있는 것이었습니다

이게 설마 꽃봉우리?!


구글로 찾아보니 역시나 그것이 행운목의 꽃이었습니다

꽃은 식물의 깨달음이라는데 저희 집의 행운목이 깨달은 걸까요?

행운목이 꽃을 피우는 조건을 다시 검색해보니 환경이 열악해서 힘들때 꽃이 피는 경우가 종종 있다고 하더군요

지난 이 주 동안  물도 안주고 말도 안걸고 바람도 안 쐬주는 바람에 고생스러웠기도 했겠지만 저와 십여 년의 세월 동안 붙어있다보니 에너지입자로 연결되어 동시에 앓다가 깨달음을 얻은 것으로 마무리해봅니다


괴로움은 나쁜 것이 아니라 업장이 소멸되고 깨달음에 이르게 하는 좋은 것이니  반겨 맞이하라는 스님법문이 여전히 가슴으로 내려가는 중입니다

꽃빛같은 지혜의 빛꽃이 환하게 피어날 그 때가 지금이길 소원합니다

언제 올지 모를 깨달음의 그 날까지 짱짱하게 지내며 마음공부에 정진하고싶어서 실내 자전거로 할것인가 로잉머신으로 할 것인가 고심하다가 로잉머신을 오더했습니다

택배도착이 될때까지 기다리는 기분은 언제나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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