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에서의 묘미, 낯선이 와의 눈인사와 짧은 이야기
도시에서 낯선 사람들과 눈이 마주치는 찰나의 순간, 우리는 어떤 행동을 하는가?
한국에서라면, 눈이 마주치자마자 시선을 거둘 것이다. 고개를 숙이거나 앞을 바라본다. 한국에서는 다른 사람의 눈을 계속 바라보는 것은 예의에 어긋나는 행동이다. 아마도 서로 술을 마셨다면 싸움으로 번질 수 있는 행동이기도 하다. 물론 사랑에 빠질 수도 있겠지만. 혹시, 눈이 마주쳤을 때 웃는다면? 상대방은 나를 좀 이상한 사람으로 여기며 빤히 쳐다볼지도 모른다.
베를린에서 3개월을 지내다 한국에 들어왔을 때, 적응이 안됐던 것이 바로 이 부분에 대한 문화 차이였다. 베를린에서는 거리를 걸을 때 눈이 마주치면, 상대방은 나를 향해 환한 미소를 보이며 "Hallo" 인사를 건넸다. 일단 받은 인사, 나도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답해주었지만, 처음에는 나를 보고 웃는 건지, 나에게 인사한 것이 맞는지 어리둥절했었다.
이 나라 사람들은 원래 다 이러나? 그랬다. 3개월 동안 베를린에 있으면서, 거리를 지나거나, 상점에서나 공공장소에서 눈이 마주치면 서로 인사를 했다. 군중이 많은 거리에서는 짧게 지나가곤 했고, 비교적 한산한 주거지를 걸을 때면, 여유 있는 환한 미소로 인사를 주고받곤 했었다. 서서히 나도 이 행동양식에 적응해 갔었다. 아마도 나는 거리에서의 이런 찰나의 스침을 좋아했던 것 같기도 하다. 한국에 와서도 얼마간은 길에서 누군가와 눈이 마주치면 나도 모르게 미소를 지었고, 내가 사는 빌라에서 만나는 이웃들에게도 자꾸만 진심으로 환한 미소를 지으며 인사를 했다. 내 미소를 받고, 인사를 받았던 낯선 이들은 꽤 당황했다. 이웃들 중에는 인사를 받아주는 이도 있었고, 무시하고 지나가는 이도 있었다. 그러면서 나는 다시 한국인으로 돌아왔다. 무표정하게, 미소 담긴 인사를 나누지 않는 사람이 다시 되었다.
키오 스타크는 그의 저서 <낯선 사람들이 만날 때 When Strangers Meet> (*2016년 TED 강연을 책으로 출간했다.)에서 이런 순간의 행복감에 대해, 이런 순간이 사회에 주는 효용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미국에 살고 있는 그녀는 거리에서 눈을 마주치는 사람과의 인사, 상점에서 직원과 나누는 대화, 버스를 기다릴 때 같이 기다리는 모르는 사람과의 대화 등 낯선이 와의 찰나의 순간이 도시에서만 느낄 수 있는 행복이라고 한다.
* 2016년 키오 스타크의 TED 강연
사람들은 도시에서 낯선이 와의 짧은 스침 또는 대화에서 왜 행복을 느끼는가. (나도 왜 기분이 좋았을까?)
저자는 인사를 하고 미소를 나누는 그 순간이 타인에게, 세상에게 나의 존재가 발견되는 순간이기 때문이라 설명한다. 그리고 사람들은 가족이나 연인, 친구 등 가까운 인간관계 외에도 새로운 관계에서도 행복감을 많이 느낀다고 한다.
그러하다. 우리들의 삶은 결국은 누군가와의 관계라고도 한다. 우리는 끊임없이 누군가에게 발견됨으로써, 인정받음으로써 존재하는 것이기도 하다. 베를린 거리에서 미소와 인사를 받았을 때 나는 이방인이자 외부자였던 내가, 그곳에 거주하는 시민들, 내부자들에게 존재를 인정받았다고 느꼈던 것 같다. 나는 그런 순간들이 기뻤고, 한국에서도 낯선 이를 만나면 기쁘게 맞이해주어야 한다는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한국은 문화적으로 독일과 다르다.
저자도 이런 문화 차이를 이야기한다. 낯선 이와의 대화나 마주침을 싫어하고, 웬만하면 최대한 말을 하지 않는 상황을 만드는 나라도 있다. 하지만 문화적 차이가 있더라도, 낯선 이로부터 받는 미소와 인사, 짧은 대화는 사람들에게 기쁨이고, 내가 살고 있는 이 도시를 인간적인 곳으로 느끼게 해 준다. 그래서 저자는 제안한다. 노력해 보자고. 팍팍한 세상, 잠시라도 한 공간에 머무는 사람과 인사를 주고받자고, 대화를 주고받자고 한다.
나도 어느 나라가 더 좋다 나쁘다는 생각은 아니다. 그저 베를린에서의 그 미소와 인사 덕분에 나는 그 도시를 따뜻하게 기억하게 되었다. 내가 지금 살아가는 이 도시에서도 사람들이 서로가 서로에게 미소를 보일 수 있고, 여유를 갖고 잠깐의 대화라도 할 수 있게 된다면, 조금은 서로 위안이 될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거기에서부터 우리가 무언가를 시작할 수 있지 않을까.